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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새로움을 준비하자

1월 14일 출근길

by 박유재

요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한파가 휘몰아치더니 며칠 동안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고 있다. 그저께는 쌀쌀한 날씨에 아침부터 싸락눈이 내렸었다. 길거리에 타닥 닥닥 다다닥, 내 어깨에도 다닥닥 타다닥.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도 서너 명 보였다. 우산에도 싸락눈이 부딪치며 소란스럽다. 오전에는 눈발이 커졌고 오후까지 폴폴 눈이 내렸었다.

어제 큰길 가의 눈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보도에는 듬성듬성 남아 쌓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다른 쪽에서는 사뿐사뿐 거리기도 하고 지벅지벅 걸어가기도 했다. 다들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공기도 착 가라앉아 있다.


지난번 봤던 젊은 부부를 오늘도 봤다. 오늘은 서로 떨어져 걸어왔다. 좀 가라앉은 느낌이다. 4분을 기다려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사람들로 붐벼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움직였다. 내 가방이 사람들 틈에 걸린 듯 나아가는데 걸리적거렸다. 오른팔을 뒤로 움직여 가방을 건드려 보았는데 그래도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주름이 있는 핸드백 조임줄에 가방의 손잡이가 걸려 있었다. 버스가 흔들리는 가운데 중심을 잡아가며 조임줄을 빼내었다. 핸드백 가방의 주인은 미동도 없었다.

'뭐에 빠져 있길래…'

갑작스레 긴장하며 행동을 해서인지 한숨이 흘러나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뒤에서 헤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잘 다녀와."

남자의 목소리였다.


오늘 버스는 보도와 1미터 남짓 거리를 두고 정차했다. 승객들은 폴짝폴짝 가볍게 뛰어 보도에 발을 디뎠다. 내가 내릴 차례인데 조심스럽다.

'욕심내지 말자…'

한 발을 차도에 얌전히 디디며 내렸다. 지하철로 향하는 길에 남자와 헤어진 여자는 오늘도 서둘러 총총거리며 지나쳐갔다.

길은 군데군데 눈이 녹아 눌어붙어 미끄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꽈당!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나이 지긋한 남자가 주저앉아 정신을 놓은 모습이다. 머리도 부딪쳤는지 손을 머리 뒤로 하고 매만지고 있었다.

'이런, 도와줘야 하나…?'

생각이 반짝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 뒤쪽으로 두세 사람이 쳐다보고 그중 한 사람은 허리를 굽혀 뭔가 묻는 모양새였다. 나는 가던 길로 움직였다.


지하철 대합실이 시끄럽다.

"●●● 국회의원 의정보고서입니다 -"

국회의원의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의정보고서를 드리 밀며 계속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개찰구로 향하며 서너 명의 직원들이 연이어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 국회의원이 인사를 하고 있었다.

"●●● 국회의원입니다."

연초여서 일 수도 있고 4월 총선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새로운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새로움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진한 베이지색 파카를 입고 푸른색 기다란 니트 치마로 부푼 배를 가린 임산부가 임산부석에 앉아 있었다. 머리를 유리 난간에 기대고 눈을 감은 모습이 깊이 잠기어 있다. 검은 벨벳 가방을 무릎 위에 얹었는데 가방 손잡이에 매달린 동그란 배지가 보였다. 핑크빛 배지와 유리 난간으로 보이는 눌린 머리는 새로움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애잔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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