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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Feb 13. 2019

한 권의 책을 위한 마라톤

집필과 마감의 신이시여 제발 제게 와주소서! 

큰일이다. 


벌써 두 달째가 흐르고 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게 새해 신정이 지나고 1월 2일이었으니... 카운팅 하기는 어찌나 좋은지. 약 스무 개의 챕터 중 겨우 두 개를 구정 연휴에 끝냈다. 지금은 세 번째 챕터를 쓰고 있는데... 이제까지의 작업 진척상황이 순조롭다고 할 수 없다. 하루는 작업이 잘 되어 두 구다리 세 구다리를 써서 안심하면, 다음 날은 머릿속의 문장을 화면에 옮기는 게 여의치 않다.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마냥 늘어지고 싶은 날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주에 챕터 하나씩은 끝내야 마감 기일 전에 초고를 완성하고, 편집부에 넘기기 전에 문장들을 수정할 시간이 생길 거다. (여름에 초고를 편집부에 넘기고 3주간의 여행을 떠날 예정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때까지는 완성해야 한다.) 꽃이 피면 꽃 펴서 놀러 가고 싶어 마음이 싱숭생숭한 날들도 분명히 생길 테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서는 더워서 힘들어할게 뻔하다. 어떻게든 야금야금 세이브 원고를 쌓아둬야 한다. 그래야 꽃피는 봄에는 친구와 놀이동산도 한번 다녀올 거고, 좋아하는 시리즈 영화의 신작이 개봉하면 좋아하는 용산 아이맥스 나들이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거다. 


이전의 나는 짧은 텀의 마감을 하던 사람이라 마감을 앞두고 생기는 초인적인 능력에 꽤 많이 기대고 의지했다. 실제로 마감 기일은 무적의 포션 같은 존재다. 마감을 코앞에 두면 엄청난 집중력과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 그때 쓴 것들은 ‘내가 이런 표현을 어떻게 썼을까?’ 싶을 정도로 퀄리티도 좋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벼락치기를 할 수는 없다. 방송 글이야 한 시간 분량 A4용지 열 몇 장이면 되는 분량이지만 책은 다르다. 지난번 책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써야 한다. 그 방대한 분량을 벼락치기로 했다가는 또 지난번처럼 출간 후 번아웃 현상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아직 마감 기일이 많이 남았음에도 내가 초조해하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번 달에는 가장 좋아하는 팝페라 가수 조쉬 그로반의 첫 번째 내한 공연 예매를 해 뒀고, 다음 달에는 그토록 동경했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짐머만)의 16년 만의 내한공연, 구스타프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의 내한공연도 예매해뒀다. 그 날 그 순간, 온전히 그 시간들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내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는다. 쓸 수 있건 쓸 수 없건... 하루에 두 줄을 쓰건 몇 구다리를 쓰건 무조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모두 합쳐 다섯 시간을 넘기게 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아 일정 시간을 보낸다. 일명 ‘하루키 글쓰기 방법’. 단기 마감에 익숙한 내가 출간을 위한 글쓰기 작업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행동에 옮기려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확 줄였고, 술자리도 줄였다. 2주에 한 번 꼴로 가서 영화를 두 편, 세 편 몰아 보고 오던 내가 극장을 안 간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주일이면 늘 하던 성당 봉사도 성당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줄였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칩거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작업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어느 날 작업이 술술 풀려 많은 양을 써놓고도 어느 날은 그걸 다 지우고 그 부분을 새로 작업하는가 하면, 정말 한 줄 두 줄 쓰기도 버거운 날도 있다. 주술 호응 연결이 잘 안 되는 날도 있고... 종이책 작가 류인하의 색깔을 찾는다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하고 일을 시작해서 그런 걸까? 예전 같지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얘, 나이 먹어서 그래...)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차를 진하게 우려내 마시며 책상에 앉아서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오늘은 목표한 양만큼은 썼지만 그 이상은 쓰지 못하고 이렇게 또 브런치에 하나마나한 소리를 끄적이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토요일 일요일은 딸내미 보러 서울 올라오시는 아부지와 극장 데이트하는 두세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오롯이 파가니니에게 바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제발 신들린 듯 글이 잘 써지는 날이 좀 빨리 왔으면... 제발...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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