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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일 Dec 25. 2021

a에게,

2021.11.1

 더웠던 나날은 온 데 가고 어느덧 쌀쌀해졌다. 늘 걷던 산책길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고 하늘은 덧없이 파랗다. 앙상해진 가로수 길을 지나 걷다 보면 지나온 발자취에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가을이다.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나흘이 지났다. 상주를 들며 오는 문상을 맞이하고, 깊은 잠에 빠진  누워있는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뵙고, 발인을 하는 동안 펑펑 우는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를 애써   체했지만, 정작 나는 눈물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러니 상실의 슬픔에 빠져서는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끝없이 뿜어 나오는 우울감을 달래기 위해,   없는 감정을 재우기 위해 찾아간 미술관은 오늘따라 상실, 죽음, 삶에 관한 전시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죽으면 돌아갈 땅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오랜만에 블로그를 보다가 그녀의 블로그가 보였다. 2017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게시물이 없는, 앞으로도 없을 블로그가 누구에게 드러내거나 숨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다. 함께 했던 제주도 여행과 시시콜콜하게 적은 일상 이야기, 그 안에 적힌 내 이름.

 난 도대체 어떻게 잊고 살고 있는 건지.


"마지막으로 펑펑 운 게 언젠지 기억 나?"


 떠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펑펑 운 날. 그녀를 떠나보내는 식장에서 함께 간 사람들과 애써 넘어가지 않는 밥숟갈을 들다가 쏟아지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펑펑 울었다. 유독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a에게 질문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나는 네게 어떤 큰 부담일지, 무채색만 남은 사람일지 걱정하면서도 나는 이기적인 마음에 내뱉고 주워 담기를 반복했다. 너에게 다시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펑펑 운 게 언젠지. 마주 보면서 너의 말로 듣고 싶다. 이기적인 마음을 감추지 못해 미안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8-EZBysYH_U&list=RDMM&index=2

 

 요 근래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 다가오는 일들을 쳐내기에만 급급하고 정작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목표를 위해 달려가진 않았던 것 같다.

 전역을 하고 그녀와 헤어질 때 마음먹은 것은 '더 이상 돈에 허덕이지 말자. 돈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친구를 잃지 말자. 스스로가 부끄럽고 한심한 사람이 되지 말자.'였다. 그렇기에 우선은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버는 것이 내 목표. 이젠 더 이상 돈 때문에 허덕이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약 2년 이상의 시간 동안 바라 오고 발악했던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한동안 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다시 방황한다. 마음속에선 공허함이 계속되고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끊이질 않는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꺼진 노트북에 비친 내 모습은 말라있다.

 빈 껍데기.

 한창 먹먹하게 우울한 그때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어떠한 일을 겪고 난 후 우울의 극을 달리고 그 우울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고 찾아오는 감정은 기쁨. 누군가에, 무언가에 얽매이고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그 괴로움이 반가웠다. 그리고 이미 겪어봤기에 마음은 이겨내는 법을 안다.

새벽 내내 술에 취해 기타를 치고 겨우 잠에 들고 나니 여행 후에 오랜 숙면을 취한 것처럼 홀가분하다. a는 어쩌면 뮤즈이기도,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상은 되지 않는다. 그 선이 있기에 더욱 반갑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시 나를 위해 목표를 세운다. 빈 껍데기에서 하나씩 채워나가려 한다. 그러기 위한 발걸음의 시작이 오늘이 아닐까 싶다.


 다시금 나를 일깨워준 a에게 감사를 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qkV6OKl-QI

나는 또다시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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