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가 없는 나라가 있다 2

그 두 번째 이야기

by 마포구타자기

https://brunch.co.kr/@miniblackgoat/10


지난 해 여름, 케냐의 비닐봉지 금지법을 다룬 위와 같은 글을 썼었다. 그 결과, 내 예상과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크고 작은 관심을 보여주셨고, 난생 처음으로 내가 쓴 글이 네이버 메인에 걸리기도 했었다.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참 감사한 날들이었다.


케냐의 비닐봉지 금지법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글이다 보니, 아무래도 글 자체가 조금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들로 많이 채워졌었고, 글을 읽은 분들이 비닐봉지가 없는 삶에 대해 더 궁금하신 점이나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많이 생기셨던 것 같다.


많은 댓글들에 매번 성실히 답변을 달아드릴 수 없었기에 (무엇보다 일이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은 브런치에 자주 방문할 수가 없었기에) 오늘은 지난번 글의 연장선상에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던 점들을 해소해드리는 글을 써보고자 한다. 그렇지만 역시 한 개인이 케냐라는 큰 국가 중 아주 일부를 경험하고 쓰는 글인 만큼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다.



‘비닐봉지’ 금지법과 ‘비닐’ 금지법


지난 번 글을 통해 케냐의 비닐봉지 금지법에 대해 소개했고 이를 대비한 출국 전 나의 짐싸기 모습과 입국 후 비닐봉지가 없는 일상을 살고있는 나의 이야기를 소개했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남겨주신 댓글을 통해 조그만 오해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오해는 케냐에 오기 전, 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오해이기도 하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비닐봉지’ 금지법 ‘비닐’ 금지법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계신다는 점이었다. 이런 점은 다음과 같은 댓글들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도 도입이된다면 라면은?과자는? 비닐재질로 포장되어있는 음식은 어떻게 해결하려나”

“그럼 위의 라면같은 가공식품은 어떻게 유통되나요? 고기나 생선의 판매방식은요? “

“그럼 케냐에서 생리대같은건 어떻게 판매하고있나요?”

“가공식품, 생필품엔 비닐이 알게 모르게 들어가는데 단지 브라운백과 천장바구니만으로능 불가능할텐데요.”


우선 위와 같은 댓글들에 답변을 먼저 드리자면, 열거해주신 모든 항목에는 비닐이 사용된다. 라면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는 인도식 라면밖에 없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의 라면과 같은 재질로 포장이 되어있고, 과자와 생리대 등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이다. 고기와 생선의 경우에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정말 시골지역이라 신문지로 포장을 해주긴 하지만, 조금만 큰 도시에 가도 비닐로 포장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비닐봉지 금지법이 시행된 케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을까?

이유는 위에 열거된 항목들은 말 그대로 ‘비닐’이지 ‘비닐봉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그게 무슨 비닐봉지 금지법이냐’라고 따져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현지에서 생활하는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곳에서 ‘비닐봉지’와 ‘비닐’은 다르다는 것이다.


나도 많은 분들이 갖고 계신 의문점과 의아함을 너무나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케냐에 오기 전의 내가 바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닐봉지가 없는 나라라면, 그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라면, 라면이나 생리대, 기타등등 비닐로 포장될 수 밖에 없는 그 모든 것들은 어떻게 팔리고 있는 것일까?"


정확하게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의문, 그 자체이다. 케냐에 오고 나서, 큰 도시에 있는 마트와 쇼핑몰을 돌아다니면서 점차 이해하게 된 것은, 이곳에는 ‘비닐봉지’가 없을 뿐이지, ‘비닐’ 자체는 아직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케냐로 가기위한 짐을 쌀 때의 나는 지금 많은 분들이 생각하고 계신 것처럼, ‘비닐봉지 = 비닐’ 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계적인 중단 vs. 일괄적인 중단


이쯤되면 나는 이 글을 읽고계신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실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본다.


“아직 비닐이 사용되고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지?”

“비닐봉지만 금지하는 법이 과연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독자 분들의 생각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나 역시 위와 같은 상황을 깨달았을때 같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말장난에 속은 기분이 들었었다. 비닐봉지랑 비닐이 다르다, 그래서 비닐은 계속 써도 괜찮다는 것인가?


그런데 계속 이곳 생활을 하며 조금 더 고민하고 생각을 해보니, 오히려 단계적인 해결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비닐봉지를 없에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매일 빈손으로 딸랑대며 걸어가던 집 앞의 편의점에는 내가 실컷 고른 물건들을 담아줄 검은 비닐봉지가 없을 것이다. 저녁반찬거리를 사러가던 시장, 갑자기 배가 아파 들린 약국, 한 겨울 길거리의 호떡가게 조차도 비닐봉지를 주지도, 판매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들에 하나씩, 천천히 적응을 해나가면서 결국에는 ‘비닐’이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는게 맞는 방법이 아닐까. ‘비닐 금지법’이 아니라 ‘비닐봉지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고 해서 비닐 사용을 장려한다거나, 위선적으로 환경을 위하는 척하는게 아니라, 실은 비닐이 없는 세상을 위해 케냐는 우리보다 한 발자국을 먼저 더 내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견딜만한 불편함을 영위하는 삶


비닐봉지 없는 일상을 시작한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이곳 케냐에서, 그 중에서도 시골에 사는 나는 어쩌면 비닐봉지가 크게 필요없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에서 환경을 위해 비닐봉지를 안쓰고 계시거나 텀블러를 항상 챙겨다니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케냐는 그 어디에서도 비닐봉지를 주지도, 팔지도 않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비닐봉지 없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라고 왜 못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곧 돌아가게될 한국에서는 지금보다는 물건을 살 일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닐일도 참 많을 것 같다. 그 때는 법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다 쓰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비닐봉지가 없는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쓰지 않고 있기를 바래본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시작이 제일 어렵다. 일단 시작하고 나면 이런 일상의 불편함들이 꽤나 견딜만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 불편함 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오늘의 이 글이 당신에게 아프리카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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