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 먹고 이런 고민 할 줄 몰랐다.
클래식 음악 분야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이를테면 BTS나 KPOP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하는 분야가 아닌 마니악한 분야였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시장 자체도 침체되어 있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한국어로 번역된 자료들은 아주 오래전에 번역된 자료들 -심지어 도서관에서 보존용 자료로 분류해서 대출하면 열람하는 데 시간제한은 물론이거니와 열람 시 하얀 면 장갑을 끼고 봐야 하는 자료도 있었다- 인 데다, 일본에서 번역한 자료를 한국어로 재번역해 정보의 오류가 존재하기도 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 거다, 어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학부를 졸업할 때는 그랬다.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위한 공부라던가, 학위를 위한 공부는 이제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졸업 후 작가가 된 후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던 건 함정...-_-;) 만약 대학원을 가고 석사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내 전공인 미디어와 관련된 공부가 더 하고 싶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난 내 전공을 무척 좋아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때문에 이쪽 분야의 공부도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나. 나이 30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 질 줄. 그것도 석사도 박사도 아닌 학부 공부가, 내 전공과 생판 상관도 없는 학부의 공부가 다시 하고 싶어 질 줄.
3년 전만 하더라도 그냥 막연히 ‘유학을 가면 좋겠다’ 정도였다. 마음에 불씨 하나를 심어둔 셈이다. 두 차례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마음에 존재하던 작은 불씨에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작년에 크게 아프고 난 직후에 든 생각이었다. ‘진짜 유학을 떠나볼까? 막연히 생각만 하지 말고, 가게 된다면 어느 국가의 어느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대략적인 예산이라도 짜 볼까?’
그 당시에는 정말 한국에 있기가 싫었다. 한국의 모든 것이 싫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싫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는 것도 싫었고, 아픈 것 때문에 거르지 않고 식사 후 약을 챙겨 먹는 것조차 싫었다. 공황 발작이 재발한 직후였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다른 곳으로 떠나면 살고 싶어 질까 싶어서였다. 더불어 앞으로 평생토록 내가 음악사를 붙들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내 부족함을 채워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고.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나는 유학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학과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학 박람회 갔다가 상담 예약 리스트에 이름 걸어두고 온 게 다임...-_-;) 영어권 국가가 아닌 제3국을 생각했기 때문에 유학 준비 중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은 어학성적 만들기다. 핑계라고 하면 핑계겠지만, 이미 한 계약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이 끝나지 않아서 어학 공부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어학공부 알파벳이라도 떼어야 유학을 구체화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그렇지만 1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유학에 대한 생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1단계인 어학 성적조차 얻지 못했다는, 정확히는 어학 공부를 시작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에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내 발목을 잡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던가... 하지만 내게 나이는 큰 문제였다. 어정쩡하게 적지도 많지도 않은 30대 중반의 나이가 가장 큰 문제였다. 준비기간을 1년 반에서 2년 정도 가지고, 학부 6학기에서 8학기를 하고 귀국을 한다고 생각하면 내 나이는 40대 초반이 될 것이다. 마흔하나, 마흔둘... 그쯤 되겠지. 가장 경제활동을 왕성히 해야 하고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할 30대 중후반의 나이를 오롯이, 공부하는 데만 쓰겠다고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석사도 박사도 아니고 학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써먹을 데가 있긴 할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다못해 2년에서 3년만 더 일찍 눈을 떴더라면...’ 한탄을 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지만 거의 매일같이 이런 생각을 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장담도 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다 못해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 조차 10년 만에 바뀌는데. 아니...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 하다가 공부가 다시 하고 싶어 지기도 하는데. 인생을 살면서 장담할 수 있는 게 있긴 한 걸까? 그래서 유학을 가겠다 단정적으로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뱉어 놓은 말 때문이라도 꾸역꾸역 하게 될 텐데... 내 마음이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더더욱 그런 얘기를 입 밖에 꺼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