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번역, 그거 이제 사양산업 아니야?

인공지능과 우리의 미래에 관한 짧은 고찰

by 한끗


요즘 어딜 가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화 주제가 있다. AI. 일상에서 ChatGPT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지부터 시작해 회사에서 쓰는 이메일, 보고서에도 ChatGPT를 사용하는 얘기까지, 듣다 보면 활용 사례는 정말 다양하다. 나는 금융권의 한 통번역사로 재직 중이다. 즉, 이런 AI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명절날 취업은 언제 할 거니, 결혼은 언제… 아기는… 등등 이제는 메뉴판으로까지 나온 명절 잔소리 폭격을 맞을 준비를 하는 취준생, 미혼 청년의 위치가 된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근데, 통번역도 나중에 다 AI로 대체되는 거 아닐까요? 요즘 ChatGPT 번역 너무 잘하던데요. 요즘엔 영어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 올 것이 왔다. 사실 GPT의 번역 능력에는 십분 공감하는 터라, 이제는 딱히 반박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요” 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 자동으로 대화는 종료된다. 예전에는 AI 도입 이후 통번역사의 수요가 오히려 더 늘었다는 기사를 들먹이며 반박도 하고 나름 진지한 토론에 임하곤 했는데, 이제는 무의미한 소모전에 괜히 에너지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대화를 끝내는 편을 택한다.


같은 회사에 재직 중인 다른 통번역사 선생님은 벌써 업계 11년 차다. 점심식사 중에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11년 차 선생님이 통번역 대학원을 들어갔을 때 한창 통번역 붐이 일었고, 선생님은 이때가 소위 말해 통역업계 “막차”구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소 놀랐던 이유는 2년 차인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원 들어가고 나서 반년 뒤 ChatGPT가 세상에 나왔고, 통대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쓰던 것이 이제는 안 쓰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11년 차 선생님은 본인이 마지막 세대라 생각했지만, 나를 비롯한 나의 동기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나는 나를 마지막 세대로 생각하고 있지만, 여전히 입시설명회나 학원 등록원생수를 보면 피크 때만큼은 아니어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업계가 완전히 사양산업이 되기까지 족히 10년은 훨씬 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통번역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니라 본인들의 열정과 열망이 앞서는 선택을 해서 그런 것인지, 혹은 둘 다인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답이다.




인공지능은 정말 못하는 게 없다. 번역도 잘해주고, 세금신고 처리할 때 어떻게 해야 비용 효율적인지 알려주고, 코드도 짜주고, 고양이도 그려준다! 개인적으로는 몇 달 전 금융 관련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할 때, 인강 선생님보다도 GPT의 설명에 더 많이 의지했다. AI가 처리해 준 위의 작업들이 이 작업을 직무로 가진 사람들 전부를 대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사양산업은 존재하는 모든 산업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 정말 소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확률로 살아남게 되는 산업을, 그것도 그런 게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어떻게 잘 골라서 미래의 먹거리로서 확보하고 성공할 것인지, 아니면 AI와는 무관하게 자신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원하는 걸 한 번쯤 시도해 보는 삶을 살아볼 것인지, 무얼 택하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답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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