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출근길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열차가 정지하는 소음, 출입문을 여닫는 소리, 열차가 다시 출발하는 움직임을 느끼며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도, 그다음 정거장도.
‘아아 아, 신당역이 멀다…’
열차는 점프하지 않았다. 하나하나 또박또박 밟아가며 정거장을 지나가고 있었다. 내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돌곶이역에서 열차를 타고 출입구 옆 수직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섰다. 다음 전철역들을 몇 개 지나며 승객들이 늘어났다.
출입구 주변에도 사람들이 무리 지어 섰고 그중 한 사람의 휴대전화 화면이 보였다. '시편 19편'. 머리글이 보이고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성경을 읽으려는 건가 보네.'
그 사람은 젊은 남자였는데, 위아래로 검은색 복장을 하고 검은색 등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는 휴대전화를 세로로 해서 양손으로 잡고 글자를 치고 있었다. 제목 아래로 대여섯 줄의 글자들이 쓰여 있었고 그 아래로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무슨 글을 쓰는지 궁금했지만 보이지도 않았고 가까이 가서 훔쳐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호기심을 그만 접었다.
'시편'이라는 제목과 산문으로 보이는 몇 줄. 에세이일까? 주제는 뭘까? 나와 같은 동류를 만난 것이 살짝 반가웠다.
며칠 전에 비슷한 경우를 접했었다. 아마도 2호선을 갈아타고 바로였을 것이다. 줄의자 끄트머리에 젊은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나랑 비슷한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네.'
여자는 오른손에 필기도구를 잡고서 책을 읽고 있었다.
'필기도구까지 잡고 책을 읽나'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지고 앞에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지 않고 내용이 어려워 이해되지 않을 때 그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찾아낸 나름의 고육지책인 면이 있다. 두 번 읽는 책이 별로 없지 않나? 한 번 읽을 때 제대로 읽으려는 자세로 볼 수도 있다.
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을 따로 적어 놓으면 '누구지?' 이름이 생소할 때 찾아보고 인물과 연결된 사건을 따라가기에 좋다. 낯선 단어는 뜻을 검색해 보고 표시를 해 놓은 후 나중에 다시 훑어보면 새로운 단어를 배우는 재미가 있다. 표현이 좋은 문장은 당연히 한번 더 읽어 보고 싶은 생각에 밑줄을 긋는다.
에세이의 경우 서론이나 본론의 단락마다 핵심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결론도 마찬가지로 해서 읽으면 글의 줄기를 파악하는데 조금 수월하다. 중요 단어는 '찾아보기'와 같이 따로 적어 놓아 중간중간 되짚어 읽으면 이 또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사람도 이렇게 책을 읽을까?'
이런 독서를 '되새김 독서' 혹은 '생산적 독서'라고 하면 어울릴까? 되새김질한다고 하며 읽었는데도,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적지 않다. 무엇인가 다른 수단이 더 필요하다. 한편으론,
'뭘 그렇게 남기려고…'
그냥 통칭해서 재미있게 읽으면 되는 것 아닌가! 매사에 무슨 의미를 그렇게 찾으려고 하나라는 생각이 일기도 한다.
2호선 열차가 붐비기 시작했다. 줄의자 앞쪽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고 그 줄 중간에 틈새 한 곳이 있어 비집고 들어가 섰다. 승객들은 대부분 휴대전화를 보며 게임을 하고 OTT를 보고 웹툰이나 웹소설을 보고 있었다.
'소비로 가득한 시간이야.'
두세 정거장을 지났을까 내 앞에 승객이 일어나 자리가 생겼다.
'내가 제일 늦게 이곳에 들어섰는데…'
기분이 좋았다. 양 옆으로 서있는 사람들이 신경이 쓰였지만 지하철의 국룰이 아닌가! 그냥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앉았다.
맞은편 의자에 앉은 승객들이 사람들 틈새로 보이고 한 여자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손거울을 보고 속눈썹을 손가락 옆면으로 말아 올리며 조심스럽게 다듬고 있었다. 고개를 이쪽으로 저쪽으로 돌려가며 눈매를 살피는 모습이 정성스러워 보였다.
'출근 준비, 저것도 생산적인 것인가?'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것, 남기는 것을 '생산'이라고 한다면 생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출근을 위해 닦고 옷 입고 꾸미고 하는 것을 ‘생산활동’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싶다.
그럼에도 통상적인 이 길 자체를 근로의 범주에 넣어 주는 것을 보면 좋은 세상이다. 생산 활동을 하든 안 하든. 회사와 별개의 생산 활동을 하든. 소비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든지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