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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간 출근길

1월 10일 출근길

by 박유재

○○○번 버스가 다가왔다.

'옳거니!'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버스 번호에 긴가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버스를 기다렸는데 ○○○번 버스가 바로 온 것이다. 신호등이 바뀌며 버스를 타기 위해 지갑을 꺼냈다.

‘이런!’

지갑에 늘 꽂아 놓는 사원증이 없었다. 옷을 갈아입었는데 어제 입었던 바지 주머니에 두었던 것이다.

사원증 없이 하루를 보내느니 서둘러 집에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어 발길을 돌렸다. 사거리로 향하며 동시에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벌써 발걸음은 사거리를 건너고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여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되도록 서두를 뿐이다. 집에 도착해 사원증을 챙기고 다시 나왔다. 올 때와 똑같이 걸음을 빨리 하고 뜀박질을 했다. 숨이 차올랐다.

'오늘은 아침 운동도 했는데...'

어제 신문기사 한 토막을 봤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운동이 부족하다며 일주일에 중강도 운동을 150분은 해야 한다는 기사였다. 잠자기 전 다짐을 하고 몸을 억지로 일으켜 운동을 했다. 이런 날 하필 원하지 않은 뜀박질을 한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 가까이 와서야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었다.


그 새 하늘은 짙은 어둠을 물리치고 투명한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아침 시간은 변화가 빠르다. 빠른 변화에 자칫하면 무엇이든 놓치기 십상이다. 놓친 것을 다시 잡으려면 수고가 불가피하다.


버스 정류장으로 젊은 남녀가 다가왔다. 검은색 롱패딩을 마치 커플룩처럼 입었다. 여자가 손바닥 만한 주황색 구* 핸드백을 크로스로 맨 것 외에 그들의 모습은 평이했다. 여자는 남자의 겨드랑이에 팔을 살짝 끼고 걸었다. 그것 만으로도 다정다감한 것이 보기 좋았다.

버스에 올라 여자는 앉고 남자는 여자를 지키려는 듯 양손을 의자 앞뒤에 놓고 여자 쪽으로 기대어 섰다.

"날씨가 추워."

여자가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목을 굴리듯 때글때글 구르는 목소리인데 어떤 대답을 했는지 들리지 않았다. 여자가 뭐라 뭐라 하며 대화가 이어지고, 여자의 목소리가 한번 더 들렸다.

"버스가 따뜻하네…"

이번에도 남자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무릎 아래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버스의 히터가 여자의 자리 근처에 있었던 듯했다. 추운 날씨에 버스는 히터를 최고로 가동하여 실내를 어서 데우려는 듯 다리에 온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영하 11도의 한파가 다시 찾아왔다. 저 멀리 북유럽에서는 영하 40도가 넘어 도시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홍수가 극심하다는 뉴스로 주말 내내 시끄러웠다. 미국의 북쪽에도 극심한 한파가 왔다. 북극 쪽에 있는 제트기류의 '사행'때문이라고 한다.

'사행이라니…'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우리나라도 피해 갈 수 없다는 경고도 있었다. 북극 한설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줄지어 한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차들을 보여주는 장면은 소름을 돋게 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버스 히터를 가까이 두고 몸을 지키는 방법밖에 없는데, 어디로든 되돌아가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려야지…"

목소리가 때글때글 단단히 뭉쳐 울린다. 버스에서 내려 돌곶이역으로 향했다. 뒤이어 내렸을 그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고 개찰구로 향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아가는데 앞으로 지나쳐가는 구* 핸드백이 보였다. 여자 혼자였다.


신당역에 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고 계단을 오르고, 뭔가 허전하다. 그동안 우리를 형식적으로라도 유도했던 유도요원이 보이지 않았다. 승강장에도 계단 위에도, 기다란 환승 통로에도. 이들은 벌써 어디로 되돌아간 것일 까.


* 그날 이후 유도요원은 계속 보였다. 아마도 그날 안 보인 것은 나의 출근시간이 평소보다 늦어 그들의 퇴근시간이 된 것인지, 아니면 휴식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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