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이야기
씨네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극장을 찾는 평균 횟수에 비해 꽤 많이, 꽤 자주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곤 한다. 한번 보고 좋았던 영화는 N차 관람이 기본이고, 한번 극장을 찾을 때마다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연달아 두 편, 세 편, 네 편... 많게는 다섯 편의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날도 있다. 특별 상영관을 좋아해서 IMAX와 4DX관 티켓 예매에 열을 올리고, 기다리던 영화라면 개봉날 어떻게든 시간을 내 보러 가곤 했던 내가, 극장을 피한지도 벌써 다섯 달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공황장애 환자다. 정확히 얘기하면 공황장애 판정과 의학적 도움 없이 증세를 스스로 극복한 후, 뒤늦게 공황장애였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2011년 하반기에 발병했을 때는 그저 육체적 건강상의 문제인 줄만 알았다. 일이 너무 바빠서, 일이 가져다준 중압감이 너무나 커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 스트레스가 몸으로, 증상으로 나타난 것인 줄만 알았다. 일을 그만두고 쉬면 곧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디게 나았고 회복기간이 길었다. 그리고 3년에서 4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그 시기의 이야기를 울지 않고 하게 될 때쯤... 주변인들이 얘기해줬다.
“너, 그때 공황장애였던 것 같아.”
결정적으로 알려준 사람은 나의 어머니였다. 내가 한참 힘들어하고 있었던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회복을 했을 무렵 이야기를 해 주셨다. 우연히 공황장애에 대한 정보와 그 증상, 자가진단 테스트를 접하셨는데 ‘내 딸이 겪었던 증상’과 너무나 같았다 하셨다. 하지만 당신이 보시기에 당장은 내가 받아들이기에 무리라고 생각하셨고, 시간이 많이 지난 그때서야 말한다고 얘기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너도 한번 자가진단 테스트 찾아서 그때 증상이랑 맞춰봐.”
평소의 난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포털에서 공황장애 자가진단 테스트를 찾아 그때 증상이랑 비교해 맞춰보기 시작했다. 두 개의 항목을 제외하고 모두 다 일치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당시의 나는 공황장애를 앓았던 것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지만 충격이 무척 컸다. 병원과 약물의 도움 없이도 공황장애를 극복했다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찝찝함을 치울 길이 없었다. ‘병원에 다녔더라면 조금 더 빨리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병원에 다녔다면, 약을 먹었다면 극복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지 않았을까?’, ‘다시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같은 걱정과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의지로 혼자서 공황장애 증상을 극복해냈다. 그리고 발병 후 7년이 지난 작년까지도 별다른 자각 증상 없이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이따금씩 우울감이 찾아오긴 했어도 그 정도는 혼자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 10월 초 일이 터졌다. 정신적으로 무척 큰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인 일이라 자세한 내용을 적진 못하지만 내 몸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명치가 터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에 겪었던 공황장애 증상들이 하나둘씩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극장 안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집에만 있는 게 너무나 우울해서, 평소 때라면 개봉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형 스크린이 있는 극장으로 달려가 봤을 영화를 뒤늦게서야 예매해서 보러 간 것이었다. 조명이 꺼지고, 모르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다른 관객들의 뒤통수와 함께 스크린에 영화가 시작되는 게 보였다.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와서 상영관을 뛰쳐나오고 싶었다. 눈 앞의 시야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7년간 잊고 살았던 증상이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날부터 시작된 현기증은 네 달이 지나고 다섯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과호흡 증상은 다행히 한 달 만에 가라앉아 지금은 괜찮아졌다. 그 외에 다른 증상들도 7년 만에 나를 찾아왔다가 다시 떠나갔다.
하지만 나는 극장에 가는 게 여전히 무섭다. 처음 과호흡과 현기증이 동반된 증상을 겪었던 게 퇴근하던 길에 탄 빨간 광역버스 안에서였기 때문에 한동안 그 버스 타는 게 무서웠던 것처럼... 네 달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연말에 개봉 일정이 잡혀 있던 기대작들 거의 다를 그냥 지나쳤다. 해가 바뀐 지금에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기대작으로 꼽고 있었지만 개봉 첫 주에 보지 않았던 영화를 보기 위해 예매 서비스에 들어가 결제 직전까지 진행하다가 결제를 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번에도 나는 병원과 약물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나를 찾아온 이 불청객을 잘 돌려보내고 있다. 의학적 도움을 받았다면 좀 더 수월하게, 더 빨리, 더 완벽하게 이 불청객을 돌려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에 비슷한 증상들을 가진 지인들을 보고 있자니, 의학적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이 증상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 같지는 않더라. 어떤 계기만 있다면 또다시 찾아와 괴롭히고, 또 지긋지긋한 극복의 과정을 겪는 건 나와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바이러스 같은 녀석이라, 정신적인 면역력이 약해지면 또 증상이 크게 나타나고, 정신적인 면역력이 강해지면 또다시 소강상태로 돌아가는 그런 행태로 보인다.
아마 나는 내가 눈 감는 순간까지 이 병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언제든 나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극장엔 좀 가고 싶다. 언제쯤 되어야 극장 나들이를 가는 내 발걸음이 좀 가벼워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