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게 패배감이구나. 처음으로 맞닥드린 실패.

Part 1. 자업자득, 내 20대는 남들과 다르게 갈 수 밖에 없었다

by 크루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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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뉴스에서 보는 지잡대를 분명 알고 계실거라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그 지잡대에 갔다. 대학 입학 후, 패배감에 쩔어지냈다.

자업자득인걸 알고 있으면서도 미칠듯한 패배감에 죽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는 항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인간관계에 능수능란 하던 내가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참고로 필자는 공부만 안하고 순수하게 놀았다. 그냥 마이너 감성의 음악이 좋았고 강원도에서는 볼 수 없는 세련된 잡지 속의 세계 그리고 아기자기한 일본감성에 빠져 지냈던 사람이였다. 고등학교 때 있었던 양아치 친구들이랑은 거리가 멀었던 그냥 나의 세계가 강한 사람이였다.>


그런데 입학 후 술이며 수준떨어지는 행동과 오고가는 단어들. 그들의 눈에도 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겠지만 난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자발적 아싸. 세상에 나의 삶에 없었던 '아싸'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어느 물에 가도 자기 짝은 있다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학교에 온 몇몇 친구들이 있었다. 외고를 다니다가 수능 대실패를 맛보고 울며 겨자먹기로 이곳에 온 A, 그냥 한없이 착하고 소심했던 B, 매사가 너무 웃기고 재밌었던 C. 이런 네사람이 모여서 함께 학교생활을 버티기로 결심했다.


학교생활은 역시 녹록치 않았다.

인생에 배워본적도 없는 중국어를 그저 부모님 등살에 떠밀려 선택하게 되었다. 앞으로 중국이 뜰거기 때문에 꼭 이거를 공부해야한다고 고집하셨다. 20살의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어린 탓에 매사 멍~~했다. 처음에 싫다고 반항도 했지만 며칠 못가 알겠다 하고 중국어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나는 항상 ABC친구들과 네명이서 똘똘 뭉쳐다녔다.

어쩌면 서로가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이 친해졌다. 조별과제도 시험도 꼭 필요한 소식은 어떻게서든 건너건너 들어 알려주곤했다. 서로가 어미새가 되어 돌아가면서 먹이를 구해오는 꼴이였다. 가끔 네명이서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나중에야 들었을 때는 조금 서러워질 때도 있었다. 뭐 자발적 아싸를 선택 했기 때문에 돌아오는 결과였다. 하지만 뭔가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그 씁쓸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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