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의 변화로 인한 산업구조 재편과 그 미래
아카데미와 기생충의 이야기를 다룬 글(That quote's from Scorsese)을 다시 읽어보니, 좀 더 쉽게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상세하고, 좀 더 친절하게.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맞아 여느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영상 산업의 미래 또한 격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므로.
2013년 OECD에서 22개국 15만 명을 대상으로 방문면접조사를 해 파악한 결과, 대한민국 성인의 실질 문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국가 평생교육 진흥원의 조사 결과도 2017년 기준 성인의 22.4%가 문해력이 떨어져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실질 문맹이란다. 비단 조사 결과만 가지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도 비슷했다. ‘요즘 아이들 맥락 파악을 잘 못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교과서 읽기 시키면 제대로 못 읽는 난독증인 아이가 우리 반에 있다.’, ‘요즘 고등학생들 수학이랑 영어는 잘하는데 국어영역 점수 올리는 걸 제일 힘겨워한다.’ 같은 이야기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린 시절에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 부르며 부모님이 정해주신 시청시간에만 볼 수 있었고, 그 외의 시간에는 동네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를 뛰어놀던가, 동네 흙바닥에 주저앉아 소꿉놀이를 하던가, 아니면 부모님이 전집으로 사다 놓으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가생활이기도 했지만, 간접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창구이기도 했다. 독서 습관이 잘 되어 있을수록 학습능력이 좋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같은 시간을 투자한다 할지라도 효율이 높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내 부모님께서는 ‘다른 데 쓸 돈은 아껴도 책 사는 돈은 아끼지 마라’ 하실 정도로 독서의 중요하게 생각해 주신 덕분에, 크게 어렵지 않은 중학교 교과과정 까지는 나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독서량이 이전 세대에 비해 부족하다. 그로 인해 그들 세대의 문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문제는 문해력이 비단 학습과 텍스트 콘텐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콘텐츠를 접하는데 필요하다. 아니 콘텐츠를 접하는 것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사람들과의 대화, 커뮤니케이션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소위 말하는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교육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 말씀도 그렇다. ‘아이들 어휘력이 점점 떨어진다.’ 아니, 지인피셜로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아홉 살 차이 나는 내 남동생만 봐도 그렇다. 비슷한 뜻이지만 용례가 다른 단어를 혼합하여 사용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표현이지만 비슷하게 알고 사용하기도 하여 몇 번 지적해 준 적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 문해력의 차이 때문에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들의 변화를 끌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콘텐츠의 서사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혹은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거나 비슷한 등장인물이 나오면 이해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결국 이야기는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네이버의 웹소설 서비스에는 등장인물의 대사마다 등장인물의 캐리커쳐가 붙어 있을까. 웹소설의 주 소비층인 아이들이 이런 방법까지 사용하지 않으면 소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관련 다큐가 보고 싶으신 독자가 있으실까 봐...
EBS 다큐프라임 - [교육대기획] 다시, 학교 10부-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_#001
EBS 다큐프라임 - [교육대기획] 다시, 학교 10부-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_#002
EBS 다큐프라임 - [교육대기획] 다시, 학교 10부-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_#003
사실 수용자 능력치 변화에는 텍스트 콘텐츠의 소비량이 절대적으로 하향한 것도 있지만, 콘텐츠 소비량의 부족만큼 영상 콘텐츠를 소비한 것도 한몫했다. 텍스트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콘텐츠 특성상 맥락이나 문맥 파악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서사나 논리로 콘텐츠를 정리하고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진 찍듯 샷과 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눈은 카메라 렌즈, 뇌는 카메라의 필름이나 이미지 처리장치가 되어 장면 그대로를 저장하는 것이다. 영상 콘텐츠를 본다고 해서 그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함의를 소비한다기보다는 장면 장면의 강렬함만 소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 영화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해서 좋았어!” 에서 “그 장면 진짜 강렬하고 쩔지 않았냐?”로 변화하는 것이다. 일례로 초등학교 교사이신 내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어머니는 연말 즈음 학생들에게 애니메이션을 한두 편 보여주시곤 한다. 1~2년 전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본 아이들은 이야기에 집중했는데 올해 담당한 아이들은 같은 학년이었지만 달랐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 주로 이야기한 것은 장면의 강렬함 혹은 그 장면이 웃기다는 얘기였다고 한다.
