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출근길
6월은 5월보다 메마른 계절이다. 빗방울을 이 주 동안 볼 수 없었다. 하늘 가운데 흰구름이 뭉실뭉실 떠있는 청명하기만 한 날들의 연속이다. 태양은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나들게 지상을 달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아침 기온이 20도 초반이라는 점이다.
오늘도 햇살이 뜨거웠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럽다. 오늘도 버스의 왼쪽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햇빛이 왼쪽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똑똑한 승객들은 이미 오른쪽 자리를 거의 채우고 있었다. 나를 뒤따라 올라온 총명한 승객 두 분이 오른쪽 자리를 마저 채웠다.
두 번째 사거리를 좌회전하며 햇빛이 얼굴 앞쪽에서 내리 쏘였다.
‘눈을 뜰 수가 없네…’
차라리 눈을 감고 말았다. 태양빛은 계속해서 내 얼굴에 강렬하게 떨어졌다. 시야가 환하게 바뀌었다. 주광성의 느낌만을 접촉하며 나는 잠잠히 있었다. 햇빛이 공기라면 공기 속 한가운데에서 주광성이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검은 어두움이 아닌 회색 빛 밝음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가로수와 건물들을 지나며 가려졌다 나타나는 햇빛의 단절일 것이다. 벌써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고 있다.
오늘은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주광성이 끊겼다가 다시 느껴질 때 과거의 한 순간이 떠올랐다가 꺼졌다가 주광성과 함께 다른 순간이 떠오르고 한다.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을 했을 때 점심식사의 장면, 입사 동기들과 가졌던 티타임-그때 모두 말을 놓기로 했었지. 부서 동료들의 얼굴들, 첫 현장에서의 난처함,
“이번 정류장은 장위2동 주민센터…”
버스는 안내방송과 거의 동시에 정류장에 다다랐다. 서둘러 내렸다. 눈 속 장면은 꿈 같이 번뜩번뜩 지나갔지만, 내가 지내온 회사생활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못했다. 돌곶이역 출입구로 걸어가며 지금까지 지내온 직장생활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생각해 본다. 아쉬움? 화? 고갈? 늙음? 다행? … 가장 알맞은 말은 그래도 ‘감사’ 같았다.
지하철을 이용하며 출근을 할 때 되도록이면 책을 읽곤 했다. 요즘은 ‘가람기획’의 ‘그때 그 소설’ 시리즈 3권을 읽고 있다. 3권은 1972년부터 1980년까지 현대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14편을 모은 책이다. 제목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1979년 동인문학상 수상을 한 동명의 소설을 책 제목으로 지은 것이다.
삼 일 전부터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아래의 문장을 읽었다.
지섭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왜?”
아버지가 말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을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소설이 쓰인 시기의 소설 속 인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대학도 갔고 취직도 하고 큰 탈 없이 30년을 보냈으니, 나의 30년 회사 생활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감사’가 당연하다. ‘시작’이 내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고, ‘과정’에서 내 실력은 종속변수였고 ‘마무리’ 시점에서 내 역량은 고만고만했다.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제 하늘에게든, 부모에게든, 가족에게든, 그리고 이제는 끊어지고 기억에서도 사라져 특정되지 않고 어렴풋한 누구누구에게든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