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을 위한, 마케팅을 위한...우리에겐 무엇이 남았나
많은 사람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대표적 이커머스 업체로 '아마존닷컴'을 떠올립니다.
아마존닷컴은 고객이 구입한 상품 정보를 분석해 구매 예상 상품을 추천하고, 개인화된 쿠폰을 제공합니다. 또한, 매출의 약 35%가 빅데이터 기반 추천 시스템을 통해 발생하고 있으며, 매년 이익의 10%를 추천 시스템 성능 향상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리 고객의 구매를 예측해 사전 배송을 시도하는 Amazon Yesterday Shipping 특허까지 취득했죠.
라고 정리된 자료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 혹은 알리바바의 영향 때문인지 국내 이커머스에서 빅데이터는 시쳇말로 '먹히는' 키워드가 됐습니다. 이를 테면 최근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던 쿠팡 관련 기사에서도 '빅데이터를 통한 주문 예측'이 강조됐죠.
쿠팡이 만 하루 내에 배송할 수 있는 것은 고객이 주문하기 전에 자체 물류센터에 미리 물품을 사놓는 '직매입' 방식에 있다. 업계의 기존 관행은 별도의 택배업체가 상품 판매자 창고에 가서 물건을 받아 택배업체의 물류센터·거점지를 거쳐 고객에게 가져다주는 식이었다. 쿠팡은 자체 물류센터에서 캠프를 거쳐 고객에게 바로 향한다. 기저귀·분유·생수 등 빠른 배송이 중요한 일부 생필품은 캠프에 포장 완료된 물품을 미리 쌓아둬 소요 시간을 더 단축한다. 허 팀장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량별로 주문을 예측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 쿠팡 '2시간내 배달' 비결 보니… 빅데이터로 주문 예측, 미리 포장해둬
2년 반 전만 하더라도 국내 각 기업에서 빅데이터 기술을 도입한 맞춤형 마케팅을 하겠다는 슬로건을 자주 내세웠습니다. 구글 뉴스 카테고리에서 2013년 1월부터 5월까지 '빅데이터', '마케팅'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현대카드, 신한카드, BC카드, 인터파크(터치하면 관련 기사로 연결~)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기업의 마케팅 사례에 빅데이터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빅데이터를 도입해 개인화된 마케팅 경험을 선보인다'는 내용을 강조했죠. 거칠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빅데이터로 돈 많이 벌겠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2013년 당시 지디넷코리아의 '[기자수첩]빅데이터, 마법보다 현실을 볼 때다'라는 기사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확한 지적을 했습니다.
빅데이터 프로젝트는 투자대비수익(ROI) 검토가 중요하다. 성과를 내기 위한게 아니라 플랫폼을 갖추는 작업이므로 적은 투자로 시작해, 쉽고 빠르게 확장하고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예언이나 다름 없는 것 같습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저 위~의 기업들에서 어떠한 곳도 빅데이터에 대한 성과를 말하고 있지 않죠(라고 쓰고 못한다고 읽는..). 심지어 모 카드사의 수장은 '빅데이터 무용론'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일이 발생할까요.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 같은 웹 기반의 검색(포털) 업체는 수많은 이용자를 ‘온라인’이란 공간으로 모았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용자가 폭증하게 되겠죠. 폭증하는 즉시 서비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서버가 죽든, 스토리지가 마비되든, 서비스가 운영되기 힘든 상황까지 번지게 되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 서비스업체의 선택은 많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유지하는 거죠. 거기다가 이용자를 파악하기 좀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겁니다. - Tech First, Service First?
Tech First, Service First?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이커머스에 빅데이터 플랫폼이 필요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됩니다.
아마존이 빅데이터 인프라를 도입한 목적이 애초부터 고객을 파악해서 돈을 벌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마도. 내부 IT팀이 여유롭게 '우리 고객이 어떤지 파악해볼까'라는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겠죠(그런 IT팀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하루살이처럼 서버 부하를 방지하는 데에 온 신경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드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보통 규모의 서버나 플랫폼으로는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그러다보니 분산컴퓨팅, 또는 클라우드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요. 트래픽 부하를 막기 위한 인프라가 글로벌로 퍼져나가니 또 다른 플랫폼이 되기도 하고요(쌍으로 된 데이터센터를 상징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리전이 세계 곳곳에 설립된 이후, AWS 위에 올라타서 콘텐츠를 판매하는 넷플릭스가 리전이 설립된 나라마다 진출을 선언한다는 후문도 들립니다).
대량의 데이터를 모았으니 분석하고, 추가 서비스에 도입하는 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마케팅을 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도입했다기보다는, 트래픽 규모에 맞춰 린(Lean)하게 서비스를 발전시켰을 가능성이 높죠.
더 중요한 건 빅데이터가 생각만큼 마케팅 효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마존닷컴이 지금처럼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수 있던 주 요인은 빅데이터 분석보다는 원클릭으로 결제되는 간편결제 시스템, 블랙프라이데이를 통한 파격 할인 등이 아닐까요.
보통 국내 이커머스에서도 2000개 정도 페이지를 만든 뒤 이를 고객별로 분류해 나눠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은 갖고 있다고 합니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을 구축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기법인데요. 마케팅만 이야기한다면 이들이 빅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할 이유는 없어보입니다. 차라리 쿠팡처럼 로켓배송을 하거나, 티몬처럼 신선식품을 배송하든가, 다른 나라로 제품을 역직구(수출)하는 등, 마케팅적 대안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이겠죠.
저 스스로도 빅데이터 영역을 취재한 지 3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2015년 12월에도 고민은 계속됩니다. 서비스의 측면을 깊이 고민한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의 사례를 보면 빅데이터 인프라가 필수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리나라에서 이 단어는 여전히 마케팅 슬로건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