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유홍준 작가 북토크 참여 후기
작가는 책으로 말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북토크에 가서 작가를 직접 만나보면 작가의 목소리가 독자에게 직접 닿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출판사에서 새 책이 출간되면 서평이벤트, 북토크와 같은 방법으로 마케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예전에 비해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나도 최근 꽤나 많은 북토크에 참여하며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서울에 다녀와야 하는 조금은 고된 일정이기는 하지만 다녀오고 나면 항상 뭔가 마음에 생각할 거리를 하나씩 안고 돌아오는 뿌듯한 시간이었다.
이번 유홍준 작가와의 북토크에 다녀와서 마음속에 남은 생각은 세 가지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 빛이 난다.
유홍준 작가의 전문 분야는 누가 뭐래도 미술사학이다. 특히 글, 그림, 도자기, 건축물 등 종류를 망라하여 한국의 문화재부터 일본, 중국 등까지 두루 섭렵하며 넓고 깊은 지식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유홍준 작가의 책은 사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게 읽은 책은 <국보> 시리즈이다.
<국보순례>, <명작순례>, <안목> 이렇게 세 권으로 구성된 ‘유홍준의 美를 보는 눈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 미술사 강의>가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의 지정 종목이고 ‘국보순례’는 갈라쇼 같은 거라고 한다. 그만큼 보통 사람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쓴 책인데, 나로서는 우리나라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큰 밑거름이 된 책이다. 물론 쉽고 재미있는 건 당연하다.
어쨌든 유홍준 작가의 강의나 글의 주요 소재는 미술사학인데, 그날 북토크의 주제는 우리나라 시 문학의 발전 흐름이었다. 사실 북토크를 신청할 때 유홍준 작가의 강의에 이어 김하나 작가와 함께하는 북토크가 이어진다는 설명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시 문학에 대한 강의를 한다니 좀 의아하기는 했다.
금요일 헐레벌떡 업무를 마무리하고 조퇴를 하고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 서울로 가는 일정이었던 나는 조금씩 잠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사실 초반의 강의에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작가가 좋아하는 시들만 골라와서 한글의 발전과 변천사와 관련하여 소개하는 유홍준 작가의 열정, 시간이 초과되었다는 주최 측의 전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준비한 강의는 모두 하겠다는 말을 하며 뒤이은 북토크 진행을 위해 기다리던 김하나 작가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의를 이어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 들어갔다.
좋아하는 시를 낭독하며 이 시의 이 구절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지 사람들에게 다 알려주고 싶어, 하나라도 더 소개하고 싶은 작가의 기분좋은 흥분이 느껴져 잠이 확 달아났다.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평소에 내가 너무 아끼던 것을, 좋아해서 늘 가까이 두고 있던 것을 처음으로 꺼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한 번 보라고 건네는 그 마음이 말이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다.
김하나 작가와의 북토크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의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느냐는 질문. 유홍준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감옥에도 다녀왔고, 7년 간 직업이 없이 백수였다. 그래도 시간 강사하고, 글 써서 원고료 받으며 집에 생활비는 줘서 아내가 힘들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내가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의료보험이 안되었던 건 참 힘들었었다는 말을 듣고 미안했었다는 이야기.
대학을 다닐 때 본인보다 문학에 있어서는 더 뛰어나 토론하면 항상 이겼던 한 친구,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아서 누구나 말하는 성공을 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했던 친구.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어느 날 연락해 와 만나러 나갔더니 버리지 못하고 보관해 두었던 전문 서적을 보자기에 싸고 와서 나에게 필요 없어졌지만 너에게 주면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아서 싸왔다는 말과 함께 건네주었다고 한다.
원하는 것을 하는 삶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두고 선택을 해야만 하는 걸까. 내가 가져보지 못한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공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유홍준 작가의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을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나? 40년을 넘게 살아도, 아직도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사람의 인생에서 결국 남는 건 사람이다.
이 책에는 유홍준 교수가 만났던 스승 와 벗에 얽힌 여러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백기완, 리영희, 홍세화, 김민기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인사들이 그의 스승과 벗이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들이 젊은 시절부터 함께 나눈 풍류와 멋을 나누는 교류, 의리가 눈물겹게 부러웠다. 그저 관심사가 같아서 그 오랜 시간 동안 교류를 해온 건 아니었다. 동고동락하던 동지 의식, 날카로운 지성의 대화,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의리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긴 인생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어 주는 것은 내 곁에 오래 남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1949년 생의 유홍준 작가.
앞으로 나오게 될 책, 쓰고 싶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북토크를 마무리했다.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듯했다.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선택한 삶을 사는 사람이 보여주는 생기가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