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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Feb 16. 2019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내겐 중요하지 않다

30대 중반 미혼 여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결혼 적령기라고 얘기하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 나는 그 적령기의 최첨병에 위치한 3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이다. 주변 어른들이 나만 보면 ‘저거 어떻게든 올해 안에 치워버려야지...’를 입에 달고 사신지는 벌써 몇 년이 되었고, 결혼하지 않고 한해 한해 보내는 딸을 가지고 계신 부모님 또한 걱정이 늘어져 있다 하신다. 나 또한 1년에 두 번 돌아오는 명절마다 맞선을 봐야 한다는 압박을 몇 년째 받아오고 있고... 이런저런 걱정 어린 시선과 조언들이 내게 쏟아지는 관심이나 애정이라기보다 압박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도 몇 년이 흘렀다. 


결혼을 하는 데 적절한 연령이라는 게 절대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내 나이는 우리 사회에서 암암리에 통용되는 나이의 마지노선에 걸려있다. 하지만 결혼이 그리 급하지도 않고, 그에 따라 출산도 육아도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면 하는 것이고, 말면 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30년 넘게 살면서 남자나 연애보다 더 재미있는 게 많았고,  그 재미있는 것들을 업으로 삼는 운명과 팔자라 그런지 많은 에너지를 결혼 쪽에 쏟는 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워낙 워크홀릭이기도 하다.) 그리고 혼자 노는 것도 익숙하고... 


무엇보다 결혼 적령기의 마지노선이라는 이유에 떠밀려 결혼을 위한 연애, 혹은 결혼을 위한 결혼이 하기 싫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스펙’. 조건 좋은 맞선남, 소개팅남이 나와도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꼭 그 사람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만남들 조차 이제는 피곤하고 귀찮다. 제 아무리 남자 쪽에서 내가 좋다고 매달려도 그런 열정적인 구애나 애정이 피곤하고 부담스럽다. 사람이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상대가 나와 적당히 템포가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관심과 애정에 적절한 응답을 주는 것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다른 방식으로 20년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과 만나 서로를 맞춰가는 것이 이제는 피곤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잴 것 재고 따질 것 따지게 되는 태도가 되어버리기도 쉽다. 첫 만남에서 아닌 사람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혹은 두 번 더 만나는 것 또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시간과 돈,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도 싫다. 나는 더 이상 20대의 혈기왕성하고 에너지 넘치던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만남을 위해 무리해서 스케줄을 비우고, 과도한 업무를 미리 처리하고, 내가 굳이 다른 지역으로 가서 만남을 가지고... 그러고 싶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연인데 놓쳐서 후회하지 말라.’는 얘기도 듣고 싶지 않다. 인연이면 놓칠 일이 없다. 놓치면 인연이 아니므로 후회할 일도 없다. 내 인연이면 내가 어떤 식으로 하든 그와 만나게 될 거고, 맺어질 거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남긴 명언이 있다. 


‘억지로 합하려 하면 안 된다.’


세상사는 이치가 그렇다. 되려면 어떻게든 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주변에서는 내가 결혼을 안 하거나 결혼을 아주 늦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얼마 전에는 난자를 추출해서 냉동 보관하라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결혼도 할지 안 할지 모르는데 출산과 육아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화가 났지만 그 자리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다. 


여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맛보는 행복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 행복이 여성으로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실제로 나는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엄마’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남편과 가정이, 아이가 있어야만 내 삶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런 나의 생각을 나를 거쳐간 옛 남자들도 다 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거나 내가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거나 했는지도...) 그 지인은 내가 결혼을 늦게 하고 그때 돼서 애를 낳고 싶은데 내 여성기관 건강이 허락지 않아 (이를테면 조기폐경과 같은) 아이를 못 낳게 될까 봐 ‘걱정해서’ 해 준 말이었겠지만... 결혼도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내게, 출산은 더더욱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 가능한 것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입이 무척 썼다. (더구나 나의 여성기관은 무척 건강하다. 기분이 나빴다.)


나도 내 짝을 찾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다. 그리고 딸의 결혼을 바라시는 부모님의 기대를 완전히 꺾고 싶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부모님께 약속한 시간까지 오는 소개팅, 오는 맞선 거절하지 않고 만나는 것이고... 잠재적 비혼의 길을 걸으면서 폭력적인 압박과 고나리를 겪는 와중에도 비혼 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한을 정한 이유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결혼 적령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결혼 시장에서 내 가치가 나이 때문에 하락하게 되면 나는 그동안 ‘그놈의 결혼 적령기’라서 주저하며 망설였던 일들을 할 생각이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결혼’과 ‘결혼 적령기’라는 이유에 묶여 내 행동에 제약을 주고 있다. 뒤늦게 시작하고 싶어 진 공부라던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던가, 그 외 여러 가지 것들... 내가 부모님과 약속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을 실행에 옮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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