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라는 동물

by 유후용


오랫동안 먹이고 보살피던 동물을 방생하듯이, 나는 더 이상 내 몸의 주인이 아님을 알았다.

그 동물을 보내면서는, 키운 정이 아무리 착각일 뿐이었더라도 보내는 순간은 슬프다.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시절에 대한 추모이기도 하고, 시원섭섭한 이별이다. 마치 담배를 끊는 것과도 같다. 내가 나 자신과 이별을 하게 된다니, 어떻게 보면 관념적인 느낌이 들지만 오히려 참 단순하고 쉬운 이야기다.


밖으로 나와서 섰다. 발에 닿는 흙의 질감이 느껴졌고, 중력이 당기는 만큼 지탱하고 있는 몸의 힘을 느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지만, 이건 변하지 않는 한 덩어리라고 주장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건 살이기도 했고, 근육이기도 했고, 힘이고 뼈이고 피였다. 또 음악이기도 했다. 마치 평생이라는 길이만큼 긴 노래 같았다.


벌써 40여 년 동안 들려오던 노래인데, 결국은 계속해서 이어지던 그 노래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안다. 어딘가에서 낯선 냄새를 품은,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드디어 꽉 쥔 손을 놓았다. 내 몸을 쥐고 있는 줄 알았던 목줄은 사실 어디에도 없었고 단지 그 줄을 놓치지 않겠다며 꽉쥔 내 손이 있을 뿐이었다.


내 얼굴에 그 바람이 불어오기 전까지 나는 잠시동안 나를 잊고 있었다. 내 몸은 보고, 듣고, 살아 있었지만 그런 줄 몰랐다. 시간을 한 움큼 도둑맞았던 것이다. 혹은 빌렸던 시간을 어느 정도 미리 갚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가족이 있었고, 동시에 가족이 없었다. 나에겐 친구가 있었고, 그러면서 외톨이였다. 아침부터 석양을 보았고, 저녁엔 커튼을 걷었던 것이다. 나는 보면서도 보지 못했고, 생생히 살아 있는 채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렇게 바람이 불어온 순간, 이제야 나는 내가 이미 바람임을 느꼈다.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내 얼굴에 찾아온 바람이기도 했다. 서걱서걱 써나가는 종이에 연필심이 쓰고 있는 글씨처럼,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이 글씨가 나인줄로만 알았던 나는, 실은 빈 종이였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였음을. 생명수를 퍼낸 성배를 마신다. 성배는 비어 있었지만, 퍼낼 때는 차 있었고, 마실 때 비로소 비워지고 있었다. 먼저는 나중이고, 삶은 죽음 이후다. 나는 바람을 찾아다닌 적이 없었다. 바람은 그냥 나에게 불어오는 것일 뿐이었다.


길가에 핀 꽃은 순수한 진실을 산다. 싹을 틔웠고, 자랐고, 피어났고, 시든다. 새들도 그렇고, 개도 그렇다. 내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조차 전혀 없다. 일은 일어난다.


나는 본다. 나는 살고, 본다. 살면서 숨 쉬고, 보고, 먹고 싸고 그러다 죽는 것이다. 그런 살아있음이 유일한 나의 진실이다. 지금을 보고, 의식한다. 오직 그것뿐이다. 음은 주인이고 양은 손님이다. 내 몸은 주인이고 내 의식은 객이다. 삶에 대한 구경을 시작하는 순간의 경이가 이어진다. 숨을 쉬고 있어서, 내가 쉬는 숨을 느낄 수 있어서 이 모든 것을 만끽할 수 있어서 살아있어서 죽을 수 있어서 죽게 될 것이기에 우주의 먼지만큼이나마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진실은 언제나 그 스스로 드러나 있다. 있는 그대로, 살아있음 그 자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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