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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월 Jun 25. 2019

노인다운 노인을 위해

바람직한 노인 정체성

잠시 지방에 있다 올라왔는데도 서울에서 새삼 불편하게 다가오는 풍경이 있다. 그중 가장 거슬리는 풍경은 낮 시간 전철 안에서 만나는 수많은 노인들의 화난 표정이다. 왜 그렇게 다들 하나같이 성난 표정인지. 표정에 있어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불만스러운 표정의 원인이 단지 경제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보기에 50~60대에 은퇴한 한국 남자들의 가장 큰 괴로움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정체성이란 것이 평소 깊은 성찰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랜 기간 반복된 일상과 습관들이 벽돌처럼 모여 나의 정체성을 이룬다. 아침 8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일상, 매일매일 처리하는 일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식사, 회사가 제공하는 자동차와 골프 회원권 등등. 수 십 년간 익숙했던 그런 것들이 퇴직과 함께 어느 한순간 사라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빈자리를 메워줄 또 다른 건강한 정체성을 얻기 전까지 퇴직자 누구나 상실감에 시달린다.


전철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성난 노인들도 가정이나 사회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잃어버린 정체성 때문에 좌절하고 분노한 사람들이다. 아침 일찍 파고다 공원에 모이는 남자 노인들도 단지 돈이 없어서 가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던 과거의 습관을 유지해야 심리적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젊은 시절부터의 일상이 늙어서도 비슷하게 유지되는 여성들의 경우 그다지 큰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 않는다. 파고다 공원에 여성 노인들이 적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여자들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긴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럼 직장을 은퇴하고서도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어떤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할까? 맹자는 2,500년 전에 이미 이에 대해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을 설파했다. 젊은 시절 항산을 통해 항심을 얻었듯이,  노후의 새로운 정체성도 무엇인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과 역할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노화를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수용하는 노인다운 노인의 모습이었으면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 노인의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공론이 취약하다. 대신 그 자리엔 은퇴한 남자들을 비하하는 삼식이 같은 역겨운 이야기나 오가고 있다.  

젊은이는 젊은이 다울 때 멋지다. 아버지가 아버지다울 때, 엄마는 엄마 다울 때 가정이 화목하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울 때 아름답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의미에서 노인이 노인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용어와 다르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란 말은 보통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인다. 누구를 정말 노인 같다고 하면 그건 바람직한 의미는 아니다. 건강이 나쁜 노약자, 정보에 둔하고 시대 흐름에서 못 따라오는 사람, 사리 분별이 어두운 사람, 아무데서나 경우 없이 무례한 사람, 젊은 세대에 짐만 되는 사람 등등의 이미지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요즘엔 태극기든 노인들 이미지까지 오버랩되면서 노인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커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좋은 의미를 표현하려면 노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시니어, 어르신 등 다른 용어를 빌어다 이상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난 노인이야’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서 ‘난 어르신이야’라고 말해야 한다면 서로 어색하기만 하다.

대중 매체에서 다루는 멋진 노인의 모습도 대부분 생경하다. 나이 든 사람 누구나 공감하고 지향할 수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65세 나이에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노인, 70세 나이에 마라톤에 도전하는 노인, 80세 나이에 스카이다이빙을 즐기는 노인 등등. 대체로 노인이 노인답지 않고 젊은이 같을 때 멋지다고 칭송한다. 생리적 노화를 자연스럽게 바라보지 못하고 극복해야 할 나쁜 것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늙어가지만 거기에 어울리는 편안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노인 상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강인한 젊은이들에게나 어울리는 놀이를 즐기는 노인은 우리 사회가 우선 권장해야 할 모델이라기보다는 기형적이고 왜곡된 노인관을 나타낼 뿐이다. 늙음에 대해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는 청장년 세대 권력의 부정적 인식이 엿보인다.

이제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운동을 통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여성상을 정립해 가듯 노인에 대해서도 그런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노인 상에 대한 사회적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나이가 들어서도 어떤 방향으로 계속 노력 성장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직장을 은퇴한 남자들에게 유익하다. 앞으로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도 많은 힘이 될 것이다. 이는 급속히 고령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가 노인 복지와 함께 다루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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