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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l 29. 2020

창의성에 대한 오해

‘열두 발자국’을 읽고(참고도서: 크리에이티브 커브, 앨런 가넷)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던 글에서 어떤 분이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었다. 정재승 교수는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이면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대중들에게 유명해졌다. 망설이며 못읽던 책을 추천받아, 바로 펼쳐 읽기 시작했다.


 ‘열두 발자국’의 책 내용은 생각보다 광범위했다. 이 책은 열두 번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 책제목도 열두 발자국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을 떠올리며 정한 제목이라고 하니, 이 분, 감성이 풍부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였다.


 앞의 여섯 발자국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내용들과 사례들을 곁들여 알려주었다. 그리고 뒤의 여섯 발자국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세상을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각 발자국마다 의미있는 메시지들이 있었지만, 나는 책을 읽고 ‘창의성’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는 ‘창의성에 대한 오해’를 주제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창의성에 대한 오해


첫번째 오해, 창의성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이며, 영감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창의성’이란 말을 들으면,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천재들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피카소 등등 세기에 걸쳐 한 획을 그은 예술가, 과학자, 음악가 등 말이다. 창의성이란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하늘의 별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내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선택 받은 타고난 사람들이 지니게 되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결정적 아이디어가 떠올라 엄청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수많은 세월에 걸쳐 노력하고 체득한 어느 특정 분야에 대한 기초 지식이었다.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바둑을 둘 때 7급인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쓸까요, 7단인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쓸까요?’ 나는 7단인 사람이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어 수에 대해 더 많이 계산할테니, 7단인 사람이 머리를 많이 쓸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바둑 7급인 사람이 오히려 바둑판에 바둑돌을 올릴 때 마다 머리에서 난리가 난다고 한다.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뇌가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이다. 반면, 바둑 7단인 사람은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는 별로 머리를 쓰지 않고 바둑을 둘 만큼 숙련되어 있다고 한다. 진짜 중요한 상황일때만 자신의 인지적 에너지를 확 모아서 사용하는 것이다.


 EBS 다큐멘터리 ‘창의성의 발견(2019)’ 편을 얼마전에 보았다. 창의성 분야의 세계적 석학 존 베어(John Baer) 교수가 칠판에 창의성에 대한 내용을 적으며 얘기해주던 장면에서 머리에 종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창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학, 철학, 역사 등 아무 분야에나 갖다 붙이면 되는게 아니었다. 창의성이란, 영역 특수적(domain-specific) 이라 했다. 한 분야에서 창의적이라고 다른 분야에서도 창의적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시를 쓰는 실험을 해보았다. 한 그룹은 일반적인 문학 수업을 한 후, 그리고 다른 그룹은 시에 대한 다양한 요소, 종류, 문법 등을 수업한 후 시를 쓰게하였다. 어떤 그룹이 더 창의적인 시를 썼을까? 바로 시에 대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시가 더 창의적이었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를 깊이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흔히들 모차르트를 천재적인 음악가라 부른다. 힘들이지 않고, 순수한 영감을 통해 수많은 훌륭한 곡들을 창작해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창의력에 관한 영감 이론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앨런 가넷의 ‘크리에이티브 커브’ 책에 따르면, 실제 모차르트는 매우 반복적이고, 고된 과정을 거쳐 오랜 시간을 작곡에 투자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그를 세 살 때부터 훈련 시켰고, 열한 살 때 처음으로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도 아버지의 강압에 못이겨 몇 해 동안 매일 집중적인 연습을 통해 탄생했다. 그의 진짜 ‘독창적인’ 협주곡은 열일곱살이 되었을 때 나왔다고 한다. 물론 남들에 비해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이미 14년째 치열한 연습을 통해 얻은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다시, ‘열두 발자국’으로 돌아와 보면, 정재승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많은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고 중요한 기술은 몸에 체화하면서 기본적인 것을 훈련을 통해 학습해야, 매우 중요한 순간에 인지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나는 흔히 말하는 천재들의 노력을 너무 작게 보고 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기본기를 쌓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기억해야겠다.


두번째 오해, 창의성은 교육이나 학습에 의해 증진될 수 없다?


 창의적인 생각을 할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신경과학자들이 실험참가자들의 뇌를 fMRI를 통해 찍은 결과,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짐을 알게 되었다. 바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창의성은 전전두엽 같은 가장 고등한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해야 만들어지는 능력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창의성 워크숍에서 사용한 훈련법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40대 여성이 비싼 가방을 들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다섯 살 남루한 소년이 그 가방을 잽싸게 낚아채 달아납니다. 과연 이들에게 3시간 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이야기를 만드는 과제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수업 받던 교실에서 과제를 하도록 하고, 다른 한 그룹은 교수님의 연구실로 데려갔다. 그 곳 책장에서 아무 책, 아무 페이지를 골라 무작위로 문장 하나를 고르게 했다. 또 다른 책에서 또 다른 문장 하나를 고르게 했다. 그래서 이 두 문장이 반드시 들어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첫번째 그룹에서는 무난하고, 평범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반면 두번째 그룹은 앞에서 고른 두 문장 사이를 메우기 위해 사용하지 않던 뇌 영역을 사용하여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뇌 영역을 활성화 시키면, 좀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성이 교육이나 학습에의해 증진될 수 있는 또다른 사례를 ‘크리에이티브 커브’에서 만났다. 조나단 하디스티(Jonathan Hardesty)라는 화가의 이야기다.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느 한 대학 메디컬 센터 기금모금 사무소의 조수로 일을 하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일을 해보려 했으나, 아무런 변화도 없는 무기력한 삶이었다. 그는 좀 더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기위해 새로운 직업을 찾기 시작했다. 지질학자, 조종사, 뮤지션 등등 다양한 직업에 기웃거렸으나 모두 그와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는 지쳐갔다. 그는 다시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집에서 일하면서 창의적인 일을 하는 분위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는 화가를 선택한다. 그가 마지막 그림을 그렸던 때가 여덟살 이였음에도 말이다.


