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를 잘못 꿴 건 언제부터일까
Distruptive Innovation. 파괴적 혁신이란 키워드가 최근 몇년 동안 스타트업계에 유행처럼 번져왔다. 스타트업만의 새로운 서비스가 시장의 질서를 뒤바꿀 정도의 파장을 준다는 함의에서 비롯된 단어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래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슬로건으로 내세운 키워드 역시 ‘파괴적 혁신’이다. 그 중심은 모바일이다.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한 각종 스타트업들이 혜성같이 등장했고,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1조원에 다다르는 거액의 투자를 유치했다.
허나, 어떤 서비스는 연속적인 투자 유치를 통해 몸집을 키웠으나, 개중에는 큰 금액의 투자가 됐음에도 문을 닫는 곳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하면 여전히 긍정적인 표현들로 포장된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선 응원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시장을 바꾸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열정과 도전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우리의 생태계는 얼마나 파괴적으로 혁신됐는가.
편리해진 건 분명하다. O2O부터 보자. 모바일로 수많은 배달 음식을 즐길 수 있으며, 배달이 안되는 음식도 주문할 수 있다. 신선 식품이 문밖에 배송된다. 심지어 청소, 심부름, 펫도우미도 터치 한 두번이면 집으로 방문하는 세상이 왔다.
또한, 공인인증서 없이 돈을 송금하거나 제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친절하고 잘생긴 배송 기사가 제품과 함께 따뜻한 마음도 쪽지에 남겨놓아 감동를 배가하는 시대다.
기존 대기업, 금융권에서도 이러한 스타트업에 대해 위협을 느꼈는지 각종 유사한 후속 서비스들을 내놓는다. 혹자는 스타트업과 배송 전쟁을 벌였으며, 카피캣 논란으로 지탄을 받아 출시 직후 폐쇄를 닫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다 좋다. 그래서 어떤 혁신을 만들었는데?
본론이다. 편리한 것 좋다. 그런데 기존 시장에서 어떤 부분을 파괴적으로 혁신했는지 찾기란 쉽지 않다.
O2O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정작 이들 서비스의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소호상점들의 말을 들으면 기가 막힐 때가 종종 있다. 그 중 한 사례를 공개하면 아래와 같다.
“저희가 족발을 2만원에 판매하는데요, 가끔 스타트업한다면서 오는 영업사원들이 법인카드를 들이밀면서 ‘2만원짜리 족발을 1만8천원에 팔아달라’고 요구해요. 자기네 서비스를 통하면 우리 가게가 더 많이 알려진다나?”
또한, 모 O2O앱을 통해 매물을 예약했는데 허위였다는 컴플레인은 종종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도 보일 정도다.
이보다 앞선 3~4년 전, 소셜커머스 반값 로컬 딜 때도 논란이 되던 부분이다. 소셜커머스에서 ‘반값’으로 쿠폰을 사서 지역 상점에 갔는데, 주문한 음식이 형편 없어서 원성을 샀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소비자 원성이 가장 큰 분야는 광고와는 달리 부실한 서비스나 제품이다. 수제 버거를 반값에 먹을 수 있는 쿠폰을 샀지만 막상 식당에 가 보면 다른 음식을 제공하는 식이다. 직거래 한우 고기라는 말을 믿고 쿠폰을 구입했지만 해당 식당은 예약도 어렵고, 막상 고기의 질도 나쁜 사례도 마찬가지 경우다. — 싼 게 비지떡? ‘반값 할인쿠폰’ 피해백태(MTN)
소셜 때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광고판을 쥐고 있으니 일정 수수료를 자신들에게 내라는 수익구조를 들이민 셈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편리하나 파트너사에는 브랜드 노출 외에는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 심지어 이들을 착취하는 모양새다. 제조업 시대의 전형적인 외주/하청 구조를 보는 듯 하다.
금융 쪽은 더욱 어렵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외화 송금, P2P 송금 등 각종 서비스를 가격 경쟁력 있게 만들 수 있음에도 규제의 벽에 막힌 서비스들도 많다. 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 펌뱅킹망, 금융공동망을 이용해 서비스를 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용자들이 몰릴 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가 된다는 것이다.
MCN(Multi Channel Network)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고 여전히 인기를 구사하고 있으나, 주 수익원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진 않겠지만 대세로 떠오른 업체들 중 이러한 곳들이 적지 않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미국이나 중국은 이와 다른 양상이다.
모든 서비스가 다 혁신적이진 않겠지만 거칠게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공유 경제’라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는 논란적이나)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했다. 모든 차 소유주를 수익을 낼 수 있는 운전기사로, 집 소유주를 숙박업자로 겸업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냈다.
중국은 배달(代送) 문화가 없고, 포장(打包) 문화만 있던 기존 상점들에 배달이라는 새로운 수익 구조를 열어준 어러머나 메이퇀 같은 서비스들이 시장을 뒤바꿔놨다. 우리나라 MCN과 언뜻 유사한 것처럼 보이는 왕홍들은 이커머스를 통해 수익을 내며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공통점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혹은 이를 둘러싼 이해당사자(파트너사)들에게 새로운 수익을 주면서 시장 생태계 자체를 바꿨다는 것이다.
미국은 참신한 서비스를 갖춘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이를 베끼기보다는 인수하는 선순환적 생태계가 자리 잡는 문화가 구축됐으며, 중국은 파트너사와 함께 성장하는 것을 비전으로 내세운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기업이 주류로 자리잡은 덕분에 혁신적인 서비스들이 등장해왔다.
물론, 이런 몇가지 사례만으로 미국과 중국이 한국보다 우수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분명히 중국이나 미국 스타트업계의 내부에도 거품으로 인한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파트너를 성장시키며 생태계를 바꾸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 아이러니란 생각이 든다. 어디에선가(실리콘밸리?) 본듯 한 서비스들이 한국만의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억지로 끼워져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제는 문닫고 훈훈하게 잘했다는 미담이나 격려 대신, 치열하게 시장을 바꾸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와야할 때일 것이다. 약 2년 전 핀테크 관련 좌담회를 열었을 때 모 교수께서 해준 말이 하나 있는데, 이게 실마리가 돼주지 않을까.
“편리함만으로는 안된다. 고객-서비스-제휴사 간에 새로운 거래를 일으켜주는 게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