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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하 Oct 31. 2018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정체성에 대한 고찰

명색이  ‘출간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 (분야별 베셀이었다-_-;)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작가라는 이름보다 강사라는 이름으로  ‘작가님’이라는 호칭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듣고 살았다. 전업 작가로만 살아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강의가 들어오면 되도록이면 거절하지 않고 받는 편이라서 그렇기도 했고, 2016년 7월 27일 책이 발매된 이후에는 꽤 심한 슬럼프를 겪었기에 ‘쓰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거세된 채 살아온 지 꽤 됐다. (간간히 브런치에 영화 리뷰라던가, 음악 소개와 같은 짧은 글을 쓰기는 했지만...)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음 책의 출간이 결정되자, 나는 본능적으로 부족한 것들을 찾아 섭취하기 시작했다. 당장 필요한 마음의 양식인 음악, 글감으로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그리고 남들이 쓴 텍스트 콘텐츠...


출판 홍수시대다. 매일매일 아주 많은 책들이 새롭게 서점가로 쏟아져 나오고, 이름조차 모르는 작은 출판사들이 많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시공사나 학산 같은 아주 큰 출판사들이 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었는데 지금은 시장 자체가 아주 딴판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작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치고 책을 참 안 보는 편이다. 어렸을 적에는 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읽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서점과 도서관에서 책을 고를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어떤 정보가 내게 필요한지... 그것을 가늠할 수가 없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인터넷에도 좋은 텍스트 콘텐츠들이 많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출간된 책들보다 훨씬 더 양질의 콘텐츠를 인터넷에서도 무료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보지 않게 되기도 했고... 그리고 언제부턴가 문학 분야는 건들지도 않게 되었다. 특히 소설 분야는... 에세이나 시도 예전에 그리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내가 구매하는 텍스트 콘텐츠는 정보서였다. (자기 계발서는 제외) 편식도 몸에 안 좋지만 편독도 솔직히 내 정신건강에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안 땡기니까 안 읽는다...-_-;) 자주 접하는 것들이 그래서 그런지 내 문장의 문체도 많이 바뀌었다. 내 어린 날의 습작을 기억하는 나의 친구들이 최근의 내 글에서 많이 아쉬워하는 점도 그 점이다.  ‘많이 드라이해졌다.’는 것...


교보문고 가면 늘 확인하는 음악 부분 가판. 쟁쟁한 음악평론가님들 책들 사이에 내 책이 2년 넘게 남아있다. 내 맘에는 안 차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내 첫 책.


어젠 참 오랜만에 서점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늘 필요한 책만 미리 바로 드림 서비스를 이용해 구매해 사라지곤 했었는데 오랜만에 그동안 보고 싶어 했던 책들을 구매하고, 시장조사를 겸한 남들의 텍스트 콘텐츠를 엿보기 위함이었다. 서점에 머무는 동안,  ‘아 요즘은 이런 책들이 잘 팔리는구나.’,  ‘이 사람은 글을 이렇게 쓰는구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가벼운 정보를 다루는 책이나, 가벼운 힐링 에세이가 대세인 듯하다. 아니면 저자가 아주 유명인이거나...


서점에서 남들의 문장을 뜯어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구매해 집으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상념에 잠긴다.  ‘나는 어떤 글이 쓰고 싶은가.’.


좋아하는 것이  ‘고전’이라 그런지 내가 원하는 것은 참 명확했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두고두고 읽는 글이 쓰고 싶다.’ 이른바 훗날 고전처럼 읽히는 그런 글이 쓰고 싶다. 잘 팔리는 책도 좋다. 어쨌든 생산활동을 했으니 그에 대한 상응하는 보상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내 책을 내어주는 출판사 식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니까 그에 대한 고민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짝 잘 팔리는 책을 바라지는 않는다. 잠시 잠깐 많이 팔 수 있는 글은 내가 원하는 지향점이 아니므로 그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고민과 함께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방송국 밖의)방송작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방송이라는 게 공중의 것이어서 (그래서 방송 시그널이 On Air가 아니겠나...), 문장의 호흡도 짧고 더구나 영속성도 없다. 방송 글로써는 너무나 매력적인 글이, 텍스트로만 옮겨놓으면 읽을만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다. 물론 앞으로도 방송은 계속 만들겠지만 종이책 글에 대한 색깔을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작가가 아니라, 종이책 작가 류인하의 정체성도 찾아야 하는 게 다음 책을 작업하면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 김병선 교수님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 중에, 유독 어제오늘 더 많이 곱씹게 되는 말씀이 있다.


글에 대해서 욕심을 가지는 것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내 문장에 대한 욕심"이라고 부른다. 내 문장. 울림을 지닐 수 있는 내 문장을 갖는 것. 그것이 에세이든, 논문이든, 소설이든, 다큐멘터리 스크립트든, 시든 필수적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다양한 글들을 게걸스럽게 섭취하면서 내 문장을 찾아야 한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일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나는 이제야 이 작업에 첫 발을 내디딘 기분이다. 나의 글에 대한 고민의 시작, 내 문장에 대한 욕심을 내 보려 한다. 하루 정도 고민해보니 다음과 같은 답이 나온다.


잘 팔리는 글과 오래 남을 글의 중간 어딘가,
방송 글과 종이책 글의 중간 어딘가.
깔끔한 정보성 글과 감성적인 글의 중간 어딘가.
간결하면서도 모든 게 들어있는 글의 중간 어딘가.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다음 책 작업에 들어가면 저기에서 추가되는 항목이 분명 존재할 거다. 그리고 내 성격상 그 항목을 따라 부지런히 쫓아가겠지.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두고두고 읽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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