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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월 Jul 23. 2019

밥하지 않는 집

요리와 창의성

최근 모 식품 회사 TV 광고 중에 ‘어느새 밥하지 않는 집이 늘어갑니다’라는 광고가 있다. 집에서 밥하는 대신 햇반을 사서 먹자는 이야기다. 광고를 보며 궁금했다. 집에서 밥하는 일마저 내려놓고 그 시간에 무엇을 하려는 걸까? 그림을 그릴까? 노래를 부를까? 독서를 할까?

난 서양에서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평소 퇴근 후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집을 관리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부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개발한다. 마당을 가꾸며 자연과 접하고 집안 관리를 통해 육체노동의 기술을 배운다. 식물과 곤충에 대해 생물 수업 시간이 아닌 화단에서 물을 주며 알게 되고, 목공에 대해 교실이 아니라 집에서 담장을 수리하며 배우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중 어떤 일로 자신의 직업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파트 생활은 그렇지 않다. 획일적인 구조의 아파트에선 사람들의 집안 일상이 매우 단조롭다. 우리 집 아이들도 이공계를 전공하고 성인이 다 되었지만 아직까지 집에서 가구를 만들고 수리하거나, 묘목을 심고 분갈이해보거나, 도배나 페인트칠을 해본 경험이 없다. 아파트 생활에선 그럴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여유 시간이 있어도 TV나 게임, 책을 보는 일 외에 특별히 몸을 쓸 일이 없다. 신체 활동을 위해서는 일부러 돈을 내고 가까운 피트니스 센타라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아파트 문화는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재능 개발과 생산적 가치 실현의 기회를 별로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사가 자신의 실생활과 동떨어져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다들 모이기만 하면 정치 이야기로 얼굴을 붉히며 거품을 무는 것도 이런 이유 같다.

나는 청주에서 산학 협력 교수로 있을 때 혼자 내려가 매일 밥을 하고 틈틈이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 보니 조리라는 것이 무엇보다도 친근한 우리의 일상 활동이면서도 음악, 미술 이상으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임을 깨달았다. 그때 느낀 바가 커서 동료 교수들에게 교양 필수 과목으로 조리 과목을 개설하자고 제안했었다. 민주 시민 의식 중에서 으뜸인 조화와 균형 정신을 배우는데 음식을 만드는 일만 한 것이 없다. 그래서 난 아들들에게 시간이 되면 요리 학원에 가서 제대로 조리를 배워보라고 권하고 있다. 우리 아파트 생활 중에서 이런 취사 활동마저 놓아 버린다면 아마도 일반인의 일상생활에서 창의성이 개발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은 기업이나 개인이나 효율성과 편리성 추구라는 자본주의 생산 원칙만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면서 일상에서 행복을 구하는 능력을 잃어 가고 있다. 대신 행복을 고급 맛집, 명품 구매, 비싼 레저 활동 등 외부의 소비 활동에서 찾으려고만 한다. 대체로 소득 수준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행복하게 사는 것도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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