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고향을 떠나온 S에게

가끔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방랑자 같다고 느끼지 않는지

by 꿈꾸는 앤

잘 지내니?


매일같이 미션을 해치우면서 하루살이 같은 일상을 살다 보면 시간이라는 것이 나의 일상과 분리되어 별도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 가 싶을 때도 있어. 하루살이 같은 인생에 시간이 뭐 그리 중요할까. 그럼에도 내가 내 시간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는 고백인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내 의지를 벗어난 시간은 뒤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곤 해.


어쩌면 다행이지. 일상이 지겹고, 버거울 때 지금 여기가 아니 곳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제멋대로 되돌아갔을 때,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리고, 발랄하고, 깔깔거리던 때로 돌아갔을 때, 우리는 함께였어. 그때의 우리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고, 많이 이리저리 흔들렸지만 그래서 온전히 ‘나‘로 존재했던 것 같아.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는 불려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어. 그래,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불렀지.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듯, 나는 젊음이 갖는 불확실성이 불안했고, 대도시에서 저 멀리 떨어진 고향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숨 막혔어. 그래서 결혼이라는 제도 위에 올라타 고향을 떠났어.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의 삶이 부유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명절이 되어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함께 깔깔거리던 우리가 다시 모일 때마다 나는 점점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고, 거리가 멀어지면 우리 사이에 함께 흐르던 시간도 서서히 분리되어 다르게 흐르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똑같이 나이를 먹고, 다 같이 학년이 올라가던 시간은 이제 끝났어. 결혼, 출산, 육아라는 일생의 과업들이 우리의 시간 위에 얹어지기 시작했고, 우리의 삶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어.


네가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미국이라는 곳이 얼마나 먼 곳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어. 여행이 아니라 정착을 하기 위해 언어도, 시간도, 문화도 다른 곳에 간다는 것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우리가 다시 만나지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곳에서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별일 없이, 남편과 아이들과 알콩 달콩 살고 있겠지. 매일의 일상을 살면서. 그럴 거라 믿어.


나는 말이야. 한 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고향에 갈 수 있는 곳에서 살면서도 부모도 친구도 없이 외톨이가 되어버렸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그런데 고향에 돌아간다 해도 되찾아질 것 같지가 않아. 영원히 뭔가 잃어버린 것 같아. 가끔. 시간이 자기 마음대로 뒤로 뒤로 거슬러갔을 때 잠시 머무를 수 있지. 아주 잠시 말이야. 너는 어떠니? 이렇게 네가 읽을 수도 없는 글을 쓰면서 너에게 연락 한 번 안 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친구일까. 미안해. 내가 이렇게 다 잃어버린 건 어쩌면 내 옆에 꼭 붙잡아 두지 않고 정성을 들이지 않은 내 탓이 가장 클 거야.


이제 나를 내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은 현재에는 없어. 과거와 연결된 너희들밖에는. 우리는 여보, 엄마, 아줌마, 이모, 선생님, 부장님으로 불리지만 그 어느 것도 온전한 나라고는 할 수 없잖아. 내가 여기에서 살면서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 많은 존재로 나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 내가 나로만 살 수 없으니까. 온전히 나였던 나는 거기에 두고 떠났으니. 그걸 잘 아는 내가 너를 더 많이 챙겼어야 해. 그렇지만 나도 왜 이렇게 내 삶이 떠다니는지, 마음이 조각난 채로 살고 있는지 이제야 어슴프레 깨달았으니 너무 나무라지는 마. 어쩌면 너는 나와는 달리 거기에 뿌리를 잘 내렸을지도 모르지. 너라면 그럴 수도 있어.


명절을 앞두면 누구나 조금은 감상적이 되어버리니까. 가족과 고향을 생각하니까. 그리고 나보다 더 먼 곳에서 살고 있는 너를 떠올리게 되니까. 이런 두서없는 감상적인 글을 쓰더라도 용서해 줘.


네가 가끔 한국에 왔을 때도 너를 못 만났어. 미안해.


그럼에도 우리는 영원히 남이 될 수는 없는 시간을 함께 가졌으니 앞으로 달려 나가는 시간 위에서 반드시 만날 거라고 생각해.


새해 복 많이 받아.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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