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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해 Jul 13. 2021

<퀸스 갬빗>, 도취적 천재성의 폭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누구나 어릴 때는 빛나는 재능의 가능성을 품은 존재로 대우받지만, 자랄수록 점점 더 좁은 체에 걸러지듯이 천재성의 측면에서 ‘탈락’하기 마련이다. 내가 천재는 고사하고 수재도 아니고 성실한 범재마저 아니란 게 확실하단 걸 받아들인지 무척 오래되었는데도 천재의 서사는 여전히 나를 너무 쉽게 매혹시킨다. 오히려 내가 일말의 돌출성도 가지지 못한 것이 확실해질수록 더 마음 편히, 남의 일처럼, 감탄과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된다.


<퀸스 갬빗>의 베스 하먼은 그런 동경과 감탄에 불을 지피기 딱 좋은 ‘의문의 여지도 없는 불후의 천재’ 캐릭터다. 다른 말로 하면 먼치킨이나 사기캐 정도. 정규 교육도 없이 9세에 고아원 관리자와 처음 둔 체스 게임에서 재능을 발견한 이래로 베스는 끝없이 위로만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 7화 분량의 수없는 체스 게임 동안 손에 꼽을 만큼 적게 패배하는 그의 서사에는, 다른 천재들이 숱하게 겪었던 자기 의심 혹은 자신을 받아들이지/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울화가 없다. 대신 그에게는 자신과의 싸움만이 있다.

천재성 그 자체는 따질 구석도 없지만, 천재성에 정신병이 따라붙어 자신을 미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수학 박사 학위를 딸 정도로 명석했지만 결국 남자와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적응하지 못했고 미쳐서 자살해버린 엄마처럼 자신도 미쳐버리지 않을지. 베스는 오직 그것만을 고뇌한다. 천재들의 고통의 흔한 원인인 세상과의 불화, 그것이 부추기는 오만한 자신감과 분노 섞인 자격지심보다도 모계 유전의 재능과 정신질환에 대한 우려 그 자체가 그에겐 가장 큰 장해가 된다. 그것이 <퀸스 갬빗>에서 두 번째로 두드러지는 특징이자 매력이다.



그럼 첫 번째로 눈에 띄는 매력 요소는 뭐냐면 당연히 베스가 여성인데도 그 ‘여성인’ 속성이 전혀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 1960년대를 배경으로 오로지 남성들에게만 허용되었던 체스의 세계에서 베스는 자신의 성별과 나이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제작진 역시 ‘여성인’ 베스보다 ‘천재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베스에 훨씬 더 방점을 찍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점은 그냥 베스가 화려한 드레스를 계속 갈아입거나 섹스를 탐닉하거나 ‘too glamorous’하다는 기자들의 지적을 받을 때 외엔 잘 의식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그냥 천재 소녀가 등장하고 그가 모든 서사와 개연성을 메꾸는 단독자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페미니즘적’이라고 평한 사람들에게는 동의할 수 없다. 그건 너무 얄팍하고 단순한 이해다. 이 극이 페미니즘적이라면, 그건 베스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와 그 주변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처음엔 그랬더라도 뒤로 갈수록) 베스의 성별과 재능을 전혀 연결 짓지 않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간혹 그를 잘 모르는 잡지 인터뷰나 세간의 평에서 그런 연관의 시도가 있다 하더라도 베스의 너무나 압도적인 재능이 그 고리를 끊어버리고 만다. 그녀는 ‘어린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재능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재능이 있는 거고, ‘남성이 독식하는 체스 세계에서 외롭게 분투’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자격의 선수로서 가뿐히 우위에 선다.


초반에는 자신의 여성성에(만) 주목하는 세상에 베스 역시 약간의 불만을 가졌더라도 그는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사실 얽매일 틈이 없다. 이기는 것, 그와 동시에 중독과 정신질환을 극복하는 것이 여성성에의 편견을 극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에 그 시대 특유의 이분법적 이념에 기반한 국가주의라는 양념이 살짝 얹어진다. 그리하여 경기 중인 베스를 둘러싼 시선과 공기는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한 존중과 감탄과 압도감으로 변해간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여성 체스 선수가 아니라 체스 선수로. 여성 천재가 아니라 그냥 천재로. 체스 선수로서 첫 발을 내디딘 켄터키 주립 챔피언십(어린 여학생 영재의 등장)에서 소련 초청 선수권 대회(공산국가의 월드 챔피언 보르고프에게 필적할 유일한 자유주의 국가 선수 베스)까지.


다시 말해, 천재성 그 자체만을 걱정하는 천재라는 점 + 여성이지만 그냥 사람으로 취급된다는 점(능력주의와 국가주의의 ‘도움’을 약간 받기는 했지만). 이 두 가지가 베스라는 캐릭터의 고유성을 결정한다.


