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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어묵 하나 퇴근길 꽃 한 다발

12월 27일 출근길

by 박유재

잠실역 개찰구를 나와 왼쪽으로 꺾으며 지하철 출입구 쪽으로 향한다. 십여 걸음을 짧게 걷고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지하철 출입구가 보인다. 이곳 오른쪽 모서리 지하상가 한 점포에 사람들이 모여 서있다. 시간은 8시 30여분. 십여 명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아침 요기를 하고 있다.


점포에서는 분식을 팔고 있었다. 어묵과 떡볶이, 속이 여러 가지 들어간 다양한 맛의 꼬마 김밥이 주된 메뉴다. 사람들이 저마다 어묵 꼬치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한 개에 천 오백 원.

'한 개로는 부족하지…'

회색 파카를 입고 아이보리색 바지에 흰색 운동화를 신은 젊은 청년은 방금 주문을 마쳤는지 어묵이 들어간 종이컵을 들고 먹으려 하고 있었다. 무릎길이 베이지 코트에 투박한 가죽가방을 어깨에 맨 젊은 여자는 어묵을 고르는 모습이다. 손 끝을 어묵 무더기로 향하고 허리를 수그려 눈빛을 꽂으며 살펴보고 있었다. 어묵이라는 것이 고만고만할 터인데 어떤 눈썰미로 골라내는 것일 까.

연보라색 카디건을 걸치고 검은색 바지에 뒤꿈치 없는 털신발을 신은 여자는 종이컵을 들고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국물 맛을 음미하는지 다른 어떤 생각을 하는지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고 정적으로 서있었다. 여자의 옆으로 동그란 간이 의자에는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노트북과 태블릿 피씨가 놓여 있었다. 이 정도면 잠깐의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낸다고 할 수 있겠다.

뜨듯한 어묵을 한 입 떼어 입안에서 이리저리 하-하- 굴리며 먹고 양념장을 발라 달짝지근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더하고 종이컵에 국물을 담아 뜨끈한 국물을 혹혹 불어가며 마신다. 열기가 얼굴을 데우고 짜르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한기를 쫓아낸다.

'군침이 고이네…'

출근길 여정을 끝내며 어묵 하나로 기운을 북돋운다. 이제 저마다의 일터로 들어가 치열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며 막간의 시간을 할애해서 점포를 들르기도 한다.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 먹기도 한다. 빵집이 있기도 하고 과자점이 있을 때도 있다. 화장품 가게도 있고 옷가게도 있다. 허접한 모양의 ‘임대’ 표지를 붙인 빈 가게도 있다.

신당역 환승통로에 빵집이 있었다. 출근길 방향에서 2호선에 못 미쳐 있는 곳이었다. 팥빵과 크림빵, 소보루빵 등속을 펼치고 판매에 열심이었다. 이 아침 시간에! 가게에서 직접 빵을 만드는지 가게 주변으로 빵내음이 흘러나와 사 먹고 싶은 마음을 일으켰었다. 하지만 빵이 판매에 좋은 품목이 아니었는지 코로나 시기를 이겨내지 못했는지 한 동안 빈 점포로 방치 상태였다. '임대' 표지가 한 동안 붙어 있더니 얼마 전부터 이동식 매대 몇 개가 가게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형광 색 푯말이 덕지덕지 유리창에 붙었다.

'국산 면양말 3묶음 만원'

'◇◇백화점 겨울장갑 10,000원->4,000원'

아침 시간에는 굳게 닫혀 있더니 퇴근길에 보니 매대를 밖에 꺼내 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시간에 누가 살 까. 출근길에 점포가 닫혀 있는 것은 당연했다.

돌곶이역에도 비슷한 점포가 있다. 이곳도 출근길 방향에서 가게 전면을 볼 수 있다. 커다란 현수막도 붙어 있다.

'우리 밀 삼색 찐빵, 3가지 맛 앙금이 꽉 찬 우리 밀 찐빵'

아침에는 어둡게 닫혀 있고 퇴근길에나 장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센베이 과자를 판다. 한쪽에 부채꼴 모양, 동글동글하거나 사각 모양의 과자들이 투명하고 널찍한 사각 그릇에 담겨 펼쳐져 있었다. 다른 쪽에는 견과류와 찐빵을 벌려 놓았다. 가게 안쪽에 나이 든 여자 둘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장사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손님이 없는 형편을 자조하는 것인지.

하루 노동 후의 휴식을 바라며 걷는 길,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구매 욕구를 일으키기에는 양말류나 센베이 과자는 아쉬운 품목 같긴 하다.


신당역 환승통로에 제법 오래된 꽃가게도 있다.

'이런 구석에 꽃가게라니…'

출근길에는 숨겨져 있는 곳이다. 꽃가게는 퇴근길,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와 다시 내려가기 전 중간 참 안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가게 안 벽면 유리 선반과 유리함에는 초화 류가 전시되어 있다. 형광등 불빛에 실내가 은은하고 아롱져 보인다. 가게 밖에는 다단 선반에 선물용 꽃다발 십여 개가 진열되어 있다.

'이게 다 팔리는 건가…?'

미심쩍다.

아무래도 이곳 환승통로는 출근 때는 2호선으로, 퇴근 때는 6호선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가게는 퇴근길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이다. 젊은 남녀 한 쌍이 가게 앞에서 꽃을 보고 있었다. 여자의 미목은 환했고 남자의 얼굴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들의 저녁은 행복할 것이다. 퇴근길 이만한 휴식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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