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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사람 사는 게 다르다고 느껴졌던 때

by 김유인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갈까? 캐나다에서 본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우리 모두 하루 세끼 먹고, 일하고, 잠자고...

사람은 그렇게 산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한참 공부에 열중이던 시절.

언니는 대기업 항공사 승무원이 되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일본, 동남아는 기본이고 곧 미국과 유럽을 갔다.


LA 할리우드 사진, 하와이 해변에서 멋지게 선탠 하는 사진.
나와 너무 다른 언니였다.
파리 에펠탑, 몽마르트르 언덕, 퐁퓌드 센터, 스위스 산장, 이태리 로마…

언니의 사진첩에서 보이던 화려한 세상의 풍경들은 나를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들었다.

그 시절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때이었다.
돈 벌면서 해외여행을 하는 언니는 나의 우상이었다.
그리고 언니의 삶을 동경했었다.

화장품은 또 어떠랴.
그 무렵부터 친구들이 립글로스를 바르기 시작했다.
생일 선물로 아이섀도와 립글로스를 주고받았다.
매일 공부에 지쳐 있다가 그런 선물이 그나마 마음을 풀어주는 탈출구였다.
그런데 언니의 화장품은 차원이 달랐었다.
언니 화장품 가방을 몰래 열었더니 랑콤 콤팩트에, 샤넬 아이섀도와 립스틱... 모두 명품 브랜드였다.
언니가 쓰다 남은 화장품만 가져가도 나는 그날 우리 반의 스타였다.
대학에 가서도 난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니가 벗어놓은 옷을 몰래 입고 가거나, 특이한 동물 꼬리털 장식을 가방에 걸고 다니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루는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외국에 나가면 좋아?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아?”
언니의 대답은 의외였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 그리고 한국이 제일 좋아.”

그때는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그 이후로 나도 여러 나라를 가봤다.
자주 다니는 게 아니라서 그런지 다 똑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로마에서 먹은 프라골라(딸기) 젤라토의 새콤함과 달콤함은 아이스크림의 차원을 한 차원 높여줬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잊을 수 없었다.
성당 천장을 꽉 채운 압도적인 크기와 정교한 그림.
사방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콜로세움, 로마 포럼, 트레비 분수...

발 닿는 곳은 모두 천년이 넘는 건축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길바닥까지 돌로 깔려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미국 서부의 광대한 그랜드 캐논 , 붉은 흙으로 쌓인 바위들이 마치 신들이 서있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의 브라이스 캐논.
그 풍경이 주는 충격은 로마에서 받았던 감동 못지않았다.
그때 난 ‘사람 사는 건 다르다’고 느꼈다.

그러다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밴쿠버에 정착했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이전과는 반대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캐나다 오기 전, 한참 이민 붐이 일었다.
방송에서 ‘캐나다는 재미없는 천국,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했다.
처음 몇 년은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겨울이면 매일 똑같은 날이 계속된다.
늦게 뜨는 해와 끝없는 비로 해가 떴는지도 모른다.
오후 4시가 지나 어두워지면 그제야 해가 졌구나를 느낀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5개월이나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비 오는 날과 흐린 날을 좋아했다.
여름에 지친 태양을 잠시 가려주는 구름, 창밖의 ‘쏴아’ 하는 빗소리.
그런 날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와 창 밖을 바라보는 풍경들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구름 끼고 비 오는 날씨가 5개월 넘게 계속되면, 밴쿠버를 뚫고 나가고 싶어진다.
한여름의 찬란한 태양이 사라질 즈음, 밴쿠버의 축제는 끝난다.

화려한 축제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이곳도 잘 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건

마친가지다.
내가 일하는 곳은 OT를 하면 돈을 두 배로 준다.
원래는 오래 일한 순서대로 기회가 주어지지만, 이것이 어긋나면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그리고 기어코 그 자리를 되찾아 오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느낀다.

마치 남의 손에 들어간 사탕을 뺏어 오듯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우연히 알게 된 사람들이 묻는다.
“밴쿠버, 아름답고 살기 좋지 않아?”
난 웃는다.
“여름에 날씨는 좋아요.”
그리고 덧붙인다.
“근데요,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요.”

우리가 어디에 살든,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생활해야 한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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