승리에 관해서라면 베스는 이상할 정도로 확신이 있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기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이긴다. 베스에게서는 자신을 무시하는 라이벌(도 많이 없거니와)에 대한 초조함이나 복수심 같은 음습하고도 인간적인 감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의 기준을 언제나 과하게 올려잡고 또 그 이상으로 해낸다. 거의 승리하는 기계에 가깝다. 그는 성장하는 천재가 아니라 그냥 언제나 거기 존재했다가 우연찮게 ‘발견된’ 천재다.


이런 수준의 자신만만함과 근거 있는 자기 객관화는 분명 드문 속성이다. 그간 미디어에서 그려진 (남성) 천재들은 보통 대단히 델리케이트하고 억울함과 외로움에 덜덜 떠는 유약한 영혼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 어쩌면 베스가 몸담은 곳이 체스 - 즉 아주 확실하게 승패가 가려지는 수학적 룰을 가진 세계인 탓도 있을지 모른다. 성공과 실패를 가름할 때 불완전한 타인의 주관적 평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미술, 음악이나 문학적 재능을 증명하는 건 체스에의 재능을 증명하기보다 훨씬 까다롭지 않나. 체스의 세계에 걸맞은 감정적 틀을 타고난 베스는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기보다 강건하고 고집 있는 괴짜다. 때론 배려심 없이 상대의 멘탈을 (체스판 안에서나 밖에서 모두) 완파하고 마는 이 캐릭터가 여성이라는 점이 극에 엄청난 활기와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그게 시청자 입장으로선 무척 좋고 재미있는데, 또 허무하기도 하다. 사실 베스가 여성이라는 점을 완전히 배제하고 보면 정말 흔하기 짝이 없는 서사인데 단지 (어린) 여성이라는 점만으로 너무 희소하고 신박한 드라마가 되어버렸다는 점이 좀 그렇다. 그동안 남자들은 이 재미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감사함도 없이 누려왔단 말이야? 싶은 약간의 짜증은 덤.


게다가 제작진은 베스의 성별과 성성에 관해 대체로 능숙하고 무리 없는 연출을 해냈지만, 간간이 ‘굳이?’ 소리가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는 장면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베스가 켄터키 챔피언십에서 타운스와 첫 경기를 마무리한 후 첫 생리를 시작한 장면. 그는 그 순간 처음으로 만만치 않은 호적수를 만난 것과 동시에 성인 남자의 성적 매력을 처음으로 의식하고 그를 첫사랑으로 삼게 되었고, 그 감정적 ‘신호’에 호응하듯 몸이 반응한다. (이 부분 표현 자체가 약간 개저 감성이긴 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내가 알기론 출혈량이 무지막지하게 많은 드문 경우가 아닌 이상 첫 생리 때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허벅지에 선혈이 줄줄 흐르진 않는다,,,^^) 또 베스는 야간대학 러시아어반의 연상 수강생 동료들과 처음으로 어울리며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고, (웬 이름도 안 나온 엑스트라 놈이랑) 첫 섹스를 한 후에, 혼자 과음의 기쁨을 처음으로 깨우친다.


그런 식으로 제작진은 드라마 전체에 걸쳐 베스의 섹슈얼리티와 천재성, 천재성과 중독 증상의 개화를 병렬식으로 제시한다. 이게 보는 사람에 따라선 상당히 거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베스의 섹슈얼리티가 다뤄지는 방식이 아주 노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섹슈얼리티의 부각이 매번 ‘굳이’ 천재성의 증명 혹은 발화와 궤를 같이한다는 점에서. 주인공 시점에서는 솔직하고 당당한 욕망의 표출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girls can do anything 수준이고(시대상 고려하면 베스의 언행이 남다르고 앞서갔던 건 안다. 같은 시대의 여자들은 여전히 안정제 먹으며 집안에 반쯤 유폐돼 살았고 주부 히스테리는 제대로 질환 취급도 못 받았으니까) 딱히 임파워링되는 방식은 아니라서.


내 입장에선 사실 천재와 정신병자 사이에서 자신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고민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아슬함을 ‘탐닉’ 그 자체로 풀어낸 게 흥미롭고 좋긴 했다. 베스는 욕망에 대한 일말의 수치심도 없이 폭주기관차처럼 자기가 원하는 모든 걸 양껏 탐닉하는 사람이고 그런 그가 1960년대의 여성이라서 더 좋긴 했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여성의 정신적 위기를 은유할 도구는 섹슈얼리티와 중독밖에 없냐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가 도취되었던 것이 흔해빠진 눈물 줄줄 헌신적 사랑이 아니라 섹스와 약물이었고, 자기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패션이었고, 또 승리감 그 자체였기 때문에 나는 충분히 좋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베스 연애 비슷한 거라도 하는 거 보면 베스가 제일 쓰레기다ㅋㅋㅋ 헌신짝 역할은 다 남자들)




그 외에도 드라마의 매력을 꼽아보자면. 설정을 푸는 상세한 설명 없이 속도감과 비주얼에 집중한다는 점과, 예상외로 모든 인물이 선량하고 다른 꿍꿍이가 없다는 점 정도를 더 들 수 있겠다.


