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 재지 말고
한 동안 우울감과 무력감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번아웃이었을까. 지금에서야 그때의 나를 그렇게 설명하지만 그때 나는 나의 상태를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극한의 피곤함이라고 생각했다. 쉬어도 쉬어도 풀리지 않는 누적된 피로. 몸과 마음은 끝도 없이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 같고,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숨을 쉬기 위해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일이 하찮았다.
그 시절의 나는 모든 걸 다 때려치우고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혼자 살고 싶었다. 자연에 파묻혀 살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유튜브에서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산속의 땅에 농막을 지어놓고 주말에 가서 힐링하고 온다는 도시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그 속에 나를 넣어 상상하며 대리 만족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내가 다 때려치우고 산속으로 갈 수 없는 이유를 떠올렸다.
정말 그렇게 했다면 나는 괜찮아졌을까. 잘 모르겠다.
그즈음 타로카드를 보는 분의 북토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타로의 기원, 인문학적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내용이었다. 말미에 원하는 질문이 있다면 타로를 봐주겠다는 말에 나는 어떤 질문을 할까 북토크 내내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여기를 떠나 깊은 산속으로 갈 수 있나요?"를 묻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소리 내어하지 못했다. 바보 같은 질문 같았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왜 질문하지 못했는지 알았다.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그냥 하면 되었다. 여기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면 떠나면 된다. 산속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면 가서 살면 되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 따위는 재지 말고. 나는 마음속으로 안 되는 이유를 하나씩 꼽아가면서 떠나지도 못하는 용기 없는 나 자신을 대면하지도 못했다.
내가 했어야 하는 올바른 질문은 무엇이었나.
질문은 누구에게 했어야 했나.
여기를 떠나면 나는 행복할까요?
아니. 지금 같은 상태라면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잖아.
거기서도 네가 불행한 수만 가지 이유를 찾고 있을걸.
너는 지금 조금 지친 거야. 쉬고 싶고. 위로가 필요해.
너를 너그럽게 대해 줘.
내 속에 이미 질문과 동시에 답이 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일상을 산다. 삶은 그렇게 살아진다.
그리고 가끔 다 때려치우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고요하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한다.
어쩌면 그 순간은 아주 조금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안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을 말이다.
조용히 가만히 앉아서 들여다 보고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앞뒤 재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