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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Mar 06. 2022

2022 크리스티안 짐머만
내한 리사이틀 후기

For everyone. Not the only one.

거의 만 3년 만의 내한 공연이다. 그때도 차가운 꽃샘바람에 코트를 입고 한국전람의 이민 · 유학 박람회가 있는 코엑스에 갔다가, 롯데홀에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짐머만이라고 표기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의 모국어대로 지메르만으로 통칭함)의 16년 만의 단독 내한 리사이틀을 본 게. 우습게도 날짜는 그때보다 조금 당겨졌지만 한국전람의 이민 · 유학 박람회도 이번 주 내내 광고 문자를 보내왔다. 지메르만은 이민 · 유학 박람회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공연 기획사 마스트미디어와 한국전람이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건 아니겠지?


3년 전, 2019년 3월 23일


어쨌든 그때 공연도 매우 좋았던 기억도 있고, 생존해 계시는 피아니스트들 중 THE MOST FAVORITE 이신 지메르만 님이시므로... 이번에도 무조건 공연을 볼 생각이었다. 정신줄 놓고 3월 1일과 2일 공연 예매를 놓치는 바람에 이번엔 건너뛰어야 하나... 싶었는데 6일 일요일 한국 리사이틀 전국투어 피날레를 서울에서 하신다기에 이건 무조건 봐야 해!! 라며 예매시간 오픈과 동시에 들어가서 파이프 오르간 앞 R 좌석을 예매했다. 프로그램을 보니 바흐, 브람스, 쇼팽, 시마노프스키를 기본으로 해서 어느 날은 이 곡 넣고 어느 날은 저 곡 넣고 이런 식으로 조절하는 듯했다. 앙코르 곡도 아마 뜬금없는 작곡가의 곡 아닌 바흐, 브람스, 쇼팽, 시마노프스키 중에 하실 거 같았고. 내가 본 일요일 Grand final 공연은 바흐의 파르티타 1번(BWV.825) & 파르티타 2번(BWV.826), 시마노프스키의 9개의 프렐류드(Op.1) 중 1번, 2번, 7번, 8번. & 20개의 마주르카(Op.50) 중 13, 14, 15, 16번 , 쇼팽 소나타 3번(Op.58). 브람스의 3개의 인터메조를 못 들은 게 아쉽긴 한데 지난 1일 2일 공연 예매를 못했으니 뭐… (게으른 나를 탓해야지 누굴 탓할까)



코로나 때문에 오케스트라 내한이 뜸해져서인지 최근 내로라할만한 피아니스트들의 내한 리사이틀을 계속 보고 있는 거 같은데, 예프게니 키신, 랑랑, 지메르만 모두 다 바흐를 선택했다는 것이 좀...? 기분이 묘했다. 바흐를 선택한 것 자체가 ‘Return to BASIC’. ‘Back to BASIC’ 느낌인 거라… 시대가 바흐를 통해 모든 세상에게 요구하는 것 같은 메시지 같아서 가슴 한편이 좀 찡해왔고... (바흐의 음악이 평화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한몫하겠지...) 코로나 이후 무차별적 무작위적 혐오와 전쟁을 마주한 세상에서 바흐라는 메시지는 그렇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돌아가라’. ‘인본주의로 돌아가라’. ‘인간성을 지켜라.’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키신, 랑랑, 지메르만 세 사람의 연주 중 마지막이었던 지메르만의 바흐를 가장 편하게 감상했다. 또다시 드는 생각... ‘테크니컬 연주보다는 역시 기본이 제일 어렵다.’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 해석보다 바흐 해석이 더 어렵다고 본다.) 이래서 내가 나이 지긋하신 거장들 연주를 좋아하지 싶었다. 오욕칠정 그 모든 것의 한계를 넘어선 느낌. (개인적으로는 폴리니와 길렐스, 백건우 선생님의 연주를 좋아함. 젊은 연주자들은 색이 바뀌는 걸 지켜보는 맛이 있지만 이런 원숙미는 찾기 힘들단 말이죠.)


일단 나는 시마노프스키는 논외로 두고 싶다. 잘 모르는 작곡가고... 공부해가야 할 사람이니까. 그리고 기대했던 쇼팽... 과연 쇼팽의 환생, 21세기의 쇼팽, 쇼팽의 현신이라 불릴 만한 연주였다. 공연을 보면 음이 반짝이는 걸 느끼는 때가 있는데, 지메르만은 쇼팽을 연주할 때 가장 지메르만 답고, 가장 반짝이는 것 같다. 역시 전 세계가 인정하는 쇼팽 스페셜리스트!!


