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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출근길 일상

1월 3일 출근길

by 박유재

세상이 어둑어둑하다. 사거리로 향하는 아파트 상가들은 흐릿하게 실내조명을 켜고 밤을 지새웠다. 밤새 누가 찾아오지도 않았을 텐데 불을 밝히고 있다. 사거리 건너 스*** 커피숍은 실내가 어두운 가운데 주문하는 곳 주변으로 조명을 켜고 점원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7시 30분. 이른 시간에 벌써 출근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커피숍 앞 도로에는 청소 리어카가 짐을 한가득 싣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출근을 언제 했을 까. 일을 기준으로 하루를 얘기한다면 미화원은 벌써 하루의 후반부를 보내고 있다.


버스 정류장 전광판에 ○○○번 버스가 4분 후 도착한다고 알려주고 있다. 길 건너에는 버스 두 대가 연이어 정차하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버스 한 대에서 엔진 소리가 크게 일어난다.

"거엉거엉거엉 겅-겅- 긍 - - 그응 응 - - -"

운전기사의 조작인지 버스가 알아서 낸 것인지 한참 소리를 내더니 '겅 겅 프득 프드득 드드득' 잦아들었다. 내가 출근하며 처음 접하는 대상은 전자식 표식이었고 처음 듣는 소리는 금속성이었다.

○○○번 버스를 타고 하차 문 바로 뒤에 앉았다. 왼쪽 앞으로 거뭇거뭇한 은발의 남자가 앉았고 그 뒤로 한 사람이 파카 모자를 뒤집어쓴 채 의자 깊숙이 앉아 있다. 주변 승객들 모두 조용하고 정적이다.

다음 정거장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올라온다. 두릿두릿 눈동자를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자리를 잡는다. 출근하는 얼굴들. 하나같이 무표정하고 굳은 얼굴들이다.


버스에서 내렸다. 하늘은 벌써 어슴푸레 한쪽 하늘이 투명하게 밝아오고 있다. 정거장 옆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는 아무도 모르게 10여 층을 넘어 올라가고 있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따당, 탕-, 땅-, 타닥!"

하얗고 높은 울타리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출근한 사람들이 이것저것 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내린 사람들은 뛰어가고 뒤이어 주머니에 두 손을 깊게 찔러 넣은 사람들이 어깨를 흔들며 터벅터벅 걸어간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그래?"

"하하 아하!"

"그렇다구 -"

"하하하 하하"

밝은 통화소리가 뒤에서 계속 들려왔다. 승강장을 내려오니 옆쪽 계단에서 내려오는 한 여자의 표정이 환하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화면이 보이게 들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있다. 입을 움직거리는 것이 통화하는 모양새다.


열차를 타고 가는데 운전원의 날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역은 고려대, 고려대역입니다. … 열차, 출입문, 닫습니다.'

투박하지만 녹음된 안내 소리가 주지 못하는 정감 있는 목소리다.


신당역에서 내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환승통로로 걸어간다.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두세 줄의 장사진이 순식간에 벌어지고 계단으로 네다섯 줄의 사람들이 두서없이 걸어간다. 왼쪽의 커다랗고 둥근기둥 뒤편에 숨은 유도요원이 보인다. 아직도 제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승객들을 지켜보기만 한다.

계단을 오르는데 옆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울음소리가 일어난다.

"끄응응응 꺼엉 꺼엉-"

에스컬레이터 발판 오른쪽에 빼곡히 승객들이 서서 올라가고 발판 왼쪽을 딛고 걸어 올라가는 승객들의 무게에 신음하는 소리다. 수평의 무빙워크 끝단에는 미화원 두 명이 무빙워크 주변 금속 철물들을 닦으며 하루 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2호선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뜀박질을 하며 서둘러 움직여서 몇 개 앞쪽 출입구로 올라탔다. 열차 안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열차 속 변함없는 모습들이다. 한 여성이 파우더의 거울을 보며 입술을 매만지고 있다. 입술을 옴지락거린 후 앞으로 내밀었다가 옆으로 늘렸다 하며 살펴보고 있다.


잠실역에서 내렸다.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좌우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리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하고 휴대전화를 보기도 하고 그냥 전면을 응시하기도 한다.

'내 표정은 어떻게 보일까?'

'나도 똑같이 무표정하고 굳은 얼굴을 보이고 있을까?'

승강장 통로로 나아가 출입구로 향한다. 반대편 8호선으로 환승하려는 사람들을 거슬러 이리저리 피해 가며 걸어가 계단을 올라간다.


개찰구에서 단말기 소리가 오늘따라 크고 날카롭게 울린다.

"삐익, 삑, 삑, 삑-" 개찰구를 나가며 태그 할 때마다 일어나는 '삑' 소리가 대합실에 가득 요동친다. 무엇이 바뀐 걸까? 해가 바뀌며 변한 것이라 곤 이 소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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