미니시리즈라는 형식 때문인지 베스의 유년기부터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20대 초중반까지가 굉장히 압축적으로 훅훅 지나간다. 그리고 그 점에 내 구미에 쏙 맞았다. 간혹 1960년대의 미국 법을 모르기에 드는 의문(ex. 저렇게 아무 검증이나 유예 기간 없이 그냥 아무한테나 입양을 보내는 건가? / 저렇게 “이 집 네가 가져라” 하면 그냥 자기 꺼 되는 건가? / 저렇게 막무가내로 국무부에 돈 빌리고 그렇게 행정 처리가 되는 건가?...)들이 없지 않지만, 서사상 중요한 게 아니라면 제작진은 쿨하게 설명을 생략하고 대신 화려한 배우들의 비주얼과 엄청나게 감각적인 조명으로 모든 걸 때워버린다.

심지어 체스 게임이나 인물 간 관계성의 변화(래봤자 사실 앨마 휘틀리와 베스 이외엔 그다지 진전된 관계도 없었지만…)를 표현할 때도 바로 그 비주얼과 빛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안야 테일러 조이의 오만하거나 심란해하는 표정 연기와, 총감독이 ‘천재’라고 표현한 조명감독 Uli Hanisch의 홀리한 자연조명들. 베스가 양엄마 앨마와의 관계에서 새 희망을 찾아갈 때 고요하고도 강렬하게 내리쬐는 백색의 빛 같은 요소들이 인상적이다.



또 조연들의 선량함 역시 놀랍고도 정들기 쉬운 요소. 솔직히 클리셰에 너무 길들여진 현대인이다 보니 누가 등장할 때마다 또 베스에게 무슨 위해가 되려나 싶어 바짝 긴장했는데, 이 극엔 끝까지 그 속을 모를 클레오나 일관되게 모자란 남편이었던 울스턴 휘틀리를 제외하곤 단 한 명의 악인도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그 둘마저 선명한 악의 대신 가벼운 견제나 소시민적인 비겁함을 보여준 것뿐이니.


일단 처음부터 머슈언 고아원의 원장님이 ‘당연히’ 아이들을 학대하고 베스의 유년에 다시없을 상처를 또 새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엄마가 수 놓아준 옷을 불태운 건 좀 너무했다 싶지만 더 이상 바깥의 세상에 기대할 게 없는 베스를 어서 고아원의 획일화된 질서에 적응시키기 위한 의식으로 생각하면 이해된다. 안정제를 먹여 베스를 평생 중독자로 만들어버린 것 역시 원장 개인의 악의라기보단 그저 그 시대 고아원들에서 아이들을 무리 없이 통제하기 위해 흔히 이뤄지던 인권유린적 관습과 무지 탓이었고. 뭣보다 베스가 샤이벌 씨와 몰래 체스를 둔 게 발각된 날 원장 선생님은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대신 “머슈언의 아이가 더러운 지하실에서 아무 체스 세트나 갖고 놀게 할 순 없다”며 벽장에서 새 체스 세트를 찾아주라고 지시하지 않았나. 규율과 품위에 집착할 뿐 절대 전형적인 나쁜 고아원장은 아니었다. 무뚝뚝한 샤이벌 씨가 베스에게 끝까지 정서적 아버지가 되어주었던 것도, 그가 불러다 준 갠즈 씨가 베스에게 최선의 호의와 교육을 제공하려 한 것도 마찬가지다.


또 앨마와 울스턴 부부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앨마를 연기한 배우 마리엘 헬러의 안광이 너무 기괴하다시피 번쩍거리기에 아 뭔가 기독교적으로 미친 여자인가 보다; 이제 저 집 들어가는 순간 베스 헬게이트 열리는구나; 했는데 그 계모 판타지마저 산산조각 났다. 앨마는 베스의 완벽한 동반자, 친구, 매니저가 되어주었고 베스는 힘들 때마다 그의 손을 잡음으로써 베스답게 화답했다. 앨마가 ‘성숙한’ 엄마였나 물으면 좀 아닌 적도 많았다 싶지만, 어차피 당사자인 베스도 시청자인 나도 그딴 것은 바라지 않았다. 모성의 필패를 이미 알고 있던 베스에겐 판에 박힌 듯이 헌신적인 엄마보다는 자기 욕망과 돈 문제와 정신적 아픔에 솔직하고, 남들에겐 까칠하게 굴며 베스를 보호하고, 베스에게도 종종 시니컬하게 그 애의 문제를 일깨워주는 친구 같은 성인 여성의 존재가 훨씬 더 필요했을지도.


