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서퍼에게 중요한 것은 파도를 보는 일이다. 초보가 금방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바다에서 다가오는 파도를 계속해서 몸으로 느껴야만 그 파도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서퍼들은 보드를 타고 패더링하면서 먼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보드에 엎드려 바다에 뜬 채 흔들리면서 손을 물속에 지긋이 넣고, 파도가 오는 것을 느낀다. 손을 물에 넣고 있는 그 순간엔,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 대부분은 파도를 타지 못하고 휘말려버리고 말았던 실패의 기억들이다.
사실 먼바다에서 파도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이미 숙련된 서퍼들에게나 허용된 것이다.
초보 서퍼는 바닷가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모양부터 보아야 한다. 파도가 부서지는 모양을 보면, 그 파도의 방향, 그리고 이 파도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초보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파도를 잘못 타고, 또 잘못 탄다.
결국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뒤 다시 먼바다에 나가서 파도를 보고 있게 된다면 대부분은 자잘한 파도들이지만 간혹 크고 멋진 파도를 만날 때도 있다. 타면서 강한 설렘과 전율을 자아내는 그런 파도 말이다. 누군가 파도를 보면서 먼저 손을 들면 그 파도를 가로채선 안된다. 그건 서퍼들 사이에선 이런 의미의 신호다.
‘이건 확실히 내 파도입니다.’
오는 파도마다 타는 기억은 조금씩 다르게 된다. 서핑 선배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평생 잊지 못할 인생 파도가 한 번씩은 있다고 한다. 그들 각각의 무용담 레퍼토리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가을, 아내와 나는 함께 서핑을 하러 갔다.
당시 우린 둘 다 아무 준비도 없이 결혼한 상태였다. 우리에겐 돈도, 계획도, 직업도 아무것도 없었다. 간간히 프로젝트성 일은 했지만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영화를 함께 찍고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는데, 영화는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해외 영화제엔 비행기 표값이 없어서 초청을 받아놓고 가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신혼인데도, 종종 절망적이었다. 다행히 서핑은 돈이 드는 스포츠가 아니었기에 그런 우리가 하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우린 하루 종일 파도와 씨름한 후 밤바다를 산책했다. 그렇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하다가 모래사장에 앉았다. 나는 중얼거렸다.
“우리가 살면서도, 언젠가 정말 이거다 싶은 내 파도를 만날 수 있을까?”
그 말을 들은 아내는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함께 울었다.
서핑에서 돌아온 뒤 2주 후, 우리에겐 갑자기 첫 아이가 생겼다.
집에서 게임을 하다 말고 아내에게 임신 소식을 들은 나는 “뭐?” 하고서는 다시 별말 없이 게임을 했다. 내 속에서는 뭔가 울컥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결국 무시할 수 없는 뭔가가 다시 올라왔다.
그건 마치, 먼바다에서 큰 파도를 느끼는 손의 감각과도 같았다. 이 파도가 내 인생의 파도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었던 종류의 큰 파도임은 분명했다.
얼마 후부터 그렇게 필연적으로 파도에 휘말린 나는 욕망의 파도, 기대의 파도들을 연이어 만나게 되었다. 그 파도들에 정신없이 휘말렸고,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아내와 나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으로 나아갔다.
되돌아보면 살면서 파도가 한 번도 멈추었던 적은 없었다. 내가 그 파도를 알든 모르든 태어난 순간부터 언제나 파도 안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결국, 일생일대의 파도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살면서 최대의 기회를 만난다는 것은 뭔가를 희망하고 기대하면서 기다리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최악의 불운 역시 그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에 있게 되는 것이었다.
수없는 부서짐을 보면서 점점 그것을 깨닫게 된다. 파도에 대한 일말의 기대라도 있다는 것은 결국 부서짐을 만들게 될 뿐임을 말이다.
중요한 것은 계속 이어지는 파도를 대하는 인내와 끈기다. 어찌 보면 인생 파도의 무용담을 신나게 말하던 사람들은 아직 살면서 더 파도에 부서질 일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완전히 파도를 통달했다.”라고 누군가 말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앞으로 예측하지 못하고 만나게 될 어떤 파도로 인해 뭔가 크게 부서질 준비가 되었거나, 혹은 다시는 더 큰 파도에 직면하지 못하게 된 채 입만 나불거리는 서퍼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파도는 결코 예측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스포츠 중에 서핑은 가장 위험한 스포츠다. 거친 자연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40년 경력의 서퍼도 파도를 타다 실수로 죽는 것이 서핑이다.
우리 자신도 그 자연의 일부이기에,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할 뿐이고 완벽한 것이라 말하기는 쉽다. 어쩌면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완벽함’이란 나의 삶이 경험하는 ‘불완벽성’을 깨닫게 해 주면서, 그 이원적 측면으로 존재한다. 삶은 끝까지 불완전하기에 완전한 것이다. 즉, 살아있기에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며, 살아있다면 모든 게 이원적이다. 완전함이란, 그 나아감 속에서, 그 계속 이어져가는 파도의 움직임 안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결국 언제나 계속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늘 다시 또 다른 파도를 기다린다. 죽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 파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듯 느껴질 그 불완전한 경험의 길. 매번 새로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서핑 자체를 살아가면서, '둘' 일수밖에 없는 인간의 경험적 삶 안에서 '하나'인 존재를 자각하게 된다는 것.
늘 끈기를 가지되, 언제나 또 한 번의 서핑을 하게 될 기다림 속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