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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Feb 07. 2019

나는 아직도 극장에 가는 게 무섭다

공황장애 이야기

씨네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극장을 찾는 평균 횟수에 비해 꽤 많이, 꽤 자주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곤 한다. 한번 보고 좋았던 영화는 N차 관람이 기본이고, 한번 극장을 찾을 때마다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연달아 두 편, 세 편, 네 편... 많게는 다섯 편의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날도 있다. 특별 상영관을 좋아해서 IMAX와 4DX관 티켓 예매에 열을 올리고, 기다리던 영화라면 개봉날 어떻게든 시간을 내 보러 가곤 했던 내가, 극장을 피한지도 벌써 다섯 달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공황장애 환자다. 정확히 얘기하면 공황장애 판정과 의학적 도움 없이 증세를 스스로 극복한 후, 뒤늦게 공황장애였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다. 2011년 하반기에 발병했을 때는 그저 육체적 건강상의 문제인 줄만 알았다. 일이 너무 바빠서, 일이 가져다준 중압감이 너무나 커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 스트레스가 몸으로, 증상으로 나타난 것인 줄만 알았다. 일을 그만두고 쉬면 곧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디게 나았고 회복기간이 길었다. 그리고 3년에서 4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내가 그 시기의 이야기를 울지 않고 하게 될 때쯤... 주변인들이 얘기해줬다.


너, 그때 공황장애였던 것 같아.


결정적으로 알려준 사람은 나의 어머니였다. 내가 한참 힘들어하고 있었던 시기를 지나, 어느 정도 회복을 했을 무렵 이야기를 해 주셨다. 우연히 공황장애에 대한 정보와 그 증상, 자가진단 테스트를 접하셨는데 내 딸이 겪었던 증상과 너무나 같았다 하셨다. 하지만 당신이 보시기에 당장은 내가 받아들이기에 무리라고 생각하셨고, 시간이 많이 지난 그때서야 말한다고 얘기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너도 한번 자가진단 테스트 찾아서 그때 증상이랑 맞춰봐.


평소의 난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포털에서 공황장애 자가진단 테스트를 찾아 그때 증상이랑 비교해 맞춰보기 시작했다. 두 개의 항목을 제외하고 모두 다 일치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당시의 나는 공황장애를 앓았던 것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지만 충격이 무척 컸다. 병원과 약물의 도움 없이도 공황장애를 극복했다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찝찝함을 치울 길이 없었다. ‘병원에 다녔더라면 조금 더 빨리 나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병원에 다녔다면, 약을 먹었다면 극복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지 않았을까?’, ‘다시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같은 걱정과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의지로 혼자서 공황장애 증상을 극복해냈다. 그리고 발병 후 7년이 지난 작년까지도 별다른 자각 증상 없이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이따금씩 우울감이 찾아오긴 했어도 그 정도는 혼자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 10월 초 일이 터졌다. 정신적으로 무척 큰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인 일이라 자세한 내용을 적진 못하지만 내 몸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명치가 터져 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에 겪었던 공황장애 증상들이 하나둘씩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극장 안이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집에만 있는 게 너무나 우울해서, 평소 때라면 개봉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형 스크린이 있는 극장으로 달려가 봤을 영화를 뒤늦게서야 예매해서 보러 간 것이었다. 조명이 꺼지고, 모르는 사람들로만 구성된 다른 관객들의 뒤통수와 함께 스크린에 영화가 시작되는 게 보였다.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와서 상영관을 뛰쳐나오고 싶었다. 눈 앞의 시야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7년간 잊고 살았던 증상이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날부터 시작된 현기증은 네 달이 지나고 다섯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과호흡 증상은 다행히 한 달 만에 가라앉아 지금은 괜찮아졌다. 그 외에 다른 증상들도 7년 만에 나를 찾아왔다가 다시 떠나갔다.


하지만 나는 극장에 가는 게 여전히 무섭다. 처음 과호흡과 현기증이 동반된 증상을 겪었던 게 퇴근하던 길에 탄 빨간 광역버스 안에서였기 때문에 한동안 그 버스 타는 게 무서웠던 것처럼... 네 달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연말에 개봉 일정이 잡혀 있던 기대작들 거의 다를 그냥 지나쳤다. 해가 바뀐 지금에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기대작으로 꼽고 있었지만 개봉 첫 주에 보지 않았던 영화를 보기 위해 예매 서비스에 들어가 결제 직전까지 진행하다가 결제를 하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번에도 나는 병원과 약물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나를 찾아온 이 불청객을 잘 돌려보내고 있다. 의학적 도움을 받았다면 좀 더 수월하게, 더 빨리, 더 완벽하게 이 불청객을 돌려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에 비슷한 증상들을 가진 지인들을 보고 있자니, 의학적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이 증상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 같지는 않더라. 어떤 계기만 있다면 또다시 찾아와 괴롭히고, 또 지긋지긋한 극복의 과정을 겪는 건 나와 별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바이러스 같은 녀석이라, 정신적인 면역력이 약해지면 또 증상이 크게 나타나고, 정신적인 면역력이 강해지면 또다시 소강상태로 돌아가는 그런 행태로 보인다.


아마 나는 내가 눈 감는 순간까지 이 병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언제든 나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극장엔 좀 가고 싶다. 언제쯤 되어야 극장 나들이를 가는 내 발걸음이 좀 가벼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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