베스가 차례로 함락시킨 남자들도 웃기고 다정한 각각의 서사가 있어 좋았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베스가 만나게 되는 남자들 중 뭔가 큰일을 벌일 새끼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것도 기우였다. 베스의 체스 인생을 처음부터 지켜본 맷&마이크 귀여운 쌍둥이는 물론이고, 첫사랑이지만 결국 모종의 이유로 좋은 친구로 남은 타운스, 랭킹도 점수도 없던 초짜 베스에게 처참하게 패해놓고 베스의 가장 힘들 시기에 재등장해 가장 순정적인 사랑을 바친 전 켄터키 챔피언 해리 벨틱, 베스와 지적/감정적으로 유일하게 견줄 만한 인재였던 미국 챔피언 베니 와츠까지. 솔직히 누굴 만나든 베스가 제일 별로인 애인이고 너무 냉정해서 웃겼다ㅋㅋㅋㅋ 특히 제일 착하고 순정파였던 해리(두들리 역이었던 해리 멜링 역)랑 베드인 한 후에 베스가 바로 담배 피우면서 책 집어들고ㅋㅋㅋㅋㅋ 거기서 내가 다 눈물이 났다 해리는 그러고도 계속 베스 걱정하고 진짜 이 시대 마지막 초식남..


타운스도 잘생기고 목소리까지 너무 섹시한 어른 남자라서 아 이놈이 찐이구나. 싶긴 했는데 솔직히 첫사랑이기도 하고 잘 될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잘 안된 이유는 약간 예상치 못한 반전이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아쉬웠던 건(물론 베스의 천재성+매력을 설명하는 보조 도구로 남자들의 그런 숭배가 반드시 들어가야만 했단 구성 의도가 가장 아쉽지만 그건 남감독+원작 남작가의 상상력과 시대적 한계라 치고), 베스의 진짜 순정이 향한 곳이 베니가 아니라 타운스라는 점. 물론 베니와 베스가 서로 진짜 사랑했으면 그건 그거대로 싫었을 것 같긴 한데, 그 둘은 딱 그 정도로 담백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애적이라서 더 잘 어울렸던 거긴 한데… 그래도 15살 이전에 몇 번 설레게 한 전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운스가 10년 지난 후 베스의 (해리와 베니가 있어서 가능했던) 모든 성취와 극복과 성장을 홀랑 가져가기엔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았다. 잘 안돼서 오히려 만족스러운 관계도 있는 법이다.


마지막 화 베스와 보르고프의 어드전 이후 연장전에 돌입할 때 베스에게 말려버린 남자애들이 우르르 모여서 전화한 건 약간… 너무 미국적이고 너무 소년만화 같은 작위성이긴 했지만 아무튼 볼 당시에는 나도 베스에 한껏 이입해서 감동받았다. 솔직히 평생 남성이 독식한 세계에서 살아온, 사교성이 아니라 전투력으로 대화하며 살아온 베스가 여자친구가 더 많았다면 그것도 좀 어색한 일일 테다. 많은 남자친구들의 존재가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고 또 다들 너무 좋고 사려 깊은 친구들이라 마음에 들었다. 학교에서 잠시 베스를 불링했(지만 베스가 너무 오진 탓에 타격감도 없었)던 애플파이 클럽 마가렛이나 베스의 첫 시합을 함께 한 아넷 파커 등의 또래 여성들도 파괴적이지 않거나 밍숭맹숭 선량하긴 마찬가지.



결국 베스라는 인물은 그렇게 자기 자신마저 파괴하는 천재성으로만 승부를 본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선의와 애정을 함뿍 받고 그것으로 최종 승리까지 나아간 인물이었다. 천재성의 발휘에는 약물 외의 사람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 치더라도 그 온전한 발휘를 막는 여러 감정적 패인들은 결국 사람과 어울리며 해소해 나가야 한다는 것. 결국 사람은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는 것. 그게 뻔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핵심 메시지였고, 그 깨달음을 완벽히 체화한 결말 씬의 베스가 생애 최초의 시합처럼 필부인 노인과 마주 앉아 체스를 두는 마무리도 서사적으로 완벽했다.


앨마와 빠르게 가까워지는 베스. 이 부분 조명이 거의 시력 무리 줄 정도로 일시에 밝아지는데 앨마와 베스가 서로의 인생의 silver lining이 된다는 은유라고 느꼈다.
The Whit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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