박현수 교장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동안 미리 준비해 갔던 질문들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전혀 없어졌어요. 학교가 세워진 배경과 교사 선교회의 사명 그리고 헌신된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하려고 했던 질문들이 무색해 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주말만 되면 두 딸을 데리고 별무리 마을로 향했습니다. 세종에서는 한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어요. 흙먼지 날리는 신도시에 아파트만 즐비하던 곳에서 생활하던 저와 아이들에게는 주말마다 별무리로 향하는 시골길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습니다.
군데 군데 펼쳐진 논밭과 개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들풀들, 게다가 별무리마을로 올라가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산길까지도 마냥 즐겁고 기쁜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듯했습니다.
(지금은 학교 바로 앞까지 널찍한 2차선 도로가 뻥 뚫려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가드 조차 없는 낭떠러지 산길이었어요. 아이들은 이따금 저에게 스쿨버스가 한번 쯤은 절벽 아래 개울로 추락할 것 같다며 밸트를 단단히 잡아 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말도 농담삼아 하곤 했습니다. )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었던 장소는 금산 톨게이트 근처의 유명한 호떡집이었습니다. 그 호떡집은 갈때마다 매번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어서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뜨거운 김이 나는 호떡을 한 입 베어무는 행복에 비하면 줄서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꿀이 가득한 호떡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한 30분 정도 더 운전해 가면 별무리마을에 도착합니다. 그때부터는 두 딸아이와 강아지까지 차에서 내려 신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큰 아이가 입학하기 전에는 1기 아이들만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때였어요. 듬성 듬성 집들이 모여있는 별무리마을은 마치 동화책 속에나 등장할 것 같은 모습으로 한 가운데 작은 학교를 품고 있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학교를 만났다는 기쁨으로 가슴은 매번 요동쳤고, 아이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자라날 것을 생각을 할때마다 매순간 목에까지 감동이 차올라 울컥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그해 겨울을 보내고 입학이 가까워질 무렵이 되었습니다. 입학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와는 달리 제 마음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한번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는 아이를 기숙학교에 보낸 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했습니다.
아이를 좋은 교육환경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지만 문제는 기숙학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입학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저는 심란해지기 시작했고, 딸아이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별무리학교가 좋아? 꼭 가고싶어? 뭐가 그렇게 좋아?”
그때마다 아이는 그냥 학교가 좋고 빨리 친구랑 같이 가고 싶다고만 했어요. 기숙학교에 가면 엄마가 보고싶지 않겠냐고도 물어봤지만 매주 주말에 집에 올건데 뭐가 걱정이냐며 쿨한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해리포터에 심취해있던 아이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대한 로망 때문에 기숙학교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저와는 달리 입학을 결심하게 된 아이의 동기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학교 별무리에서의 생활은 서서히 막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