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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월 Jun 07. 2019

예비 신랑 신부에게

결혼과 관계 맺음

지난주 조카딸 결혼식이 있었다. 보름 전 청첩장을 들고 예비 신랑 신부가 인사를 왔다. 인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곧 가정을 꾸릴 젊은 연인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했다.

다들 좋아서 하는 결혼이지만 모두가 처음 다짐처럼 끝까지 해로(偕老)하지는 못한다. 이혼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이유 때문에 헤어질까? 다들 사연이 다르니 일괄해서 말할 수야 없다. 하지만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주변 부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들 대부분 막상 결혼은 했지만 결혼과 함께 다가올 어떤 변화에 대해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결혼한 경우가 많다.

그 변화는 다름 아니라 인간관계 범위의 폭발적인 팽창이다. 모든 젊은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에 관계망의 빅뱅을 경험한다. 대부분 사회인이 되기 전까지 인간관계는 가족과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 관계망이 좁으니 관계에서 요구받는 역할의 종류도 단순하다. 그나마 그것도 이런저런 이유로 면제되기 일쑤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학업을 핑계로 가족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요구되는 역할로부터 열외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내 주변에도 조부모 상(喪)이 있어도 수험생이란 이유로 장례식에 오지 않는 손주 손녀들을 자주 본다.

그렇게 성장한 젊은이들이 어느 날 사회인이 되는 순간부터 상호 의무를 수반하는 복잡한 관계망 속에 들어간다.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아랫사람이 되고 누군가의 동료와 상사가 된다. 결혼을 하게 되면 그 관계의 범위는 더욱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갑자기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사위, 며느리가 된다. 그리고 그 역할마다 새로운 이름이 부여된다. ㅇㅇ선배, ㅇㅇ후배, ㅇㅇ남편, ㅇㅇ사위. 이런 이름들은 인간관계 속에서 쓰이는 호칭이다. 이와 같은 것을 관계명이라 한다. 관계명은 일정한 역할 수행에 대한 의무와 기대를 담고 있다. 기대된 역할은 이제 더 이상 다른 핑계로 회피할 수 없다.

많은 젊은이들이 필연적으로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게 될 인간관계에 대해 미처 마음의 준비를 못한 채 사회에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고서도 누군가의 배우자로서 새로운 책임과 역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보다 기존에 각자 살던 생활 방식을 고집하며 살기로 했다는 젊은 부부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가정을 꾸리고도 어린 시절부터의 습관과 감정에만 충실할 뿐 확장된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와 노력이 부족한 경우이다. 결혼한 가정이라기보다는 동거인 수준의 결합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불편해져도 관계가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런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나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도 무조건 나에게 요구할 수 있는 어떤 존재를 만난다는 건 자기중심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다. 간혹 젊은 부부가 갓난아기를 곁에 두고 게임 중독에 빠져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뉴스는 대부분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이들에게 결혼은 당연히 고통이고 질곡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이 너무 입시 위주로 자녀를 키운 부모들의 책임이다. 자녀들이 청소년 시기부터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요구되는 올바른 역할 경험을 쌓아 왔다면 훨씬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찾아온 예비부부에게 이제 그들 앞에 펼쳐질 바다처럼 넓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가 거친 바다에서 선장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얼마나 엄중한지 잘 알듯이, 매 관계마다 감당해야 할 마땅한 역할과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성인에게 있어 행복은 더 이상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성인들의 세상에서 행복은 관계가 요구하는 역할과 책임에 성실할 때 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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