또 다른 수용자의 변화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의 변화다. 원래도 아이들은 산만하고 짧은 집중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와 같은 짧은 콘텐츠 소비가 익숙해서 그런지 긴 콘텐츠를 소비하지 못한다. 인내심도 부족하다. 커뮤니티나 SNS에 긴 글이 올라오면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 ‘길어서 안 읽었음. 요약 좀 부탁’만 봐도 그렇다. 비단 텍스트 콘텐츠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상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지루해지거나 자극이 적어지면 망설임 없이 X 버튼을 누르거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다. 그렇다 보니 콘텐츠들은 소비되기 위해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 짧지만 자극적으로. 한 컷 · 한 신도 놓치지 않고 자극적이고 강렬해야 한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나 강-약-중강-약 같은 것들은 필요하지 않다. 강-강-강-강 일수밖에 없다. 또 콘텐츠의 길이는 무조건 짧아야 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주된 소비자, 수용자의 능력치 때문에 콘텐츠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부터인가 원작 코믹스를 영화화 한 작품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할리우드 5대 메이저 스튜디오인 월트 디즈니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유니버설 픽쳐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컬럼비아 픽처스들 중 세 개 스튜디오가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다. 디즈니 스튜디오는 마블 스튜디오를 산하에 두고 마블 코믹스 원작을 영화화하고 있고, 워너 브라더스 사는 마블의 라이벌급인 DC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다. (소니 픽처스는 스파이더맨 판권이 있어 마블과 합작하기도 하고 단독으로 제작하기도 함.) 이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도 마블이나 DC와 같은 프랜차이즈를 만들기 위해 다크 유니버스라는 이름을 붙여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이런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제작 · 배급 비율이 낮았지만 이제는 1년 동안 극장에 배급되는 양의 1/3에서 많게는 1/2까지 차지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높은 비율이 되었다. (당장 국내 최대 관이라는 용산 CGV IMAX관에 걸리는 영화들만 봐도 그렇다. 프랜차이즈 영화가 걸려있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과 비교했을 때 엇비슷하거나 차이가 거의 안 날 것이다.)
이렇게 프랜차이즈 중심으로 콘텐츠 시장이 재편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 큰 이유일 것이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의 총량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살게 되면서 소비자들을 자신들의 콘텐츠에 계속해서 붙들어 매 놓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콘텐츠에 충성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팬들은 새 콘텐츠가 나오면 세계관의 설정과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적당한 완성도만 갖춰 놓으면) 극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들은 콘텐츠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상품 또한 아낌없이 소비한다. 제작 스튜디오들은 이 점을 주목하여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데 열심히다. 프랜차이즈는 캐릭터 사업을 토대로 한 OSMU (One Source Multi Use)에도 용이하다.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팔고, 테마파크에 관련된 놀이기구와 체험존을 만들어 사람들을 입장시켜 놀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하나의 세계관에서 좀 더 확장된 세계관으로 애니메이션과 게임, 드라마 등 더 많은 콘텐츠를 양산하여 사람들에게 판매한다. 이렇게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OSMU가 용이해서, 단순히 서사와 영화적 완성도만 가진 생산물로 승부하기엔 앞서 언급한 수용자들의 변화가 극명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제작사들은 이런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나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와 같은 휴대용 전자기기의 보급이 일반화되면서, 넷플릭스를 필두로 한 OTT(Over the top)* 서비스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이전에 비해 날개를 단 셈이다. 단순히 제작사에서 제작해 극장에 배급한 이후 콘텐츠를 받아 자신의 유통망에 유통시키는 것에서 시작해, 이제는 직접 제작과 투자를 맡아 다른 OTT 플랫폼과의 차별을 꾀한다. 이를테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마인 <하우스 오브 카드> · <기묘한 이야기> · <킹덤>과 같은 시리즈물, <옥자> · <로마> · <아이리쉬 맨> 같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같은 것들이 이런 배경에서 제작되었다. 넷플릭스뿐이 아니라 OTT 산업에 뛰어든 기존의 제작사들도 마찬가지다. 디즈니는 자신들의 OTT 서비스로 디즈니+ 서비스를 론칭하며 앞으로 극장에 걸 콘텐츠를 만드는 기존 제작 시스템과 더불어 OTT 전용 콘텐츠를 제작할 것이라, 콘텐츠 수용자들의 충성도를 더 높이기 위해 기존의 프랜차이즈 세계관을 공유하며 더 확장할 것이라는 것도 함께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론칭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또한 자신들의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열심히다.
