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능력

by 유후용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혼자 무인도에서 별들만 보고 살아도 외로울 일은 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참 묘하게 섞여있다. 촘촘한 별들을 따라서 시선을 돌리다 보면

밤하늘을 보면서 내 눈동자를 살짝만 움직여도 몇 광년쯤은 거뜬히 뛰어넘는 거리를 이동한다.


내가 이 땅 위에서 우주를 보듯이, 저 별들은 우주에서 우리를 그렇게 보고 있겠지. 사람들끼리는 각자가 너무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별들은 그렇게 안 볼 거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때가 되면 헤어지겠지만, 만남과 헤어짐은 결국 착시일 뿐일지 모른다. 우리는 계속 만나왔고, 어쩌면 이제야 만났다고 생각하기 전에도 늘 함께였을 테니까.


2008년에 내가 만들었던 영화의 제목. 김행숙 시인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다.

그때 나는 7년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에 대한 슬픈 마음으로 그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살아가는 것은 모든 것이 헤어짐에 대한 일 같다.

어떤 순간도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는 것의 반복이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내가 가졌던 물건, 나의 바람, 생각, 열정, 고민, 곤경 등 그런 모든 것들과도 헤어진다.

물론 내가 들어와서 태어난 이 몸과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결국 헤어지는 것들에 대해 뭐든 붙잡고 싶다면 어려워진다. 혹은 헤어짐의 때를 예기치 못하게 맞이하게 된다면.


모든 것에는 헤어짐의 때가 있다. 이별의 순간, 또는 죽음의 순간이 있다. 나무를 지나 숲을 보며, 아무리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이별의 분기점들을 알 수 없다면 그 관점은 집착이 되고, 허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살면서 이별의 분기점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쩌면 죽고 나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 상상을 해본다. 죽고 나면, 내가 과거에 태어났던 모든 육신의 전생과, 앞으로 태어날 모든 후생의 육신의 삶을 모두 한 번에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몰라서 지금에 살아 있고, 죽으면 전부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알면 뭐 해, 죽었는데. 이미 지금의 내 몸과 헤어졌는데. 그러면 그 무엇도 더 알고 싶지 않으니, 차라리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게 나을 것이다.


이별의 능력이란 어쩌면 모름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좁은 길이다. 모름을 통한 앎의 길이다. 마치 연꽃 같은 것이다. 물속에 깊이 줄기와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 연꽃을 지탱하는 줄기와 뿌리는 수면 위를 보지 못한다. 수면은 오로지 연꽃만 본다. 하지만 '모름' , 즉 줄기와 뿌리가 없으면 수면 위를 보는 연꽃도 존재할 수 없다.

그렇게 모른 채로 삶을, 그 계속되는 헤어짐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것. 최종적으로 내 육신과의 헤어짐이 있을 때까지 말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별을 알 수 없다. 전체를 볼 수 없고, 헤어짐이 언제 올지 모른다.


내가 만든 '이별의 능력'이라는 영화에서 각각 다른 이별을 경험한 두 주인공은 생판 남이다. 그들은 서로의 이별을 나눈다. 한참 웃고, 또 한참 운다. 그들은 스스로 왜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이제 우리 뭐 할까요?" 남자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글쎄요, 담배나 끊으려고요."


담배는 끊는 것인가, 끊어지는 것일까. 언젠가부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를 목격하는 것일까. 의지로 담배를 끊는다는 생각은, 그리고 그렇게 끊게 되는 것은 자기 의지에 대한 과장된 확신을 심어준다. 누군가 금연에 성공했다면 담배는 끊었을지 모르는데, 다른 이별들은 잘 견뎌내고 있는 건지 되돌아볼 일이다.


삶이 주는 그 무엇에 대해서라도 반응하는 것만이 전부다. 이 쉽고 간단한 해법은 이별의 능력에 대한 중요한 힌트가 된다. 아픈 헤어짐을 겪고 난 후 핼쑥해진 친구를 만난다면 나 같으면 일단 밥부터 먹이겠다. 배고프면 먹고, 또 오늘 하루를 살고 내일 하루를 살다 보면 잊힌다.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반응하기다. 오직 반응만 하기 때문에 그 모든 헤어짐은 지나감이 될 수도 있다.

갔구나. 왔구나.


'난 그 사람을 잃었어.'가 아닌 '이제 그 사람이 없구나.'

'난 내 오랜 꿈을 끝내 이루지 못했어.'가 아니라 숨을 쉬고 그저 또 하루를 사는 것.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하겠어.'가 아니라 삶의 흘러감을 따라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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