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 메니에르 증후군 이겨내기
한 글자도 적지 못한 지 200일 정도 흘렀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글밥 먹고사는 사람의 생활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2016년 첫 출판 이후 번아웃이 된 것과는 또 다른 고갈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때는 글만 못 썼을 뿐이지 다른 일상생활은 모두 다 영위했으니. 생애 첫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친구들 만나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2022년 하반기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컴퓨터라면 소프트웨어 문제는 OS를 다시 설치하는 것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번엔 하드웨어 고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는 하드웨어 고장 나면 기계를 바꾸는 거밖에 답이 없는데 사람은 몸뚱이를 새로 만들 수도 없고 어떡하냐...)
시간이 흘러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경험들이 있다. 그 순간의 내 주변 시야, 냄새, 온도와 습도, 손끝 세포 하나의 느낌까지도 생생하여 그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때. 인생에 있어서 좋은 기억과 경험들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낭떠러지 바로 앞까지 몰려 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때의 기억이 더 강력하다. 2011년 12월 즈음 있었던 첫 공황발작이 그랬고, 2018년 10월 12일 있었던 두 번째 공황발작, 그리고 마지막으로 2022년 6월 22일 지하철 실신 사건이 그러했다. 200일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순간을 떠올리면 생전 처음 겪는 이질감과 괴로움 그리고 내 몸 하나를 어찌할 바 몰라 허둥대던 그 순간의 나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날 나는 조금 늦은 시간 을지로에 위치한 작업실로 출근하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두어 시간 늦은 출근이었는데 평소답지 않게 늦잠을 자서 작업실 출근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나선 터였다. 월요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탑승한 객차 안. 신사역을 지날 때부터 몸이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압구정 역을 지날 때부터 어지럽고, 메스꺼웠으며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순간적인 증상이겠거니, 조금 참으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버티고 있었는데 압구정역에서 옥수역까지 동호대교를 지나는 그 2분이 정말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메스꺼움이 극에 달해 토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으며,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어 온몸에서 식은땀이 바짝바짝 났다. 결국 옥수역에서 하차해서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숨을 고르고 상태가 괜찮아지면 다음 열차를 타고 작업실에 가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 몸 상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몸은 더 무거워지고 식은땀은 계속 나고, 숨을 쉬기 더욱 힘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작업실 출근을 포기했다.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반대편 승강장으로 향했다. 2분 3분이면 움직일 짧은 거리도 힘들게 움직여 반대편 승강장에 도착했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 어디든 몸을 기대게 해야겠다 싶어 승강장 벤치 쪽으로 갔는데 비어있는 벤치가 없었다. 도저히 서 있지를 못해 승강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뒷벽에 기대 있었다. 여전히 식은땀 범벅이었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으며, 온몸에 기운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후 기억은 거의 휘발된 거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내 발로 걸어 집에 온 것조차 신기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쉬면 괜찮겠지...' 하며 하루를 견뎌냈다. 그런데 여전히 어지러웠고 힘들었다. 귀가 아팠고, 귓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으며, 누워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그래서 자주 찾던 이비인후과에 갔다. 원장님은 이석증은 아니니 메니에르 증후군 같다고 하셨다. 일단 메니에르 증후군에 처방하는 약을 줄 테니 먹어보고 그래도 아프면 다시 오라고 하셨다. 약을 받아와서 먹고 메니에르 증후군에 대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메니에르병 Meniere’s disease
요약 내이에 발생하는 질환으로, 난청, 어지럼증, 이명, 이충만감의 4대 증상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
메니에르병은 발작성으로 나타나는 회전감 있는 어지럼증과 청력 저하, 이명(귀울림), 이충만감(귀가 꽉 찬 느낌) 등의 증상이 동시에 발현되는 질병으로, 1861년에 프랑스 의사 메니에르(Meniere)에 의해 처음 기술되었다. 아직까지 병리와 생리 기전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내림프 수종(endolymphatic hydrops)이 주된 병리현상으로 생각되고 있다. 메니에르병은 급성 현기증을 일으키는 가장 대표적인 내이 질환이다.
