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출근길
매서운 추위에 겨울 옷을 두텁게 껴입고 지난주를 보냈는데 이번 주는 날씨가 풀리더니 초미세먼지가 극성이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어나고 여기저기 마른기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하철 승강장 전광판에서는 초미세먼지가 47.1 마이크로그램이라고 건조하게 알려주고 있다. 늘 사람들에 부대끼며 열차 소음을 들으며 이동한다. 추위에 초미세먼지까지 더해져 출근길은 스트레스를 몰고 온다.
오늘도 듣게 되었다. 벌써 한 달이 넘게 듣고 있는 방송이다.
'여러분, 버스나 지하철 자주 타는데 요금할인은 크지 않아 아쉬우셨죠? 그래서 서울시가 드디어 버스, 지하철, 따릉이까지. 대중교통 무제한 기후동행카드. 문의 120.'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한 차례 보았고 얼마 전에는 신문기사로도 보았다. 내년부터 시작되는가 보다. 월 65,000원에 교통수단 무제한 이용. 신문기사에서는 따릉이를 빼면 월 62,000원에 이용할 수 있고 서울에서만 가능하다고 했었다.
'월 65,000원…, 아리송한데…?'
버스를 한번 탄 후 돌곶이역에서 잠실역까지 가는 요금은 1,700원이다. 여기에 출근일 수 20일과 출퇴근으로 2를 곱하면 68,000원이 된다. 물론 주말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비는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보통 주말에는 자동차를 이용하니 교통비가 얼마나 더 많아질 까. 커피 한 잔 값 정도 절약이 되니 좋긴 하지만 몇 천 원을 아끼려고 기후동행카드를 신청한다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 까.
궁금함이 생긴 이후 출퇴근하며 나보다 교통비가 더 찍히는 경우를 살펴보았다.
12월 5일, 앞사람이 단말기에 태그를 했다. 73,690원. 나는 11,900원이었다. 월 초부터 이렇게 금액이 크다니! 정액카드인가?
12월 7일, 종이신문을 들고 다니는 남자였다. 17,500원. 나는 13,400원. 나보다 많다.
12월 8일, 앞사람 8,200원. 나는 16,500원. 어떻게 반절 밖에 안 되지?
'아무래도 잘못된 방법 같군!'
그래도 계속 눈길이 갔다.
12월 12일, 부부였다. 돌곶이역 승강장에서 전광판을 보더니 남자가 뛰려고 했다. 여자는 손을 흔들며 '잘 가'라 말하고, 남자는 '수고해'하며 헤어졌다. 정겨운 남자의 태그 금액은 29,100원이었다. 나는 19,900원. 나 보다 짧을 그들의 저녁시간. 단말기에 표시되는 금액은 사람들의 이동거리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어림 형편도 보게 된다.
12월 18일, 젊은 여자가 아이보리색 파카를 입고 은색의 염색머리를 했다. 헤드폰을 쓰고 추운 날씨 탓에 소매를 늘려 손 아래로 내리고 헝겊 배낭을 허리춤에 걸치고 버스에 오른다. 58,400원! 나보다 18,000원어치 더 멀리 간다. 더 멀리 가고 더 시간을 쓰고 더 돈을 쓰고….
12월 26일, 머리가 좀 큰 중 장년 남성이었다. 듬성듬성한 흰색 머리칼이 주뼛주뼛했다. 가방 끈이 달린 노트북 가방을 들고 털레털레 걸었다. 98,600원. 단말기 금액이 올라갈수록 남자의 어깨는 처질 것이다.
'앞선 사람의 단말기 금액 보기'를 해 보니 30퍼센트 정도의 사람들이 나보다 교통비를 더 많이 사용했다. 십만 원이 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기후동행카드가 적잖이 도움 될 것 같다.
'그래도 아쉬운 건 치기 어린 마음인가…'
경기도는 '더 경기패스'를 도입할 예정인데 경기패스는 교통비 일부를 환급해준다고 한다. 일반은 20퍼센트, 청년은 30퍼센트다. 일부 환급과 총액 제한을 섞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 까.
출퇴근 시간이 10분 길어질 때마다 근로자들은 총소득이 19퍼센트 감소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직장 만족도 하락을 느낀다고 한다. 모두들 시간을 줄이지 못하는 형편일 텐 데 비용이라도 줄일 수 있었으면. 새해를 맞이하며 작은 소망이 인다.
그런데, '기후’ 동행카드라니!
'정액 무제한 이용'이 기후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횟수가 줄지도 않고 시간이 줄지도 않고. '기후'를 너무 쉽게 남용한다.
신문기사에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 평균 이용요금 기준 43번째 탑승부턴 이득
서울시민의 평균 대중교통 이용 요금은 1525원으로 서울시는 이와 유사한 1500원을 기준으로 기후동행카드 이용 비용을 책정했다. 6만 2000원 카드를 구입하면 43번째 대중교통 이용부터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 경기도 지하철서 내리면 추가요금 부담해야
- 재정부담은 어느 정도인 가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도입으로 인한 운송 손실에 대해 50%를 보전한다는 방침이다. 월 예상 이용객 약 50만 명, 승객 1인당 돌아가는 혜택은 월 3만 원 규모로 추정했다. 월 손실규모는 150억 원에 달한다. 서울시의 매년 재정 지원 규모는 9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도입으로 승용차 이용이 연간 1만 3000대가량 줄어들고, 연 3만 2000톤 규모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 자동차 이용이 줄어든다는 얘기였군! 1만 3000대라…, 어느 정도의 숫자인지 가늠이 안 되지만, 이 큰 서울에서 1만 3000대라…. 기본권인 이동권이 교통비로 인해 점점 나빠지는 상황에서,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기후위기 속에서, 생색내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지만, 어쨌든 좋은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