* over-the-top 용어에서 top은 TV 셋톱 박스(set-top box)를 뜻한다. OTT 서비스는 초기에 셋톱 박스를 통해 케이블 또는 위성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광대역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발달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해져 PC,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로 OTT 서비스가 확장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버 더 톱 서비스 [Over-The-Top] (UHD 방송과 VR, 2017. 12. 30.,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앞으로 OTT 서비스를 통해 유통될 콘텐츠의 총량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사용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용자들은 가성비나 가심비를 따지며 OTT 서비스를 자주, 더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우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티켓값만 만원 전후를 써야 하지만, 넷플릭스는 한 달에 최소 9천5백 원의 금액을 지불하면 플랫폼 안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극장까지 가는 교통비 지출도 없이, 퇴근 후 샤워를 하고 편한 옷차림으로 캔맥주 하나를 들고 넷플릭스 앞에 앉는다. 이런 OTT 콘텐츠 소비 패턴을 팍팍한 삶의 낙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 봐도 앞으로의 OTT 시장의 성장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를 맞아 기존의 영화 산업은 큰 타격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OTT 서비스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영업이익 급감, 디즈니+와 넷플릭스는 가입자 수 크게 늘어 - 씨네 21) 영상 콘텐츠 소비에 대한 변화는 시대와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점진적으로 이뤄져 왔지만 전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을 맞으면서 그 변화의 격동기를 맞이한 셈이다.
OTT 산업의 성장세가 계속될수록, 극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존 영화 산업 시스템 또한 그들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세계 최대 영화산업 박람회인 시네마콘(CinemaCon)에서 극장에 도입할 수 있는 상영 신기술들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9년 시네마콘에서 CGV의 자체 상영 기술인 4DX와 스크린X가 주목을 끌며 많은 계약을 이끌어낸 것은 이런 노력의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제작자들 또한 기존의 영화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이 신봉하는 영화적 가치(*영화를 뜻하는 단어에는 Movie, Film, Cinema 셋이 있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영화적 가치는 예술적 가치, 미학적 가치를 가진 Cinema적 가치를 얘기한다. OTT로 유통되는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상의 경우 Movie-Moving Pictures, 오락적 가치를 가진 영상이라 할 수 있을 듯.)를 지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 중이다. 그리고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은 이런 시네마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제3 세계 제작자와의 협업을 도모하는 타이밍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분석한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이 신봉하는 영화적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임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결국 영상산업은 크게 투트랙으로 흘러갈 것이다. 기존의 영화 산업 구조는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더 도입하고 그런 경험을 극대화하는 콘텐츠들 중심으로 제작되어 유통될 것이다. 이른바 극장 최적형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그의 주특기를 이용해 IMAX를 통한 체험형 영화를 계속해 만들 것이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사가 또한 기존의 극장형 영화 산업을 지키는 첨병과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더 압도적인 장면 장면의 영상미와 미장센 그리고 수용자를 빨아들일 듯한 흡입력을 가진 내러티브와 연출 · 편집이 필요해지고, 제작자들과 연출자들은 이런 구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극장 산업구조와 별개로 OTT로 대표되는 홈 엔터테인먼트 영상산업은 다른 의미에서의 고민이 계속될 예정이다. 매달 쏟아지는 새로운 영상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수용자들은 재미없다고 느끼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그 영상을 꺼버린다. 홈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에게는 리모컨 혹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만드는 ‘극장용 콘텐츠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촘촘한 흡입력을 가진 서사’에 대한 고민이 계속해서 필요해질 것이다.
이런 변화들로 인해 제작자들은 피곤해지겠지만, 영상 콘텐츠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행복한 비명을 질러도 좋겠다. 이런 역동적 산업 변혁기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콘텐츠들이 풍부하게 쏟아졌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향유할 기회를 가졌으니 말이다.
* 이 글에 영감을 주신 김병선 교수님, 늘 건전하고 유익한 토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