 그 이후로 그는 매일 드로잉을 하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첫 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의 솔직한 반응을 알기위해 ‘ConceptArt’ 커뮤니티에 그림을 올렸다고 한다. ‘완전 신출내기의 여정: 그림과 스케치’라는 제목이었다. 놀라운 것은 2002년 9월 15일에 시작하여, 이후 13년 동안 매일같이 최신 그림을 업로드 했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놀라운 정도로 성장하였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그가 그저 매일 연습만 했을까?


 처음에는 실력이 부쩍부쩍 느는 것 같았지만, 그는 곧 벽에 부딪힌다. 그림이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아틀레 운동’이라는 훈련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사우스다코타라는, 그가 살던 곳에서 꽤 먼 곳의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아내의 동의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수입도 없이 화가로 살아야 하는 그의 삶은 고단하고, 혹독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제과점에서 일하고, 밤 9시까지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시간, 돈 모두 부족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는 매일 그림을 커뮤니티에 올리며 연습했다. 스웨덴의 에릭슨 교수는 ‘1만 시간의 법칙’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아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목적이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 발표하였다. 그는 이런 연구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목적이 있는 연습에 몰두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세상에 알렸다. 지금 그의 작품들은 만달러 이상의 가격에 팔릴 뿐 아니라, 그는 현재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작의 유용성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평생 창의적으로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틀에 박힌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창의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조나단 하디스티의 사례는 나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평범했던 그가 창의적인 화가로 성장해가는 13년의 여정은 감동적이었다. 천재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창의성이 훈련을 통해 길러질 수 있는 역량이라 생각하니, 희망의 빛줄기가 비춰지는 느낌이다.


세번째 오해, 지능이 높은 사람이 창의성이 더 높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어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머리가 좋다고 말하는 것, 즉 지능이 높다는 것과 창의성은 완전히 다른 기능이라고 한다.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창의성에 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이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IQ 110 이하의 피험자군에서는 IQ가 높을수록 창의성(‘토렌스 창의성지수’로 측정)도 높아지지만, IQ 110~120이 넘어가면 IQ와 창의성에는 상관관계가 줄어든다고 한다.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지능이 높다고 창의성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열두 발자국’과 비슷한 내용의 결과가 ‘크리에이티브 커브’에도 나온다.


 어떤 문제를 놓고 다양한 해결책을 찾는 확산적 사고를 창의성과 연관시켜, 잠재된 창의성을 평가한 내용이었다. 해결책의 양과 질을 모두 고려했을 때, IQ가 높을수록 잠재된 창의성이 높게 나왔을까? IQ의 수치는 다르지만, 앞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IQ가 일정한 역치를 넘어가면 잠재된 창의성은 누구나 같다는 결과를 얻었다. 아이디어의 질까지 고려한 연구에서 역치는 IQ 104였다. IQ 104만 넘으면 누구나 천재 IQ 영역에 속한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떠올릴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능이 낮아서 창의성도 낮다고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창의적이지 못하다 생각했던 나도, 오래도록 창의성을 키우기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교육도 창의성보다는 효율성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춰 있다. 빠르게 많은 양의 지식을 외우고, 그에 대한 정답을 찾는 교육말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남들과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했던가? 남과 다른 것이 두려워 오히려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행동을 하려하지는 않았던가? 또는 우리와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가진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나? 실제로 남과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이제는 지능을 높이는데 많은 시간을 쏟기 보다는, 창의성을 높이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성을 위해서는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포용할 수 있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불편하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나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면서 말이다. 정재승 교수도 우리 아이들이 창의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우리 애가 남과는 다른 경험을 쌓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현상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성장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 우리가 신경써야할 다섯가지를 알려준다. 운동, 수면, 독서, 여행, 그리고 사람만나기이다.


네번째 오해.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이다?


