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처음은 어려워요
사람이 언제 외국어를 공부하게 되는지 아는가?
심장 깊숙이 잔소리가 박혔을 때? 아니.
외국어 공부에 쓰는 돈만 빠져나가고 실력은 그대로일 때? 아니.
쇼츠에 외국어 영상이 미친 듯이 뜰 때? 아니지.
그건 바로 최애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질 때다.
그렇다. 나는 최애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자막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귀로 직접 알아듣고 싶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외국어 학습의 원동력은 “애정”에 기반한다. 최근에 시작한 일본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귀멸의 칼날 보고 탄지로와 기유에게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 그 이전 리바이와 하야카와 아키가 있었으나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특히 기유는 너무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남자상 그 자체다. 캐릭터들 이름 적어 놓고 나니, 대 메이저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에, 여자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캐릭터이기도 해서 머쓱하다. 하지만 내 취향은 결코 심연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거… 다들 알지 않는가.
어쨌든 최근 깊어진 애정을 바탕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원하는 수준은 적당히 회화할 줄 알고, 여행 가서 간판과 메뉴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인 JLPT N3를 목표로 잡았다. 통역은 영어 하나로 충분하다. 아직까지는.
아무튼 원하는 수준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고, 영어와 비교했을 때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 특정 어휘 등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솔직히 그렇게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본업이 통역사인데 기초 수준 일본어 정도는~ 쉽게 봤던 것 같다. 히라가나 외우는 게 왜 이렇게 안 되는지! 아직도 고전 중이다. 그리고, 외국어로 밥 벌어먹고 살던 수준에서 아예 초심자의 마음으로 다른 외국어를 배우게 되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어는 하면 돼요” 자주 하던 말이다. 주변 친구들은, 회사에서 무슨 영문 계약서가 왔는데 어떻게 읽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라든지, 출장이나 회의 가서 영어로 편하게 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등등 방법을 묻곤 한다. 물론 나에게도 영어 학습 방법이 있긴 하다. 곧잘 내 방법들을 추천해 주면서 늘 내 결론은, 계속 노출시키고 계속하면 늘어! 였다.
그러나 지금 일본어를 배우면서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구나…”를 처음으로 실감 중이다. 단어? 모르겠으면 외워. 정리해. 물론 맞는 말이고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특히나 초급자에겐 그 단어 하나 외우는 것조차도 얼마나 큰 노력이 드는지, 히라가나 깜지를 써봐도 다 애벌레같이 똑같이 생긴 것 같음을 경험하고 나니 이해가 된다. 조선시대에 듣고 말할 줄 알지만 문자를 못 익힌 까막눈 민초의 마음을 무진장 알겠다.
‘영어 학습자’로서 나는 비유를 들자면 어른이다. 외국어라는 인생에 익숙해지고, 웬만한 건 무리 없이 척척 해 나가는, 딱히 부끄럽고 약한 순간 별로 없는 그런 어른. ‘일본어 학습자’로서의 나는 유치원생이다. 일본어라는 세계에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이렇듯 언어는 한 사람을 크게도 만들었다가, 작아지게도 만든다. 그리고 다시 깨닫게 만든다. 성장을 위한 출발점에서의 나는 필연적으로 약하고, 모르고,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작아지고 나니 초급자의 마음을 알겠다.
한 글자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 그 작은 노력의 무게를.
언어의 시작점은 결국 모두 같다.
나도, 당신도.
나는 아직도 ‘간바레’를 일본어로 못 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 한 글자 외우기 위해 들이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라는 걸.
그러니 오늘도,
간바레를 쓰기 위해
간바레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