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인하 Feb 11. 2023

힘들면 힘든 거야, 티 내도 돼.

번아웃을 겪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힘들면 힘든 거야, 티 내도 돼.”


1월 26일 공개된 JTBC 인더숲 세븐틴 편 시즌2의 첫 선공개 영상에서 맏형 조슈아가 최근 번아웃이 온 승관을 위로하며 건넨 말이다. 세븐틴이라는 이름을, 그리고 부승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지는 겨우 몇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승관의 번아웃이 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에 영상을 처음 봤을 때부터 못내 내 마음이 술렁였다. 아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을 겪는 것을 봤고 나 자신도 번아웃을 겪어봤기 때문이리라.


내 경우에는 첫 번째 책을 출간한 뒤에 번아웃이 심하게 왔었다. 다른 일 하나도 안 하고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렸던 시간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 씻고 커피 한잔 마신 후 바로 자료가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배가 부르면 졸리다는 이유로 식사도 제시간에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다. 오후 세시에서 네시 사이 도서관에 입점해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삼각김밥 같은 걸로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만 먹었다. 그리고 폐관시간인 밤 10시 즈음 도서관을 나왔다. 그게 몇 달 동안 지속되었고, 매일 도서관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 사이로 기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도 일절 잡지 않았고 집필 기간 동안은 성당 미사 전례 봉사도 양해를 구하고 쉬었다. 더러 나를 보러 도서관까지 와주는 친구 한둘과 만난 시간 겨우 한두 시간을 제외하면 내 생활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때였다. 첫 출판작이기도 했고 당시 출판사에서 푸시하는 작품이기도 했던지라 내 몸과 마음, 머리까지 싹 갈아 넣었다. 그렇게 노력한 대가로 중소형 출판사에서 낸 책 치고는 꽤 많은 부수를 판매했고, 반응도 좋았다. 문제는 책을 출간한 이후였다. 정말 글을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쓰고자 하는 욕구가 거세된 느낌이랄까? 거의 1년 반 정도의 기간 동안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그 기간 중간에 유럽 여행을 두 번 다녀와서야 뭔가를 쓰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고 여행기부터 쓰며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도 이렇게 타자를 치고 있다.


첫 번아웃이 정신적인 부분에서 마른행주에 물 짜듯 탈탈 털어 내 모든 걸 다 태워버렸다면, 두 번째 번아웃은 작년 6월 이후 반년 간 지속된 육체적 번아웃이었다. 메니에르병을 얻고 돌아눕는 것조차 어지러워 힘든데 앉아서 글을 어떻게 쓰나. 일곱 달 동안 치료에 힘쓰며 90% 이상 회복한 지금 돌이켜 봤을 때, 2022년 하반기는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3n 년이라는 시간 중 가장 껍데기만 남아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창작에 대한 욕구가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통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들이 모두 다 무디어져 희로애락조차 잘 못 느끼던 시간들. (그래서인가 요즘은 뭐만 하면 그렇게 운다... 반동작용인가.) 회복하면서 생각했다. '약 20년간 몸과 정신을 열심히 갈아 쓴 대가로 몸이 망가졌나 보다. 그전에 겪은 게 정신적 번아웃이었다면 이제 한창때 아니니 아껴 써 달라고 내 몸이 파업했구나.'




나도 겪었고,  주변에서 번아웃을 겪은 사람들을 지켜보니 번아웃을 겪는 많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더라. 삶의 태도가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은 번아웃 같은 게 올 수가 없다. 성실한 사람들은 매 순간 사람들의 평균 이상으로 노력하면서 산다. 대체로 노력에 대한 역치(閾値, threshold)와 한계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공통적으로 자신이 번아웃을 겪고 있음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노력과 성실이 디폴트 값이라 그런지 '내가 겨우 이런 거에 질 거 같아?'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고, 번아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속절없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모습을 내 친한 친구에게서도 본 적이 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사람. 결혼해서 꾸린 자신의 가정뿐 아니라, 친정집과 형제의 가정까지 세 가정을 부양했던 성실한 내 친구. 상황과 환경이 그 친구에게 그렇게 엄청난 짐을 지워주었는데 그것에 대해 불평불만 한번 하지 않고 열심히 살던 친구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내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카톡을 주고받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전화해 한 시간 넘게 통화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통화 내내 번아웃과 우울증을 얘기했는데, 그 친구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이 이 정도도 못 이겨내고 힘들다고 느끼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In the Soop SVT ver. Season2


나는 나약하다고 번아웃이 오는 게 아니라, 강한 사람이라 번아웃이 오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나약한 사람은 번아웃이 올 정도로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으며 자신의 고통과 피로를 누적시키지 않는다.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지 않는 사람들은 번아웃을 겪지 않는다. (번아웃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약한 사람이라거나, 성실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번아웃이 온 것을 인정하고 나면, 성실함이 기본 품성인 사람들이라 그런지 극복도 빨리하고 열심히 한다. 번아웃이 왔으니까 난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아예 주저앉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현실 직시에서 부터 시작한다. 문제점을 파악해야 해결 방안도 찾고, 그 방안대로 시행도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번아웃을 겪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결코 당신이 나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때가 온 거라고. 그리고 절대 당신이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번아웃은 당신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라고. 넘어진 김에 잠깐 쉬어가라고, 신발끈 다시 묶고 다시 달릴 준비 하라는 당신을 향한 세상의 보호라고 말이다.


힘들면 힘든 거야, 티 내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