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기록하며 성장하기
책 읽기는 나의 오랜 취미였다. 어렸을 때부터 심심할 때 책장에서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하는 설레는 시간을 즐겼다. 잠자기 전에는 늘 책을 읽었고, 화장실 갈 때도 책을 들고 갔다.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마음을 정돈하고 싶을 때도 책을 읽었고, 독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내 손에 쥐어진 후부터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게 빼앗겼지만 그래도 책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나의 독서는 말 그대로 취미였다. 내가 읽은 책의 장르는 소설과 에세이가 대부분이었고, 당연히 책을 오랜 기간 동안 많이 읽었으니 장르와 스토리, 문체에 대한 나만의 취향이 생겼음은 당연하다.
취향은 내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호불호를 결정하는 나의 기준이 된다. 취향이 명확해지면 좋은 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 주변에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만 고르니 선택에 있어 시행착오를 덜 겪게 된다. 하지만 내 취향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나의 세계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오랜 시간 나의 세계에서 취미로 했던 독서는 그저 취미였을 뿐이었다. 나의 독서 경험을 깊게 만들어 준 건 독서를 해왔던 시간이나 독서량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친한 사람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다. 평소에 책을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이런 모임을 만들어서 책도 같이 읽고 친목도 도모하자는 것. 늘 혼자 책을 읽다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매우 신선했다. 사실 친한 사이일수록 책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란 쉽지 않다. 책을 매개로 나의 생각, 느낌, 경험을 나누게 된 독서 모임은 나의 독서 생활에 날개를 달았다. 매달 돌아가면서 책을 추천하고 선정하는 방식은 내 취향이 아닌 책도 읽게 만들었고,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들은 나의 독서 경험뿐만 아니라 즐거움까지 넓혀 주었다.
하지만 나의 독서를 깊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독후감 쓰기였다. 독서 모임에서 독후감 쓰기는 필수가 아니었다. 평소 읽지 않는 책을 읽는 것도 힘든데 독후감까지 쓰는 것은 너무 부담스럽다는 의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후감은 쓰고 싶은 사람이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으로 정했다. 내 기억으로는 6-7명 회원 중 매달 독후감을 쓰는 회원은 1-2명 정도였던 것 같다. 나도 매번 독후감을 쓰지는 못했다. 독후감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대단히 많이 드는 일이었다. 우리는 보통 책을 읽고 재미있었다, 좋았다, 별로였다, 감동적이었다, 글이 아름다웠다 등의 간단한 감상평을 남기며 책을 덮는다. 하지만 한 권을 책을 읽고 나서 나의 생각을 완결된 글로 쓰는 일은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감정, 질문 등의 조각들을 모아두고 퍼즐을 맞추는 일과 같았다. 하지만 내가 모은 조각들이 모두 쓸모 있는 것은 아니었고, 부족한 조각들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찾아와야만 했다. 책을 읽는 것만큼의 에너지와 정성을 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으니 쓰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바쁘고 시간도 없는데 이번에는 쓰지 말자라며 나를 합리화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일 년 정도의 독서 모임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독후감이었다. 강렬하고 창의적인 생각과 느낌, 소감도 결국은 휘발된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두 번째 해 독서 모임을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에 한 해서는 반드시 독후감을 쓰기로. 혼자 보기 위한 글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오픈된 공간에 올릴 글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독서 모임 일주일 전에는 책을 완독해야 했고, 책 읽는 중간 인상 깊은 구절, 나의 생각들도 메모를 해두어야 했다. 독후감을 쓰다가 글의 방향을 정하지 못해서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쓴 적도 있었다. 물론 이번에만 쓰지 말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독후감을 써냈을 때의 감정은 단순한 만족감을 넘어섰다. 책 속에 깊이 들어갔다가 나온 나는 이전의 나와 미묘하게나마 달랐다. 복잡하게 어지럽혀진 생각의 타래를 하나씩 풀어내고 다시 엮어내는 경험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2년 동안의 독후감 쓰기는 나를 분명하게 성장시켰다. 생각의 실마리 하나를 붙잡고 오랜 시간을 들여 생각에 생각을 더해 덩어리를 만들고 완결된 모양으로 만드는 연습을 했다. 이 연습은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여 글로 쓰거나 말로 표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의 출발점을 찾아보고, 원인과 결과를 따져보며, 작가의 의도, 등장인물의 경험과 연결시켜 보며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책 한 권의 내용이 나의 경험이 되었고, 이전의 독서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였다. 글을 읽을 때 이해력이 향상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무엇보다 완결된 글을 써보는 경험은 나의 자신감을 키워주었다. 어려운 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다 보면 된다는 것, 나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나 결과를 재어 보지 않고 일단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글을 쓰면서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 오만함과 이기적인 마음도 많이 만났다. 나라는 인간을 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값진 경험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초등학교 시절의 독후감 숙제가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독후감 쓰기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서 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책 읽기의 즐거움은 힘들고 고난한 사유와 글쓰기의 과정으로 더 배가되며, 진정한 즐거움은 고통 끝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안 이상 나는 기꺼이 고통을 감수할 거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