 회사에 다닐 때, 아이디어 회의를 시작하면 폭포수처럼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창의적이라 생각하며 감탄의 박수를 치고는 했었다.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 독창적 혁신가들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며, 그 대부분은 버려지지만 결국 위대한 아이디어는 그 중에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많이 시도하는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천재적 화가로 유명한 피카소는 4000점이 넘는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냉정하게 평가해 피카소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선정한 건 40 점 정도라고 한다. 다작 속에서 보석같은 작품들이 꽃을 피운 것이다. 이렇듯 보통 우리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들이 창의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많이 내 놓는 확산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좋은 결과물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브레인스토밍의 효과를 조사한 논문이 여러 편 있는데, 생각보다 질 좋은 아이디어가 안 나온 결과도 여럿 있다고 한다. 많은 아이디어가 꼭 좋은 성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확산적 사고보다 나온 아이디어 중에서 의미있는 것만 추려내 현실에 맞게 바꾸는 과정, 즉 수렴적 사고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처음의 창의성 연구는 확산적 사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디어의 양 뿐만 아니라 질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3분 안에 ‘동그라미가 들어간 물건을 최대한 많이 그려보라’, 혹은 30초 안에 ‘헤어드라이어를 원래의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보라.’ 하는 등의 실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양의 아이디어보다 의미 있는 한두가지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집단지성에 관한 연구에서도 ‘진짜 의미 있는 성취는 한 사람이 문제에 깊이 몰입하는 걸 보장할 때 나오며,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창의적인 발상은 온전히 개인의 몰입을 통해서 나오며, 다른 사람들은 수많은 지적과 비판을 통해 그저 창의적인 발상을 개선해주는 정도의 기여만 한다는 것이다. 수전 케인의 저서 <콰이어트>도 집단지성보다 내성적인 사람이 혼자 몰입하여 얻어내는 발상의 힘을 더 강조한 사례라고 한다.


 위의 내용은 창의성에 대한 기존 나의 편견 하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확산적 사고, 즉 다양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만이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현실에 맞게 바꾸는 수렴적 사고도 중요하며, 한 문제에 깊이 몰입할 때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의견을 배우고, 생각지 못했던 사고를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순발력이 약해 순식간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문제를 깊이 생각할 시간을 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섯번째 오해, 창의적인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일을 잘 미룬다’는 것이라 한다. 갑자기 고개가 갸우뚱해 졌다.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를 추진력 있게 내고, 또 바로바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혁신을 이루기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위험을 잘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최근 바로 실행하는 사람보다, 이런저런 상황을 잘 생각해본 후 실행하는 사람이 좋은 성과를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디어는 처음 떠올렸다고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나누고,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으며 성과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조급하지 않은 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창의적 성과물이 나오고 사회적 성취를 이룰 확률도 높다고 한다.


 그래서 위의 연구결과는 위험을 무릅쓰고 첫번째로 실행하는 ‘퍼스트 펭귄’이 되려하지 말고, 좀 더 시간을 끌며 남들먼저 가라고 하는 ‘캐나디안 레밍’이 되라고 주장한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펭귄이 날이 풀려 바다에 들어갈 때, 모두들 빙하 끝에서 서성인다고 한다. 바다에 들어가면 물개에 잡아먹힐 위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 때 과감히 뛰어드는 퍼스트 펭귄은 광활한 바다에서 마음껏 물고기를 잡아먹는 보상을 얻거나, 물개의 희생양이 된다. 반면, 레밍은 절벽에서 한쪽으로 너무 몰려가다 끝에서부터 떨어져 죽게된다. 이 때, 절벽이 있는지 모르니 서로 먼저 가라고 하면서 살아남는다고 한다. 과감한 퍼스트 펭귄보다는 소심해 보이는 캐나디안 레밍이 되라는 연구 결과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때는 도전 정신과 함께 신중함도 필요한 듯 하다. 원시적인 우리의 뇌는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회피적 성향과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려는 보상적 욕구를 만들어낸다. 의사결정을 할 때, 이 두 가지 판단에만 머물러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면 원숭이와 같은 원시적인 의사판단을 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위험을 잘 관리하고, 지금 손해를 보거나 어려워도 장기적인 관점으로 일을 바라보면 더 큰 이익 혹은 보상을 얻을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궁금증 하나를 더 생각해 보았다. 미국에서는 성공하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잘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잘 안나올까? 앞의 이야기를 보면, 신중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은 성공을 이루어낼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혁신에서 도전 정신을 빼먹을 수는 없다. ‘도전하되, 신중하라.’가 위 연구의 메세지 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 도전하는 퍼스트 펭귄이 되기 보다는 재빠른 추종자가 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이 다른 걸까?


 그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위험을 무릅쓰는 성향 때문일까?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타트업을 시도했다 실패해본 경험이 좋은 경력으로 인정되고, 오히려 생존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도 있다. 그들이 겪는 실패는 삶에서 아주 큰 위험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실패는 큰 위험으로 여겨진다. 도전을 할 때 실패를 하더라도, 그것이 위험이라 생각되지 않을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하며


 창의성에 대한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서 대부분의 연구가 창의성과 성공 혹은 성취에 대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 또는 성취를 위해서만 창의성이 필요할까? 꼭 성공하지 않아도, 무엇인가를 이루지 않더라도 창의성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성을 육성해야 한다고해서 이에 대한 시험을 보고, 평가를 하고, 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진정한 창의성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깨달았다. 창의성은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게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성을 키워준다.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며, 세상과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잘못해도 괜찮다며 다시 시도해보라고 격려해준다. 꼭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창의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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