원인 : 메니에르병은 아직까지 병리와 생리 기전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내림프액의 흡수 장애로 내림프 수종이 생겨 발병하기도 하고, 알레르기가 원인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내림프 수종은 유병률이 연령의 증가와 더불어 높아지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진행되는 양상, 그리고 양측성으로 재발하는 특성 등이 관찰된다. 따라서 내림프 수종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기전으로 자가 면역 질환이 주목을 받고 있다. 메니에르병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진 인체 백혈구 항원에는 B8/DR3와 Cw7이 있고, 또한 내이 단백 항원 중 제2형 교원질(type collagen)에 대한 자가면역 항체가 증가되어 있는 현상이 메니에르병에서 관찰된다. 그 외에 메니에르병 증상 발작과 과로 및 스트레스와의 상관관계가 있고, 특히 여자는 월경 주기와 관계가 있다는 임상 실험 결과를 통해 이들 스트레스 호르몬이 이 질환의 발병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또한 다른 원인에 의해 체내에 나트륨이 축적되는 경우, 전신 대사 장애나 갑상선 기능 저하증 등에 의해 발생하기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메니에르 병‘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926747&cid=51007
내림프액 흡수장애로 인해 생기는 어지럼증인데, 이 내림프 장애가 왜 발생하는지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 눈을 끈 한 문장. ‘내림프 수종을 발생시키는 중요한 기전으로 자가 면역 질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왜냐면 나는 4월 초에 오미크론에 걸려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생 중이었으니까. 당시엔 미각과 후각도 마비되었다가 회복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코로나 후유증으로 얻은 병이 아닌가 한다.
순간적으로 나는 내 작은 이모가 다니고 있다는 한의원을 떠올렸다. 이모는 자가면역 질환 일종의 두드러기로 최근 몇 년간 고생하고 있었다. 전국 팔도의 좋다는 약도 먹고 큰 병원도 다녔지만 원인을 규명하지 못해 치료에 효과를 못 보고 있다가 얼마 전에서야 간 안의 결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니고 있는 한의원에서 치료하며 많이 호전됐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예약을 잡기 위해서는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얘기를 들었으므로 망설이지 않았다. 예약하고 나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이비인후과에서 받아온 약을 먹고 증상이 사라지면 한의원 예약을 취소하면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진료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런데 예약을 위해 전화한 수화기 너머에서 들은 말로는 가장 빠른 초진 예약은 일주일 뒤라는 거다. 평일인 데다가, 누가 예약을 했다가 취소를 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초진 예약 잡으려면 주말은 한 달 반에서 두 달, 평일도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 당시도 평일은 3주 이상 대기. 운이 좋았다고 할 밖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어지러워서 돌아눕지도 못할 정도로 힘든데 최대한 빨리 치료를 할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한의원에서 6개월 넘게 치료 중이다. 일주일에 두 번에서 세 번 침 치료를 하고 한약도 네 제째 먹고 있다. (며칠 전에 보니 64회 진료카드를 다 채웠더라. 예약하지 않고 와서 치료한 것까지 포함하면 64회 이상 치료를 받은 셈이다.) 이비인후과에서 받아온 메니에르 약을 다 먹었지만 증상이 아주 조금 완화되었을 뿐 귀의 통증과 이명 증상이 심하게 남아있었기에 내가 생각했던 플랜 B에 따라간 것이다.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을 때 귀 통증의 50% 정도가 줄었고, 세 달이 지난 후에는 20~30%의 통증이 남았으며, 네 달이 지나서는 통증의 5~10% 정도만 남았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나고는 처음 통증에 비해 5% 이하의 통증만 남았다. 특히 지난 주말부터는 처음 통증의 2~3% 정도만 남아서 생활하는 게 한결 편해졌다.
