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가다가, 길에서 근사한 꽃나무를 보게 되어 잠시 멈추었다. 나무를 키운 사람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무를 만지작거리 다가가 다시 걸어갔다.
복권을 샀다. 큰 금액이 당첨이 되면 뭘 할까 하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는데, 긁어보니 다른 복권 한 장을 더 살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당첨이 되었다. 복권으로 바꾸지 않고 그냥 두었다.
그런데 근사한 꽃나무도, 우연히 당첨될 수도 있었던 복권도, 어쩌면 그런 것은 하나도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고 있던 몸의 길이다. 근사하거나 대단할 것은 없다. 가고 있던 몸이 만난 나무의 몸이고, 복권을 산 몸이 가던 길이다. 몸의 길을 따라서 가다 보면, 이런 만남이었다가 저런 만남이었다가 한 것이다.
몸의 길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한 살아감이다. 나 자신의 그런 삶이 뭔가 특별하거나 대단하지 않음을 알면, 이건 그냥 길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복권이란 건 그냥 당첨이 되기도 하고 그냥 당첨이 안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저 그렇게 펼쳐지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내가 해낸 것이라 여긴다면, 예를 들어 만약 어쩌다 큰돈을 얻게 되었을 때, 내가 잘해서 벌어낸 것이라고 여긴다면, 내가 착해서 복권에 당첨된 것이고, 일터에서의 성공을 뭐든 내가 잘해서 이뤄낸 것이라 여긴다면, 결국 거기서부터 두려움이 시작된다. 인생이, 살아감 자체를 위한 살아감이 아니게 될 때엔 속절없이 두려움이 찾아온다.
몸의 길을 가면서 운이 좋을 수도 있고, 운명이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러다 무언가 운이 좋아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참 잘 지내더니, 갑자기 그 사람이랑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을 너무 소중하게 여긴다면, 혹은 그 관계의 연을 자신이 어떻게든 통제하고 지켜내려고 한다면, 헤어질 때가 되어도 그저 보내주지 못하고 억지를 부리면, 깊은 허영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모든 만남이 우연이라는 것을 가끔 잊는다. 모든 인연이 행운이라는 것을 종종 잊는다. 길을 걷다 만난 꽃나무처럼, 그저 만남에 감사하고 아름다움을 만끽하면 될 일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낸 특별한 존재가 아닌 내 몸의 길을 가고 있는 존재이듯이 내가 만난 저 상대방도 특별한 존재가 아닌, 그저 자신의 몸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고레이다 히로카즈가 감독하고 송강호와 아이유가 나온 영화 <브로커>를 떠올려 본다. 영화에서 인물들의 기대는 부서지고 약속은 깨진다. 언제나 어떤 만남에서도 처음 생각대로 되는 일은 없다. 생각은 생각이었을 뿐이니까. 따지고 보면 세상에 룰들은 경험의 길 속에서 늘 위태롭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보장될 수 있는 삶이란 건 없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늘 그런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영화 내용 중 모텔에서 소영이(아이의 친모)가 자신들(아이 브로커들)을 경찰에 팔아넘길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송강호(브로커)가 소영이가 없을 때 자기들끼리 말하던 대사가 참 인상깊다.
"애 낳아본 사람 마음을 네가 알겠니. 소영이는 애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거야. 근데, 그래도 돼." 그 대사 참 좋았다.
항상 어디에나 어떤 만남에도 룰이 있긴 하다. 누군가 그 룰을 어겨서 나를 불리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원래 룰이란게 그런 것일 뿐이다. 어쩌면 이 몸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룰을 어긴 셈이다.
세상 어떤 아이도 약속의 온전한 이행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모두가 어느 날 세상 어디쯤엔가 던져진 것처럼 태어났고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순간, 한번쯤은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서로를 향해 말하게 될지 모른다. 참 엉뚱한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듣고 나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을 못잡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저마다 마음 약한 브로커들이다.
수많은 계획과 거래와 약속이 오가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하나 둘씩 깨지고 말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늘 만나게 되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경험을 타고 가면서, 내가 살면서 태어난 이래로 줄곧 품어왔던 그 문제란 진정 무엇이었는가를 정제하고 명료하게 닦아 나간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처음부터 결말과 미래를 미리 모두 알고 있었다면 누구도 아무 것도 납득할 수 없었겠지, 결국 때가 되지 않으면 모른다. 경험이 지나가고, 시간이 흘러가지 않고는, 끝나지 않고선 모른다. 아이가 커나가듯이 삶도 쑥쑥 자란다. 자라기 전에는 모를 것이다. 자란 후의 모습을 미리 안다면, 전혀 납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 속 여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그 남자를 죽이게 되는지, 나는 왜 내가 낳은 아이를 버리게 되는지를, 왜 사랑했던 가족이 헤어져 남남이 되어야만 하는지, 왜 계획했던 일은 수포로 돌아가는지 왜 우리의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는지, 그 모든 것을 미리 볼 수 있다면 끝없이 허망하고,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결국 아름다운 몸의 길을 따라 가는 여행이고, 그 여행에 진정 항복한다면 유혹이 범접할 수 없는 순수한 발견의 길이 될 것이다. 영화 속 그들처럼, 덜덜거리는 밴을 타고 끝없이 여행하듯이 몸들은 계속해서 만남과 헤어짐을 이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