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너머의 것

by 유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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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터를 잡고 산다. 어딘가에 머물고, 멈춰 있다. 달에서 본다면, 우리 각각이 사는 모습은 마치 글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별을 보고 터를 골랐다. 수도를 정하고, 거대한 건물의 기틀을 잡을 때 하늘을 보고 골랐다. 그들은 하늘을 읽어냈다. 그러나 하늘의 글자는 계속해서 변하였다. 하늘을 본따 만든 것이 우리의 '언어'이고 '말'이다.


그러나 언어는 늘 멈춰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언어에 갇히게 되곤 한다. 짧게는 계절의 변화도 그렇다. 봄의 언어는 가을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시대의 언어는 해당 시대가 지나면 역사적 맥락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는 언제나 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각자가 알고 있는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이랬고, 오늘은 이렇고, 내일은 이럴 것이다. 내가 지금 쓰는 글도 말이다.


세상은 그렇지만 사람은 말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새로운 어떤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을 보는 자신의 관점과 자기 안의 말이 변하지 않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을 보면 고정된 이미지가 없다. 그러나 ‘불’이라고 말했을 때 그 불은 말속에서 멈춘다. 그렇게 어딘가에서 멈추는 것이 말이라면, 사람은 언제나 말 너머에 살아 있다. 누군가 하는 말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며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 안의 말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진정 누군가를 볼 때, 그것은 계속 타오르는 변화와 경이를 보는 것이며, 그렇게 말 너머의 것을 듣는 과정에서 경청이 일어난다.


매일 어떤 사람을 보고, 대하며 그 사람을 느끼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뇐다.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더 나아가 나 자신조차 모른다. 내 몸이 살아가는 매 순간의 변화를 느낄 때, 나는 말 너머의 삶을 산다.

내 삶을 어떤 말로도 규정하거나 설명해 낼 수 없을 때, 삶의 밀도는 높아진다. 나의 시간은 점점 더 느리게 가고, 하나하나의 것들을 조금씩 살펴보게 된다. 나를 규정하는 말은 그 무엇이라도 나를 그저 어떤 잡초라고 여기게 한다. 야생화도 모르는 이의 말속에선 그냥 잡초다. 어제는 ‘꿩의 비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멋진 잡초를 보았다.


그러나 어떤 말과 어떤 대화는 오랫동안 남을지도 모른다. 내가 죽고 나서도 남는 대화, 정말 그런 대화가 있다. 죽은 다음에도 이어질 것 같은 대화가 있다. 말로 설명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무언가가 전해지는 대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면서 같은 순간에 발화하는 듯한, 서로 다른 삶을 살면서 같은 꿈을 꾸는 듯한 대화가 있다.

치매 노인끼리의 대화같은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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