이 이충만감(耳充滿感)이라는 게 쉽게 표현하자면 물 가득한 수조에 귀를 따로 떼어 던져놓으면 느껴질 거 같은 감각인데, 눈 떠서 생활할 때뿐만 아니라 잠자는 도중에도 느껴지면 사람이 미쳐버리는 건 순간이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장마기간에 심했는데 습도가 높아지니 고막 내부와 외부의 기압 조절이 더 힘들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한참 심할 때는 고막과 그 주변 근육이 너무 벌떡벌떡 뛰어서 자다가 깨기도 했다. 그땐 ‘고막 긴장근 (긴장) 증후군(Tonic Tensor Tympani Syndrome)’도 의심했다. (출처 - 귀 전문의 문경래 님 블로그 https://m.blog.naver.com/m30305/221984771414 )
글 쓸 엄두도 못 냈다. 뭘 보거나 들어도 머릿속에 남지도 않고 사고하기도 힘들었으니까. 문장을 만드는 것 또한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나는 어떤 작업을 시작할 때 있어 어떤 핵심 문장 한 줄이 필요한 스타일인데,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이어지지 않았다. 문장 구성능력과 사고능력 모두 퇴화된 것 같아서 다른 일을 찾고 직업을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메니에르를 치료하면서 부가적으로 좋아진 점도 있다. 2년 넘게 먹고 있었던 신경정신과 약들-항우울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수면 유지제 등-을 다 끊게 된 것이다. 약 없이 잠들 수 없었던 지난 2년 4개월의 시간. 코로나에 걸린 후 체력이 달려 그전에 먹던 약을 몸이 이기지 못할 정도가 되어 조금씩 약 투여량을 줄이고 있었지만 완전히 다 끊게 되는 것은 2022년 말이나 되어서일 줄 알았다. 그런데 여름이 다 지나기도 전에 그 약을 다 끊게 된 것이다. 회복세에 접어든 이후에는 극단적인 생각조차 들지 않게 되었다. 우울증이 아닌 사람은 극단적인 생각 자체를 아예 떠올리지를 못한다더니 그 말을 몸소 체감하게 된 셈이다. 사춘기 이후로 극단적인 생각을 이렇게 하지 않은 것도 처음 아닌가 싶다.
또 부가적으로 좋아진 점은 생리통과 배란통, PMS에서의 해방이다. 나는 컨디션에 따라 생리통도 두통, 몸살, 복통, 요통 등 여러 증상 랜덤박스를 받던 사람이었는데 약간의 배 당김을 제외하고는 통증에서의 해방됐다. 그 이전에 한 달 중에서 멀쩡한 날이 일주일 정도여서 삶의 질이 쓰레기였다면 이제는 삶의 질이 수직상승한 셈이다.
한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꼭 병을 고쳐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다. 이비인후과에서도 쉽게 무슨 병이라 명쾌하게 얘기해주지 않고, ‘~인 것 같다’고 했으니 치료해보고 안되면 다른 데 알아보고 다니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다녔다. 치료 횟수에 비례해 증상이 좋아지는 게 아니라서 어떤 날은 좋았다가 어떤 날은 다시 안 좋아졌다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좋아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완치라는 개념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바로 누웠다가 옆으로도 돌아눕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움증이 심했는데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달라진 건가. 완치가 안 되더라도 요즘처럼만 통증이 약하고 통증 지속시간도 짧다면 이 상태도 감사한 일이다. 여전히 극장과 콘서트장에서 온전히 소리를 즐기기는 힘들다. 10월 15일에 있었던 사이먼 래틀 경과 조성진, 런던 심포니 공연을 다녀왔지만 연주 중간중간 귀가 아파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12월 15일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과 파보 예르비 공연에서는 그렇게 귀가 아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소리를 이전에 비해 기민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좀 아쉽긴 하지만.
10년 넘게 몸과 정신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다 쓴 대가였다고 생각한다. 친구 말대로 앞에 4자 달려고 그러는 거였을지도 모르고. 2006년 이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 일도 노는 것도 모든 것들을 다 열심히. 열심히 살아서 얻은 병이라 지난 6개월간은 치료만 빼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택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한번 생긴 병은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마인드로 살려고 한다. 한번 삔 발목은 삔데 또 삐니까, 공황도 발작 한 번 온 뒤에 또 올 수 있는 것처럼. 메니에르도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무너지면 또다시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잘 관리해야 할 듯하다.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지난 6개월간 잘 치료해주신 이제승, 이상현, 박정민, 박예하 원장님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된 데는 원장님들의 정성스러운 치료가 큰 역할을 했으니까. (물론 치료기간 내내 하라는 대로 지시사항 열심히 따라한 나의 노력도 한몫했겠지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