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년 번째 출근길

6월 13일 출근길

by 박유재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어제 과음한 술기운 탓이다.

그저께 먹자 먹자 하면서 날을 잡지 못한 C에게 다음 주에는 날을 잡자고 연락을 했었다. 내가 제시한 날이 C의 다른 약속과 겹쳤는지 ‘내일은 어떠냐’고 답이 와서 그러자고 했다. 식사장소는 방이동 먹자골목 뒤편 길목이었는데, 자리가 무르익었을 무렵 술자리를 옮기는 회사 후배 동료들의 눈에 띄어 자리가 커져 버리고 말았다.

“30주년 축하합니다.”

축하의 말, 한 턱 쏘라는 말, 대단하다는 말, 부러워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오고 가고 술잔도 같이 오고 가고. 자기들이 원래 모이게 된 이유가 다시 안주거리가 되어 되풀이되고 술잔이 또다시 오고 가고. 둘이며 셋이며 얘기는 흩어졌다가 뭉쳐지며 술잔도 따라 춤을 추고. 주량을 넘게 마시게 되었다.


‘조금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8시 반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한다. 오늘은 창립기념식 및 야유회가 있는 날이다. 입 속에 술내가 느껴지고 얼굴에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20분쯤 일찍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옆구리와 주변머리에서 땀이 흐른다. 진한 감색 티셔츠를 입고 스트라이프 미색 면바지를 입으려고 꺼냈다. 어제저녁 배우자가 추천한 것이었다. 밝은 미색이 부담되어 거의 입지 않은 옷이었지만, 날이 날이지 않은가! 좀 튄다고 누가 뭐라고 할까. 그런데, 허리가 작았다. 내 몸이 불은 것이겠지.

“안 되겠는데…”

“그럼, 청바지를 입는 게 낫겠는데.”

아내의 조언을 따랐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걸칠 거 하나 입는 게 낫지 않을까?”

번거로웠지만 상의 내의를 벗고 티셔츠에 감색 바람막이를 걸쳤다. 집을 나선 시간은 7시 3분이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어지러이 멍한 상태로 사거리를 건너고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에 올라 오늘도 햇빛이 얼굴을 비추는 왼쪽에 앉아 버렸다.

‘아! 이 놈의 습관이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버스 속 시간을 보냈다.


열차를 기다리며 1-3번 출입구를 왔다 갔다 했다. 몸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내 뒤쪽에 한 사람이 와서 섰다. 그제야 자세를 고정하며 섰다.

기댈 곳이 필요하다. 열차를 타며 기댈 곳을 찾았다. 출입구 옆 세로의 철봉 손잡이가 있는 곳에 먼저 눈길이 갔다. 바로 옆에 앉은 승객이 그곳에 팔걸이를 하고 있었다. 반대편은 머리를 출입구 쪽으로 기울여 난간을 넘어서 있었다.

‘노약자석 쪽이 낫겠다, 열차 이동통로로 가자.’

이동통로 옆에 기대섰다. 눈앞으로 열차가 깊게 보였다. 정면으로 줄의자에 앉은 사람들, 그 앞으로 줄지어 선 승객들이 보였다. 그 너머 출입구 때문에 사람들의 줄이 끊어졌다가 다시 줄지어 서있는 모양이 반복되었다. 열차의 앞쪽 끝에는 승객들이 무질서하게 보였다. 의자가 없어서 창을 등지고 기대선 승객들, 그 앞으로 창을 향하기도 하고 옆쪽을 보기도 하고 뒤로 돌아 있기도 하는 제멋대로의 장면이 보였다. 한두 정거장을 지나며 출입구 주변으로도 승객들이 늘어났다.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았다. 눈을 감았다.


“이번 정차역은 고려대역, 고려대역입니다. …”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열차가 정지하는 소음, 출입문을 여닫는 소리, 열차가 다시 출발하는 움직임을 느끼며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도, 그다음 정거장도.

‘아아 아, 신당역이 멀다…’


열차는 점프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또박또박 밟아가며 정거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1994년 입사. 1995년, 1996년에는 현장살이, 1997년, … 나쁘지 않았어, 1998년, 정말 바빴었지. 1999년, 죽을 뻔했어….

어떤 해는 빠른 듯, 어떤 해는 느린 듯. 어떤 때는 많이 힘겨웠고 어떤 때는 정말 열심이었어. 괴롭기도 하고 그러다가 괜찮아지기도 하고.


나의 30년이 내게는 그렇게 여겨졌는데. 아니야, 30년은 그냥 뚜벅뚜벅 지나갔던 거야. 나와 별로 상관없이.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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