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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Sep 29. 2019

2019 한스 짐머 라이브 후기

이 공연을 선택하시면 일생일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꼽으실 겁니다.

THE ANOTHER LEVEL


한스 짐머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을 보고 온 내 한 줄 소감이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들의 공연을 보러 다니는 나다. 하지만 한스 짐머의 공연은, 아니 한스 짐머와 그의 세션들은 이 한마디로 표현 가능하다. Another Level.


물론 장르가 다르니 이런 비교가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지만... 제아무리 전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라고 해도 이런 일치감을 느낄 수 없었다. Harmony, 그야말로 각자의 개성을 잘 조화시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연주하는, 그리고 지휘자에 따라 컬러가 확연히 달라지는 다른 오케스트라와 완전히 다르다. 그냥 존재하는 차원 자체가 다른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2019년 9월 28일, 29일 양일간 Kspo Dome에서 열리는 한스 짐머 라이브 2019


2년 전 Slow Life Slow Live로 첫 내한 공연을 본 후, 오빠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세션들이 미쳤어. 그 사람들 한스 짐머의 악기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들 같아. 태어날 때부터 그런 괴물 같은 연주를 했을 거 같단 말이야.”


이번에도 같은 느낌이었다. 한스 짐머를 복제해서 모든 악기를 그가 연주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이 이상의 연주는 보고 들을 수 없으리라 확신한다. 그들은 짐머의 손이요, 입이며 귀요 두뇌라. 더 놀라운 건 투어 행선지마다 바뀌는 챔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합이다. 마치 투어를 쭉 같이해 온 이들처럼 세션들과 비슷한 레벨을 선보인다.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짐머 매직이란 말인가?


음향은 2년 전과 비교할 수가 없다. 제아무리 잠실 주경기장이라 해도 공중으로 퍼지는 소리를 어찌 막을까. 예전엔 체조경기장 음향 난반사되어 싫어했는데 천장 공사하고 Kspo Dome으로 재개장한 후 무척 만족스럽다.


(오늘 두 차례 음향 사고(?)를 제외하면 무척 무척 만족. 그렇지만 지니뮤직아 음향 똑바로 신경 안 쓰냐?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소리 뭐니? 그리고 전광판 컷 넘긴 분 누구세요? 와... 진짜 컷 못 넘기더라... 포인트 연주자를 잡아줘야 할 거 아닙니까.)


명실상부 이 시대 최고의 영화음악 거장. 한스 짐머.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감히 얘기하건대, 크리스토퍼 놀란과 한스 짐머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영광’이라고 할 만큼 그의 음악도 최고지만 라이브 연주 또한 최고였다. 이번 내한 공연을 통해 본 한스 짐머의 모습... 덩치에 안 맞는 조그만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구부정하게 쪼그려 앉아(거대한 몸을 있는 대로 구겨 앉은 모습)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손으로 조심스레 건반을 짚는 모습에서, 다른 클래식 거장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대가의 풍모가 느껴졌다.


그는 이전에도 마스터,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이 걸맞았지만, 무대 위에서 더 원숙해지고 더 여유가 생겼다 해야 하나? (예전 내한 때 오셔서? 아니면 스코어 영화에서?  자기 무대 공포증 있다 하셨던 것 같은데 투어를 많이 다니시면서 여유가 좀 생기신 듯...)


다시 한번 더 얘기한다. ‘한스 짐머와 동시대를 살며 그의 공연을 볼 수 있어 크나큰 영광’이라고. 지난 내한 때는 숨을 죽이며 온 신경을 집중할 정도로 음악에 압도되었다면, 이번에는 아는 레퍼토리에 프로그램... 아는 멘트... (그리고 얼마 전까지 영어로 얘기하고 다녀서 그런지 이전보다 더 잘 들리기도 함….)그리고 2017 Live in Prague 앨범으로 미리 예습 복습 철저히 하고 와서 공연을 잘 즐길 수 있었다. 리듬도 타고 입안으로 멜로디도 흥얼거리고...



샤트남 싱 람고트라(드럼) /  거스리 고반(기타) / 티나 구오(첼로)


한스 짐머의 음악과 공연에는 세 중심축이 있다. 첫째는 기타리스트 Guthrie Govan(거스리 고반), 둘째로 드러머 Satnam Singh Ramgotra(샤트남 싱 람고트라), 그리고 마지막 첼리스트 Tina Guo(티나 구오).


기본적으로 한스 짐머의 음악은 베이스를 강조한 록 음악을 기반으로 그 영역이 확장된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람고트라의 드럼이 음악의 뼈대를 구성하고, 고반의 기타가 근육과 살을 구성하며, 구오의 첼로 연주로 피부를 입히면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 실제 어제 공연에서도 세 사람의 존재감은 빛났다. 내가 얘기한 '한스 짐머의 악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가리키는 수식어였다.


특히 람고트라의 드럼은... 도인과도 같은 모습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지만 그가 쪼개는 박자와 리듬에서, 그의 손끝에서 짐머의 모든 음악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그 표현은 절대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티나 구오...! 그녀는 그냥 혼자서도 빛나는 뛰어난 퍼포머다. 원더우먼의 테마곡인 'Is she with you?'가 정말 잘 어울리는... 구오가 아닌 다른 첼리스트 어느 누군가를 데려온다 하면, 한스 짐머 밴드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페드로 유스타체(목관 신디사이저) / 나일 마 (기타)


어제 이전 내한과 달리 주목한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목관 신시사이저였던 Pedro Eustache(페드로 유스타체). 지휘자 Gustavo Dudamel(구스타보 두다멜)과 같은 베네수엘라 출신인 그는 헤어스타일도 두다멜과 참 비슷하다. 이전 공연에서 봤을 때는 크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는데 어제 공연에서는 존재감이 무척 두드러졌다. 앞으로의 한스 짐머 내한 공연을 빼먹지 않고 계속해서 즐긴다면 유스타체의 발전 또한 주목해 볼 생각이다.


(연주와는 별개로 여전히 꽃미모이신 기타리스트 Nile Marr(나일 마) 님... 어제도 눈호강 감사합니다... )


아마 나는 몇 년 뒤에 한스 짐머가 다시 내한해 공연을 한다면 또 망설이지 않고 예매할 것 같다. 무대 위에서건, 본업인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의 모습이건 간에 이 거장의 끝나지 않은 발전을 계속 지켜보고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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