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내 친구는 인사동의 찻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 자주 놀러 갔고, 그 인사동 찻집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가게 이름이 '학은 둥지를 틀고' 였던 것 같다. 친구는 매일 일을 했고, 유난히 손님이 없는 요일이 있었다. 그런 날엔 친구가 낮에 일찌감치 매장을 열어도, 몇 시간 동안 손님이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친구와 신기한 놀이를 했다. 서로 너무 통하는 게 많은 친구여서, 우리가 말없이도 눈빛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테스트였다. 그래서 손님이 올 때까지 우리 한번 진지하게 영혼의 대화를 나눠보자고 했다. 친구와 나는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서, 아무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서로의 눈만 보고 7시간 동안 있었다. 우리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을 잰 건 아니지만, 첫 손님이 들어올 때 시계를 보니 7시간이 지나 있었다. 처음엔 생각을 했다.
친구의 마음을 읽으려고 해 보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내가 마음을 읽는다면, 그리고 그 친구도 내 마음을 읽을 것이라면, 어차피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어디쯤에선가 들었다. 아, 이건 정말 우리가 장난치는 게 아니구나 하고 느낀 것도 어디쯤에선가 그랬다.
우리의 행위는 개념이 아니었다. 개념으로는 우주 끝까지로도 갈 수 있었겠지만, 우리는 몸이었고 서로 한계가 있는 몸이었다. 그래서 생각은 멀리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왔다. 그건 마치 눈앞에 친구가 있는 풍경을 그대로 사진처럼 만들어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쿡 찔러 스크래치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었고, 내가 보는 것은 그 친구가 있는 풍경의 구멍 같은 거였다. 그것은 옛 극장의 스크린에서 노광 되어 불타는 것처럼 보이는 필름의 한 조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검은 눈동자 속에는 어쩌면 더 깊은 구멍이 있는 것 같았다. 검은색, 그리고 검은색 안의 검은색. 아무것도 아닌데, 그 아무것도 아닌 것조차 아닌 것.
우리는 눈을 깜빡이긴 했으나 눈을 감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을 뜨고도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보면서도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친구의 냄새, 찻집에 흐르는 공기의 맛, 내 무릎에 닿은 테이블 다리의 촉감, 친구의 평온한 숨소리가 느껴졌다. 우리는 편견을 넘어서 있었다. 서로의 이름을 잊고, 추억을 잊었다. 해석될 수 없는 침묵을 느꼈다. 아니 느꼈다는 말이 맞을까. 생각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느끼는 것조차 아니라, 그냥 존재함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