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유가 뭘까? 혹은 목적이 뭘까?
어떤 의지도, 끌리는 지점도 없다. 사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목적은 없다. 건강도, 장수도 그다지 바라는 바는 아니다. 그저 흘러가고 있다. 내가 생긴 대로 흘러간다.
가끔 무언가를 꿈꾸기도 한다.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불타오른다.
불타는 것은 불타는 과정 자체가 전부다. 불이 타고난 뒤에 남는 것은 흩날리는 재일뿐이다. 그런데 불이 타다 보면, 이것저것, 그 불이 옮겨 붙어 같이 태운다. 불은 금세 번진다. 불은 타고 있는 순간이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없다. 이유가 없다. 다만 불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언젠가 상실을 안겨주겠지. 불이 타올랐었기 때문에, 그 빈자리에는 공허가 남겠지.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은 뭘까? 사랑이란 건 이유가 없다. 누군가와 사랑하고 함께 한다는 것엔 본질적으로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랑하는 이에게 헤어지자고 할 때 이유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도 같다. 그냥 이 삶이 주어졌고, 나는 살고 있다. 안다고 해서 목적이 생기지는 않는다.
몰라서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목적이라니, 그런 건 전부 허상이다. 왜냐하면 불타고 있을 땐 내가 불였는지 모르니까. 불은 그냥 계속 훨훨 타는 거니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유가 없다.
나는 그냥 이유도 없이 매 순간 현재와 헤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매 순간 새로운 현재를 만나고 있을 뿐이다. 그 헤어짐과 만남의 사이에 내가 있다. 어쩌면 나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이 있다. 또다시 오래된 신화를 들먹인다. 포로스 poros와 아포리아 aporia. 에로스는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
길이 있는 아비인 포로스와, 길이 없는 어미인 아포리아 사이에서.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늘 따라다닌다. 하루 중 여러 순간에 '사랑'이라는 말이 맴돈다.
벤치 프레스를 하며 누워서 마지막 세트에 인상을 찌푸린 채 안간힘을 쓰고 들어 올리다가도 "사랑"
아직도 못 끊은 담배 재떨이를 비우면서도 "사랑"
노을의 붉은빛을 보다가도 "사랑"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참 흔한 말인데 질리지도 않는 말이다. 사랑을 느낄 때는 묘한 정지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마치 잠시 인터넷이 느려져서 동영상이 버퍼링 걸리듯, 현실에 잠깐의 정적이 있다. 모든 게 괜찮아서, 다 좋아 보여서 사랑이 아니라, 발바닥이 압정에 찔리듯 갑자기 정말 엿같은 기분을 느낄 때조차, 불쑥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 속에서 '사랑'이라고 되뇌면서 뭔가를 발견하게 되곤 한다.
그건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닌데, 단지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가끔은 뭔가가 두려워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하고, 뭔가가 불편하게 느껴져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기 전까지는 내가 그 대상을 정말 '안다'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온전히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안다고 말한다면, 그런 걸 두고 위선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위선을 통해 보는 대상에는 오류가 있다. 사랑을 통해 보는 대상은 오류가 없다. 나의 일부라 여겼던 무언가에게, 그대로 나를 지나가도록 놓아주고, 내어주는 만큼 내가 느끼는 사랑은 더 크고 가까워지는 것 같다.
사랑에 이유는 없다.
사랑은 생각이 아니고 사랑이라서.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