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
혹시 어렸을 때 공부도 곧잘 하고, 운동 신경도 나쁘지 않고, 글짓기, 시 쓰기, 노래 부르기 등에도 소질이 있었는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렇다면 당신은 이 남자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게 좋겠다.
에라토스테네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지리학자, 천문학자, 문학가이다. 그도 여러분처럼 다재다능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늘 1등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학자들에게 ‘언제나 2등’이라는 뜻에서 β(베타)라고 불렸다고 한다.
요즘도 완벽한 남자를 ‘알파남’이라고 부르는데, 이분은 고대 그리스부터 쯧.. 너는 알파는 아니다. 너는 베타다라고 조롱 아닌 조롱을 당한 선배님이시다.
팔방미인이지만 까보면 애매한 사람. 영어로도 똑같은 표현이 있다. 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
나도 마찬가지다. 뭔가 하나 시작하면 이해도 빠르고 흥미도 곧잘 느껴서 잘한다. 근데 애매하다. 대학생 때 나는 그래서 진짜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한 분야를 통달한 사람!
통대에 진학했고 역시 장학금도 받아가며 곧잘 했으나, 소위 말하는 그 괴물 같은 알파 밑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방향을 바꿨다. 동시통역만 전문으로 하며 살아가는 삶 대신, 경영학 전공을 살려 영어와 통번역을 내가 가진 타이탄의 무기라 여기고, 경제나 금융 지식을 결합해 길을 개척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지만 역시, 차트 한 번 보면 분석이 촤르르 되고 인사이트가 쏟아져 나오는 그 금융 세계의 전문가는 못 될 것 같다.
최근에 GPT 한테 뭘 물어보다가 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의 full quote를 알게 되었다.
Jack of all trades is a master of none, but oftentimes better than a master of one.
(모든 걸 두루 잘하는 사람은 어느 하나 완벽하진 않지만, 오히려 하나만 파는 사람보다 나을 때가 많다.)
의외였다. 흔히들 1만 시간의 법칙이다 뭐다 하면서 하나 진득하게 파라고 말하는데, 적당히 할 줄 아는 게 많은 게 더 좋을 수도 있다니!
그러면 왜 그동안 세상은 한 분야의 달인이 되라고 해온 걸까? 생각해 본다. 보통 한 분야를 엄청 잘하게 되면 주변의 인정을 받고 희소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소성은 곧 돈이란 가치와 연결된다.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럼 달인이 아닌 여러분과 나는 어떻게 돈을 끌어당길 수 있을까? 그리고 희소성이란 가치는 꼭 어떤 ‘전문적인 깊이’에서만 나오는 것일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간단하다. 수입원을 늘리면 된다. Master 가 자기 분야에서 100의 수입을 내면 우리 같은 베타 인간들은 여기서 50 저기서 50 벌어오는 식으로 하면 된다.
두 번째. 희소성이 ‘깊이’에서만 오는 시대가 얼마나 지속될까? 난 오래 보지 않는다. 이제는 ‘조합 능력’도 새로운 희소성으로 기능할 수 있는 세상이다.
여러 분야를 잇고, 서로 다른 언어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이질적인 영역을 연결하는 사람. 이건 다재다능한 사람이 빛날 수 있는 영역이다.
다시 에라토스테네스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비록 동료 학자들에게 베타남(ㅠ) 취급을 받았지만 그런 사실까지 현대의 우리에게 알려졌다. 즉, 알려졌고, 성공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측정한 사실과 그 방법에 대한 수학적 내용은 중학교 수학과 과학에 나온다. 베타형님은 무려 교과서에 실린 위대한 분이 되신 거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만 파는 알파’가 될 타입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세상에는 하나만 파는 사람도 필요하고, 여러 걸 잇는 사람도 필요하다. 여러 세계를 이어 붙이는 건 오직 베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해, 베타는 조합과 확장의 가능성을 품은 또 다른 형태의 알파, 시그마다.
즉, 우리는 시그마다!