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야, 내가 너를 품고 있는 거야

6월 17일 출근길

by 박유재

30년을 넘은 오늘, 오늘도 역시나 출근을 한다. 집을 나서 사거리를 지난다. 날씨는 맑고 환하다. 선선한 기온이 아직 남아 있어 걷기에 좋다. 아직 찐 여름은 아니다.


버스 정류장에 섰다. ○○○번 버스는 뒤쪽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고는 사거리 앞 정지선에 정차했다.

사거리 보행자 신호등이 켜졌다. 평소 할머니 보호자보다 늘 앞서서 킥보드를 내달렸던 초등 남학생이 오늘은 어쩐 일로 할머니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가 킥보드의 손잡이 가운데를 오른손으로 잡아끌고 있었다. 남학생은 새로운 재미를 찾았는가 보다. 도로가 평탄해서인지 킥보드를 끄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짹! 짹짹! 짹, 째잭!"

새소리가 내 귓가로 날아들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마을공원 산책로에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를 쳐다보았다. 새의 움직임이 없었다. 좀 더 뒤쪽에 있는 대왕참나무도 눈여겨보았다. 그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메타세쿼이아도 대왕참나무도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가녀린 가지에 성긴 이파리들.

'벌써 삼 년이 지났는데…'

도시 속 나무가 자연스럽게 바뀌기 위해 삼 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째짹! 짹! 짹짹, 째잭!"

복수의 새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소리를 쫓듯이 길 건너 오 층 건물의 옥상을 보았다. 새의 움직임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는데 희고 검은 것이 까치 같아 보였다. 저건 아니다.

고개를 돌렸다. 사거리 앞으로 도로를 횡단하며 얼기설기 하늘을 가로지른 전선 위, 그곳에서 소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새 두 마리를 보았다. 참새보다 두 배는 크고 좀 더 누렇고 꼬리는 길고 부리는 더 뾰족했다. 완전히 낯선 모습은 아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다.

'무슨 새일까? 이름이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알지 못하는 새들이 많다. 눈에 보이는 않는 동물들, 식물들은 또 어떤 가? 인간이 이 도시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은 식물 몇 가지일 뿐. 인간이 계획하지 않은 동물과 식물들이 도시 구석구석에서 그들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번 버스에 올라 뒤쪽에 앉았다.

"쯕 쯔윽 쯕! 쯔즉!"

처음에는 새소리인 줄 알았다. 내 귀가 잠이 덜 깬 모양이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승객들의 신발 소리였다. 버스 바닥에 닿으며 나는 소리였다.

"삑 삑, 삑삑 삑, 삑!"

이어서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태그 하는 소리가 삐죽하게 퍼졌다.

'이 소리도 새소리 같아.'

인간의 움직임은 자연을 닮았다. 걸음걸이도 손동작도. 인간의 무리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움직임들도 자연을 연상케 한다. 이질적이고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시와 자연이 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도시는 자연에 동화될 어느 정도의 여지를 두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연은 그 마음을 알고 이질적인 이 도시를 가만히 품으며 서서히 바꾸어 가고 있다. 도시의 뽐냄은 막냇동생의 유치한 자랑처럼 보일 뿐이다.

검은색 아스팔트와 그 위에 흔들 다리처럼 그려진 횡단보도. 인간의 길은 좀 더 크고 뚜렷한 동물들의 길 중의 하나 일 뿐.

수직으로 곧게 뻗은 회색 빛 건물들. 그것들은 비죽비죽 솟은 바위들의 동생들.

그럼, 지하철은? 조금 큰 두더지일 뿐? 억지스럽지만.


도시가 너무 거대해서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이곳 도시에서도 녹음이 지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다시 비가 오고 새잎이 나고 꽃이 핀다. 오늘 보았던 저 새는 어제의 그 새가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들이 사람 모르게 돌아다니며 생활을 한다.


아웅다웅 인간사에 매달려 30년 동안 출근길을 나섰다. 앞으로 십여 년을 더 나서야 될 수도 있다. 출근길은 나를 자주 시달리게 만들지만 그래도 다행이란 생각이다. 출근길은 덜 인위적이고 약간은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출근길은 도시 속 자연의 전령이다.





KakaoTalk_20240604_130414059.jpg 돌곶이역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건물들을 만나며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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