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케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제발 바지 좀 신고 다니지 말아라!” 하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어느새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통 넓은 로우라이즈 팬츠, 그리고 (우리 엄빠 용어로)'뽀오트' 같은 워커와 버스 손잡이 만한 링귀걸이가 유행하던 그 시절. 나 또한 요즘의 힙(hip)함과 다른 힙합(hip-hop) 패션의 끝자락에 걸쳐 있었던 고등학생이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요즘 어렵지 않게 2000년 전후 그 시절 것들이 유행 중인 것 같다. 2022년 시즌 명품 브랜드 미우미우에서 선보인 로우라이즈 팬츠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행일 것 같은 패션’이라는 반응을 넘어서 또다시 유행 중이다. 로우라이즈 팬츠가 인기를 끄니 덩달아 배꼽을 노출시키는 크롭 상의들도 유행하고 신발은 우리 엄마 아빠가 학을 떼던 그 시절의 워커 같은 통굽에 무거운 플랫폼 스타일이 유행이다.
그런데 이 세기말 감성이라는 게 비단 패션에만 국한되어 보이지 않는다.
건강상의 이유로 2022년 한 해 동안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던 나는 지난 10여 년간 클래식 덕질하느라 잠시 쉬었던 K-Pop 휴식기를 메꾸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케이팝 2세대 아티스트 (마지막 아이돌 멤버 정보 업데이트가 2010년 씨엔블루...) 이후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으므로. 음악은 들어도 파고 있던 다른 분야에 쓰느라 소홀했으니 그만큼 정보 업데이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단순하게 아드레날린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특징이 있었다. 가요계에도 Y2K 감성이 다시 돌아왔었다는 (혹은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2022년의 가요계는 유독 그 시대의 음악을 리메이크하여 답습한다거나, 그 시대처럼 클래식 장르의 크로스오버가 특징적으로 보였다.
내가 한참 열심히 덕질하던 1세대 케이팝 중 H. O. T. 의 'Candy'를 NCT 드림이 리메이크했고, S. E. S. 의 'Dreams Come Ture'를 Aespa가 리메이크해서 불렀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뉴진스의 콘셉트와 감성은 그 시절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청량함, 신선함 그리고 뮤직비디오에 보이는 캠코더라던가, 교복 같은 것들... 그 시기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그런 소품이나 콘셉트를 보면 그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마음 한편을 찌르르 울리는 무언가를 느꼈을 거다.
그리고 2022년 한 해 발표된 케이팝 노래들 중 눈에 띈 특징이 클래식 장르와의 크로스오버였다. BTS와 더불어 케이팝 신드롬을 이끌고 있는 BLACKPINK의 신곡 'Shut Down'은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3악장 '라 캄파넬라'를 샘플링해서 사용했고, (G) I-DLE은 'Nxde'라는 신곡에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의 선율을 사용했다. Red Velvet도 'Feel My Rhythm'이라는 곡에서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를 차용했고.
BLACKPINK - Shut Down ( https://youtu.be/POe9SOEKotk )
파가니니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B단조, 작품번호 7번 중 3악장 '라 캄파넬라' ( https://youtu.be/goibzEjxud8 )
(G) I-DLE - Nxde ( https://youtu.be/fCO7f0SmrDc )
비제 :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 ( https://youtu.be/KJ_HHRJf0xg )
Red Velvet - Feel My Rhythm ( https://youtu.be/R9At2ICm4LQ )
바흐 : G 선상의 아리아 ( https://youtu.be/tuB104s0Yas )
사실 내겐 이렇게 새로 나온 음악들보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청소년기에 듣던 클래식 크로스오버 케이팝이 더 익숙하다. 크로스오버와 세기말 감성의 인과율을 깨닫고 나서 케이팝과 서양 고전음악의 장르적 결합을 톺아보며 예전 크로스오버 곡들도 들어봤는데, 그 시기의 완성도가 더 높게 느껴지는 건... 개인의 취향이다...^^; 지금은 SM Ent. 의 이사님으로 더 많이 알려진 강타가 열아홉 살에 작곡한 '빛', 유영진 이사님이 한창때 작곡하신 신화의 'T. O. P', god의 2집 앨범 1번 트랙이었던 'Exit, 20th Century-Enter The 21st... (Intro)'도 각각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환희의 송가',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의 여신이여'를 샘플링한 것들이다.
이후에도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샘플링한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이용한 동방신기의 'Tri-angle', 엘가의 동명의 곡을 이용한 씨야의 '사랑의 인사', 여자친구의 '여름비', 방탄소년단 지민의 'Lie' 등...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서양 고전음악과 한국 가요의 장르적 결합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사실 새로울 일은 아닌데, 이상하게 '2000년 전후에 유행하던 것들이 동시대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는 걸 보니 뭔가 요즘 시대와 그 시대에 공통점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 언급한다.
생각해 보니 그 시절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 같은 것들이 판치며 미래에 대해 낙관이나 비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시기였던 것 같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라는 직면한 국가적 재난에 다른 국가보다 그런 분위기가 심했으면 더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리고 2022년은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전염병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그리고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 침체가 계속되었던 한 해였다. 인류는 언제쯤 이 바이러스에게서 해방이 될 것이며, 해가 바뀐 2023년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이 몹쓸 역병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게 꼭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그 시절과 비슷한 분위기가 퍼져있는 것이 그 시기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경제 사정이나 코로나 종식과 이런 유행의 상관관계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 사회문화 현상을 분석할만한 전문가께서 관련된 논문이나 연구 같은 걸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럴 능력이 안되니까... 패스...^^; 그나저나 이런 사회 현상을 가리켜 하나의 단어로 정리하고 싶은데, 'Y2K'가 Year 2 Kilo(천)의 약자이니 새롭다는 의미의 'New'와 'Y2K'를 합쳐 'New2K' 같은 용어로 부르는 건 어떨까. 새로운 레트로라는 의미의 '뉴트로 '같은 단어처럼 말이다.
https://youtu.be/dfN1UHjrz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