ⓒ Mark Allan




듣기로 3월 1일 서울 공연의 앙코르는 그날 연주하지 않은 시마노프스키의 곡으로 하셨다고 들었고, 2일 공연은 피곤하셨는지 앙코르를 하지 않으셨다 하고... 6일인 오늘은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 얘기를 하시며, 오늘 연주한 시마노프스키가 우크라이나에서 출생해 활동한 작곡가란 얘기와 함께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게 바친다며...“너무나 멋진 투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크라이나를 생각하면 무척 슬픕니다. 이 연주를 우크라이나에 헌정하겠습니다”, ‘For EVERYONE’ 하시는데… 역시…! 역시나 싶었다. 지금 우 - 러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쪽 연주자들 보이콧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데... 뭐 이런 방법으로도 반전 운동할 수도 있는 거지. 음악가들이 현실 문제에 나 몰라라 한 적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로스트로포비치가 그랬고, 카잘스 또한 독재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10여 년간 활을 놓고 연주를 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에스트로들이며 좋은 친구인 주빈 메타와 다니엘 바렌보임 또한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메르만의 국적 또한 폴란드다. 오랜 시간 세계 2차 대전까지 그들이 겪었어야 했던 전쟁으로 인한 슬픔은 우리 대한민국의 것과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앙코르 연주로 폴란드 작곡가 바체비치의 소나타 2번의 2악장을 바치고 조용히 피아노 뚜껑을 닫는 것으로 지메르만은 그의 위치에서 그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한국 투어를 마쳤다.


https://youtu.be/Lc1DEMrC87c



내가 고전을 표현하는 수식어 중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내가 쓴 문장이지만 정말 마음에 들어서 자주 인용한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변하지 않고 퇴색되지 않는 것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더해지고 그 향기가 짙어지는 것들.’ 음악뿐 아니라 미술, 문학, 영화 등 모든 예술은 시대의 희로애락을 담아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성장하기에 그 가치에 영속성이 계속 부여되어 왔고, 인류의 재산이 되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전에는 직접 음악을 노래하지 못함에 있어 타고난 재능이 부족해 그 재능 부족에 대해 안타까워했는데, 이제는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심에, 예술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주심에 감사한다. 예술가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자신의 재능과 그 결과물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려 하지만, 해석은 역시 대중의 몫이다. 해석을 할 수 있는 재능 또한 이번 삶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하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지메르만이 피아노를 통해 무엇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게는 그의 피아노 또한 이 시대의 아픔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남겨주었다.


매번 좋은 공연 기획해 주시는 @mast_media @mastmediaclassic 에 감사를 드립니다.





(+) 덧붙이는 말


나는 한국 클래식 관객들의 지나친 엄숙 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인데, 가끔 보면 엄숙 주의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 작년도 무티 & 빈필 예술의 전당 공연 때라던가... 지메르만의 공연을 보러 올 정도면 그래도 아예 클래식 문외한은 아닐 텐데... 더구나 소동이 일어난 구역이 RP석, A석이라면 그래도 적어도 인당 10만 원의 돈은 내고 오셨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지메르만이 자기 피아노를 분해해서 비행기에 싣고 다니며 현지에서 조립하고 조율해서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는,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핸드폰 끄거나 비행기 모드로 돌려달라는 안내 방송이 네다섯 차례 이상 나오는 걸 듣고도 왜 폰 안 꺼요... 진짜 전쟁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을 그리는 앙코르 연주가 당신의 그 잘난 AI의 ‘음원을 검색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에 롯데홀 만석이었던 그 모든 관객들이 감동이 푸쉬쉬시 신고산이 와르르르~



마스트미디어에서, 롯데콘서트홀에서 그만큼 녹음 녹화 사진 촬영 커튼콜 앙코르 모두 촬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지메르만 특유의 예민함 때문입니다. 나도 매번 지메르만 공연 가면 숨 쉬는 소리도 안 내는데 뭐하는 짓이야 진짜... 나무 위키에서 일화 찾아보면 지메르만 성격 나오는 일화 몇이나 되는데.


2013년 독일 에센의 루르 피아노 페스티벌에서 연주 도중 한 관람객이 스마트폰으로 연주 장면을 녹화하는 것을 보고 연주를 중단(!)하고 무대를 나왔다. 잠시 뒤에 돌아와서 "유튜브가 음악에 미치는 폐해가 지대하다"라고 선언한 뒤 연주를 계속했다. 그러나 그날 예정된 팬 사인회나 앙코르 무대 등은 모두 취소되었다. 참고로 연주자들은 관객들의 촬영을 당연히 매우 싫어한다. 사진이든 동영상이든, 사전에 예정되어 있는 촬영이나 촬영이 된다는 전제하에 하기로 한 공연이 아닌 이상은. 키스 쟈렛 같은 경우 내한했을 당시에 스태프들이 관객들에게 여러 차례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결국 무례한 관객 한 명이 플래시를 터트리자 여러 명이 찍어대기 시작했고, 키스 쟈렛은 공연이 종료된 이후 평생 저 사람을 저주할 거라며 무척 화를 냈다 한다. 그래서 안 올 줄 알았는데 또 내한 공연을 했다...


2014년에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협연이 예술의 전당에서 있을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다. 참고로 2003년 리사이틀에서 지메르만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매달린 마이크에 대해 불만을 표하면서 잠시 철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인지 그날 연주는 지메르만의 평소 실력에 비해 그리 좋지 않았다고. 그래서 2014년의 협연 무산도 이때의 일이 원인으로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물론 본인이 이유를 밝힌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롯데콘서트홀이 생긴 이후 롯데홀에서만 공연한다...-.,-;;)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말라고요. 누군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줄 아니? 단체로 소송 걸어버릴라.




(+) 기사가 났네요... 대단한 관객님이십니다. 앞으로 지메르만 내한 안 오면 그 분 책임인 걸로.

https://news.v.daum.net/v/EB76GcdVom


(+) 마스트미디어에서 관련 공지를 올렸네요. 진짜로 못 들으셨을 수는 없었을 겁니다 홀이 다 울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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