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3년 6개월 간 배웠던 것
퇴근 길에 허기져 들른 회사 근처 김밥집. 별 생각 없이 치즈김밥에 라면을 주문하고 페이스북을 보는데.
나타났다. 치즈김밥이.
말그대로 #치즈 + #김밥인 셈이다. 별 생각 없이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문득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치 즈 김 밥. 한 단어의 절반을 차지하는 치즈의 비중이 참으로 작은, 명목상의 치즈김밥에 익숙해졌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말이다.
10년 전 군대 훈련소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짬밥을 먹는 개를 보며, 인간의 허무한 인생사를 논한 기록에 대해 "철학적인 건 천성이다"라고 웃고 갔던 모 선배가 데자뷔처럼 떠오르는 건 착각이겠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신사동 고개를 넘고,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시내버스를 타고, 빨간 시외버스를 기다리고, 빨간 시외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지나가면서 문득 지난 3년 6개월간의 시간을 되돌려보게 된다.
누구를 위한 글을 썼나.
이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독자'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좋은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볼까. 아니었다. 나의 글은 인터뷰이, 독자를 위한 게 아니었던 것만 같다.
무얼 위해서였을까 어쩌면 '기자', '괜찮은 기자'라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글들은 아니었을까. 라고 돌아본다.
그래서 타이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던 것 같다. 나중에 그 이름을 다시 갖게 되더라도,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비인사이드라는 미디어를 창간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었다.
주위에서 묻는다.
어차피 똑같은 일 할 건데 왜 기자를 그만뒀느냐
라고.
나는 대답한다. 독자가 있는 글을 쓰겠다고. 인터뷰라면 인터뷰이가 내 첫번째 독자였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들을 만날 때 더 이상 돈 얘기, 비즈니스 모델을 천편일률 적으로 말은 뒤, 치즈 반 조각을 얹는 게 아니라 그가 하는 '일'을 풍성히 담아내겠다고.
오늘 만났던 치즈김밥처럼.
가장 고된 노동은 인터뷰가 끝난 후부터였다. 주고받은 허다한 말의 더미는 집채만 했지만, 내게는 티스푼 하나만이 도구로 주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 작은 숟가락으로 좁쌀처럼 세밀하기도 하고 포말처럼 막연하기도 한 말들을 정신없이 주워 담았다. 몇 번의 밤을 하얗게 새워도 자루는 다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정리한 내용을 원고지 80매 안팎의 기사로 대폭 줄여서 작성하는 일은 또다른 고행이었다. - 이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