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역사의 현장을 목도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현재를 기록한다.

by 꿈꾸는 앤

민주주의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라는 정치 방식이 존재하긴 했지만 아테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시기에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단군왕검 이래 5000년의 시간 동안 국가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왕정이라고 하는 정치 방식을 이어왔다.


그리고 조선 왕이 가지고 있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겼다. 그 주권을 되찾기 위해 시민들이 목숨을 바쳤고, 마침내 주권을 되찾게 되었을 때 대한민국의 국민이 주인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다. 5000년을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사는 것이 당연했던 사람들이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다른 나라의 손에 넘어가자 목숨을 내걸고 지킨다는 건. 그리고 되찾아온 주권을 왕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건 말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건 아니다. 자신에게 잠시 맡겨진 권력이 제왕적 권한이라도 되는 것으로 여겨 헌법을 바꿔가며 자신의 임기를 이어갔던 독재자가 등장했고, 주권자인 국민들은 그 상황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4.19는 그래서 혁명인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방식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국민들이 본능적으로 독재자의 검은 속내를 알아차렸고, 거리로 뛰쳐나와 외쳤다. 초중고 학생들이, 대학생들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무력으로 진압하는 군과 경찰 앞에 맨 몸으로 섰다. 4.19 혁명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방식으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민주 항쟁이라는 희생을 발판으로 성장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소름 끼치도록 사실이다. 지금은 공기처럼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은 일정한 궤도에 올라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가는 줄 알았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등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도 민주주의라고 하는 제도의 근간이 흔들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12월 3일 늦은 밤이 오기 전까지.


민주주의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정치 제도인지 다시 생각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일상에서 민주주의 실천하고, 자신을 대신하고 대변하는 대표를 뽑는 높은 안목을 갖추고, 그 대표는 모든 국민들의 권리와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고 행사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고 다듬고 운영해야만 제대로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는 다름을 인정하는 정치다.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합의에 이르기 위해 시간 와 노력을 들여 대화하고 합의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의사 결정의 기본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2024년 12월 3일을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독재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킨 과거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과거라는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다. 역사는 흐른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는 과거가 될 것이다. 과거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그 엄중한 무게를 아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고, 장갑차와 총을 든 군인 앞에 그리고 매서운 겨울의 아스팔트 위에 섰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관저에서 체포되었다. 온 국민이 숨 죽여 그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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