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아 우는 내게 내가 보낸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을.
연습하고 노력하면 잘 쓰게 된다고 하지만, 글쓰기도 역시 재능이다. 글을 읽다 보니, 좋은 글은 정직하다. 담백하고, 가볍다. 아니 가볍게 느껴지지만 가볍지 않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다. 차곡차곡이 아니라 꾹꾹. 밤새 뒤집어쓰고 잤던 침낭을 주머니에 욱여넣듯. 그렇게 담고 담는다. 그렇게 터질듯한 침낭을 던져두었다가, 어느 날 책상에 앉는다. 한꺼번에 폭발하지 않도록 여며 두었던 주머니를 조심스레 열어 조금씩 조금씩 꺼낸다. 펼쳐두고, 다시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가, 말았다가, 살살 달래 가며, 때로는 짜증을 참아가며 정돈한다.
때로는 포기할 때도 있다. 힘으로 억지로 욱여넣어도 마지막 한 귀퉁이가 절대로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고, 한숨 돌리고, 때로는 하루 이틀 후에 다시 시도한다.
아마도. 그렇게 썼을 것 같다. 납덩어리 같은 마음, 피해망상과 과도한 경계심 그리고 혼란을.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너무 진지해서 가볍고 화기애애한 대화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그렇지만 나의 무거운 마음으로 인해 상대방이 불편해지는 것이 싫은 사람. 그래서 속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엔가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런 사람들은 글을 쓰는구나.
가장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은 나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누워 있다가 뭘 좀 먹고 눈물 흘리고, 서너 시간 자다 일어나 출근하는 게 인생의 대부분인데 나한테 워라밸이 좋대. 저기가 괜찮은 직장이래. 그러면 다른 직장은 어떻다는 거야?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64쪽)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건 애정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아! 왜 진작 포기 안 했냐! 미련하기는. 쯧쯧. 욕봤다. 그건 네 인생과 가치관을 조롱하기 위한 똥이었다.” 단호하게 날 위로하는 일이 필요했다.(99쪽)
나도 가끔은 날 낳고 싶었다. 나를 나만큼 잘 아는 내가 헤아려주고, 말동무를 해주고, 편지를 써주고, 같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술을 마시고, 꼭 안고 재워준다면 좋을 텐데. 나의 작은 제스처마저 틀리지 않고 파악하는 친구이나 보호자이자 사랑 쓰레기통을 갖고 싶었다. 사랑 쓰레기통, 말이 좀 그런가? 내게 사랑은 양 조절에 실패한, 그다지 훌륭하지도 않은 요리와 극도로 소심한 요리사를 세트로 떠올리게 한다. 누구 주기에 망설여지는, 그러나 스스로를 괴롭힐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을 전담해 줄 그릇이 필요하다. 큰 그릇. 재질은 둔하고 튼튼한 걸로. 못 견디면 안 된다.(139쪽)
외할아버지에게는 그런 대화를 할 사람이 필요했겠지. 아마도 사는 내내.(138쪽)
생각을 멈추고 살면 돼, 저편의 당신이 말한다. 생각을 멈추면 다 죽어, 이편의 내가 말한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할 일을 한다. 저마다 판단하기에 가장 포기할 만한 것을 하나씩은 버린 상태다.(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