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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Feb 09. 2019

Loves of my life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와서 많고 많은 Queen의 노래 중에 ‘Love of my life’가 가장 와 닿아 브런치에 올린 글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번 그랬듯, 그날도 브런치에 게시물을 작성한 후 링크를 SNS에 공유했다. 그러자 아는 동생이 그 링크에 댓글을 달았다.


‘그나저나 내 Love of my life는 어디에...’


내 답글은 무척 시크했다. 사랑의 형태가 여러 가지이므로, Love of my life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될 수 있고, Love of my life를 찾는다고 해서 그 결말이 꼭 해피앤딩일 거라는 기대를 버리라는 것. 누님이 인생을 먼저 많이 살아보고 경험으로 아는 것이니 누님 말을 새겨들으라고 했다. (다시 곱씹어보니 무척 꼰대 같은 대답이었다. -_-;)


누나로서 띠동갑보다 더 어린 동생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게 좋은 방향이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어린 새싹에게 차디찬 시베리아 기단에서 온 북서풍처럼 차갑고 냉정한 답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도 정확히 얘기해 준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사랑의 형태는 참 여러 가지인지라, 그리고 그 형태별로 '일생일대(一生一代 )의 사랑'을 여럿 가질 수 있기에...






‘사랑’이라는 숭고한 단어는 비단 연인 사이에서의 애정만을 규정짓는 단어가 아니다. 전 인류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긍휼히 여기는 것 또한 ‘사랑’이라 지칭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연인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래서 ‘사랑’하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인 성탄절이 커플들의 날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래서인 것은 아니나, 오늘은 연인들 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난 자기를 좋아는 하지만 사랑은 하지 않아.”


내 오랜 친구 중 하나가 지금은 남편이 된 전 남자 친구에게 결혼 전 날렸던 멘트다.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이기에, 좋아하는 감정과 뭐가 그리 다르기에 내 친구는 남자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날린 것일까. 좋아하는 감정이 더 진해지면, 혹은 첫눈에 스파크가 파바박 튀어서 불같이 그 감정이 샘솟아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친구가 결혼한 지도 벌써 8년의 시간이 지났다. 만약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내 친구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얘기해주고 싶다.


“얘, 그것도 사랑이야.”






이 글의 시작 머리에 언급한 냉정한 답변을 달고 나서 몇 달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낸 결론은, 미디어를 비롯한 매체로 학습된 ‘사랑’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스테레오 타입 형성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하는 것이었다.


운명적인 만남으로,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되고, 운명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운명처럼 시련이 찾아오고, 운명처럼 그 시련을 극복하고, 운명처럼 결혼에 골 인! 신데렐라를 비롯한 공주님 동화에서 나왔던 결말처럼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 과정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만 해도 그런 꿈을 꾸지는 않는다. 내가 너무 드라이한가...) 하지만 일생일대의 사랑, Love of my life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도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운명적 일생일대의 사랑 종합 선물세트는 사양한다. 그렇게 살다가는 심장 건강에 좋지 않을 거다. -_-; 매 순간이 운명 같고, 매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매 순간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으면... 다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장에 무리가 올 게 뻔하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온다 하더라도 그게 뭐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양은냄비처럼 끓어오르면 양은냄비처럼 차갑게 식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나.


얘기가 핵심을 비껴 돌아왔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프레디 머큐리에게 메리 오스틴만이 일생일대의 사랑이었겠는가. 일생일대의 사랑인 메리를 떠나게 한 다른 연인도 그만큼의 무게를 가진 사람이었을 테고, 그를 거쳐간 다른 연인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프레디 머큐리의 마지막을 지킨 연인 짐 허튼 또한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사랑이었을 거다.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이었겠지.


그렇게 얘기하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첫사랑도 일생일대의 사랑이다. 그렇게 뜨겁게, 그렇게 순수하게 한 사랑은 그때뿐일 테니까. 그렇게 따지자면 첫사랑도 Love of my life 아니겠는가.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머리 뒤에서 후광이 보인다는 말을 겪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 그런 경험을 다시 해 보지 못했다. 그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상대는 그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그 또한 Love of my life 일 거다. 정말 죽도록 노력해서 그 사람 근처에서 서성이는 것조차 분에 넘치고 행복하게 만든 사랑도 있었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편한 사람도... 이 사람이라면 남은 반평생을 함께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랑들이 다 각각의 형태를 가진 일생일대의 사랑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내 친구는 과거의 남자 친구, 지금의 애기 아빠를 ‘사랑한 것’이다. 그게 매체가 무의식 중에 심어준 불꽃같은 사랑이, 운명 같은 사랑이 아니었을 뿐... 꽤 오랜 연애기간 동안 나도 모르게 스며든 익숙함 같은 사랑. 그리고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준 그에게 느꼈던 감사함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또 다른 형태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둘 사이에서 사랑스러운 아이가 태어났을까?


드라마가, 영화가 심어준 그런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이 아닌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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